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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인 4명 중 3명이 임종을 맞는 장소, 바로 '병원'입니다. 면회가 제한되는 병실이나 처치실,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합니다.

초고령 시대, 가족과 함께 존엄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난해 8월부터 병원 내 '임종실' 설치가 의무화됐습니다.

법 시행 1년이 다 돼가지만, 보건복지부가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을 조사해 보니, 임종실을 설치한 곳이 27곳에 불과했습니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 제공)

왜 병원들이 설치에 소극적인지, 임종실에서 작별을 경험한 환자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지 알아봤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일반 병동에 마련된 임종실

■ 8인 병실에서 '임종실'로…"인간적인 보살핌에 감사"

취재진이 만난 한 가족은 지난 3월 아버지를 간암으로 떠나보냈습니다.

아버지는 인천의 한 대학병원 '8인 병실'에서 투병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의료진으로부터 임종을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같은 병동에 있는 임종실로 아버지를 옮겼습니다.

일반 병실은 보호자 1명만 면회가 가능하지만, 임종실은 면회 시간이나 인원에 큰 제약이 없었습니다.

2인 병실을 1인실로 만들어 공간이 넉넉하고, 창문으로 빛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아버지는 임종실로 옮긴 첫날, 가족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 "이쪽으로 옮겼다" "참 좋다" "고맙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루 중 30분 정도 잠깐 의식이 깼을 때 카톡을 남긴 겁니다.

환자 보호자인 아들은 "일반 병실에서는 다른 환자가 신경 쓰였지만, 임종실에서는 아버지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보호자(아들)

"사랑한다는 말 같은 걸 평소에 못 했거든요. 낯 간지러워서. 임종실에서는 둘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도 안 볼 때라는 핑계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어요."

"죽음이라는 것들이 사실 환자들은 무섭잖아요. 옆에 계신 다른 분들도 불안하실 텐데. (일반 병실이었다면) 보호자만 옆에서 숨죽여서 상태가 어떤지 정도만 보고 보내드렸을 것 같은데, 그런 것 없이 되게 편안하게 가시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임종실은 면회가 자유로워 옛 직장 동료와 친구 등 지인들도 여럿 찾아와 아버지의 마지막을 배웅했습니다.


의료진의 도움도 컸습니다. 통증 완화는 물론, 환자가 마지막까지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양치질을 해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 자세도 바꿔줬습니다.

한은정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수간호사는 "환자 표정을 보고 통증을 조절해 드리기도 하고, 주치의 선생님들하고 상의해서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호자(아들)

"돌아가실 분이라고 생각하면 안 해도 될, 그런 '인간으로서의 케어' 있잖아요. 입안이 말라서 갈라지거나 이빨을 닦는 거랄지, 그런 것들에 대해 세심하게 챙겨주셔서 마지막까지 예쁜 모습으로 누워 계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종실은 일반 1인 병실에 비해 비용 부담도 적습니다. 건강보험이 적용돼, 하루 8만 원입니다.

상급종합병원의 1인 병실료가 하루 40만 원인 걸 감안하면, 5분의 1정도입니다.

아들은 "만약에 일반 병실이나 요양원이었다고 하면 지금처럼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았을 것 같다"며 "내가 뭘 더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과 돌아가실 때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이런 죄책감이 있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임종실에 비치된 안내 책자

■ 임종실 설치율 57%…"수익성 떨어져"

임종실 설치가 의무화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병원들은 여전히 소극적입니다.

복지부가 남인순 국회 보건복지위원(더불어민주당)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 기준 전국 상급종합병원 47곳 중 임종실을 설치한 곳은 27곳에 불과합니다.

설치율이 57% 에 그쳤습니다.

병원협회는 2023년 300개 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 임종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 당시에도 반대 의견을 표명한 바 있습니다.

병상 운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한 병원 관계자는 "별도 공간을 정해 리모델링하고 간호 인력도 배치해야 한다"며 부담이 적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면엔 수익성에 대한 고려도 있습니다.

임종실이 아니라 집중 치료실이나 중환자실에서 각종 처치를 받다가 사망해야 수익이 더 커진다는 겁니다.

지난해 8월 법을 시행하면서 부칙으로 정해놓은 '경과 기간'이 이달 말까지입니다.

복지부 측은 조만간 임종실 설치를 독려하는 공문을 보낼 예정입니다. 경과 기간이 지나면 시정명령을 할 수 있습니다.

■ 설치해도 이용률 '저조'..."의료 문화가 바뀌어야"

물론, 단순히 임종실 늘리기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병원에 임종실이 있어도 환자 가족이나 의료진이 잘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복지부가 서울 지역 상급종합병원 중 임종실을 설치한 7개 병원을 대상으로 이용 실적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지난 5월의 경우, 서울대병원은 이용자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이대목동병원과 고대구로병원, 중앙대병원이 각 1명, 고대안암병원이 2명, 세브란스 병원이 3명이었습니다.

환자 1명이 임종실에서 보통 2~3일 머문다는 걸 감안하면 거의 비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용률이 낮은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나옵니다.

우선 연명치료를 받는 경우 인공호흡기나 혈액 투석 장치 등을 유지한 채 임종실로 옮기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런 장치를 유지할 만한 시설 여건이나 간호 인력이 임종실에는 없습니다.

임종실에 대한 오해나 거부감도 큰 편입니다.

의학적으로 더는 치료 효과가 없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강도 높은 치료를 계속해야 자식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거라는 인식이 여전합니다.

한은정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수간호사는 "임종실에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절대 아니"라며, "오시면 보호자분들을 불러 병실의 사용이나 환자의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설명해 드린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대학병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의는 "우리나라 의료 문화상 주치의가 임종기 판단을 최대한 늦추는 경향이 있다"며 "환자가 존엄하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적기에 임종기 판단과 통보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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