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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병원, 서울대병원] <중> 그들만의 기록 ‘리마인더’
사진=권현구 기자

서울대병원이 환자의 직업, 보호자 성향 등 진료와 무관한 비공식 정보를 의료진이 볼 수 있도록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내 별도 공간에 장기간 쌓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고액 기부자 역시 의료진이 진료 전에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표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 동의 없이 수집된 개인정보가 효율적인 진료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차별 진료 유발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병원 EMR 시스템에는 의료진이 볼 수 있는 ‘리마인더’라는 기능이 있다. 리마인더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핵심 정보 외에 각종 비공식 정보가 기록되는 메모장 형태의 공간이다. EMR에 환자 이름을 검색한 후 리마인더 버튼을 누르면 환자에 대한 비공식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환자의 알레르기 반응 여부, 항생제 효과 등을 기록하는 등 대체로 진료를 위한 간접적 목적으로 쓰인다.


그러나 진료와 전혀 무관한 정보를 의료진이 공유하는 용도로도 활용된다. 일부 환자의 리마인더에는 보호자의 직업 등 필수 의료 정보가 아닌 내용이 기재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의 성향, 보호자의 민원 내역 같은 의료진 개인의 주관적 평가가 적히기도 한다. 실제로 일부 환자의 리마인더에는 ‘ZZZ’(쯧쯧쯧이란 뜻), ‘@@@’(또라이) 등 표현이 적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의료진 사이에서 블랙리스트 즉, 진상 환자 및 보호자를 의미하는 은어로 쓰인다.

이 같은 기록은 환자를 직접 보지 않은 의료진이 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게 될 위험성을 키운다. 더군다나 리마인더 정보에 대한 검증 절차가 별도로 있지 않기 때문에 부정확하거나 과장된 정보가 적힐 가능성도 크다.

이런 우려 때문에 한때 서울대병원 내부에서는 리마인더를 없애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내부 반발이 거세 실행에 옮겨지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대병원 한 교수는 3일 “환자나 보호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기록을 남기는 게 ‘주홍글씨’처럼 낙인찍는 효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없애자는 의견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의무기록을 일일이 열어보지 않더라도 중요한 정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고액 후원자는 진료 편의 차원에서 EMR에 표시된다. 의료진이 EMR에 들어가면 바로 노출되는 ‘Alert’란을 통해 후원자는 물론 후원자 가족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후원 금액에 따라 환자 이름 옆에 별도 표식도 붙는다. 서울대병원 발전후원회 관계자는 “고객 후원자가 진료받을 때는 마크가 뜨기 때문에 후원자라는 사실이 인지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접수 직원, 응급실 근무 의료진, 주임간호사 등이 후원인 또는 그 가족이 방문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무래도 더 신경쓰는 등 노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리마인더에 적힌 기록은 의료진이 의도적으로 삭제하지 않는 이상 지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환자가 퇴원하더라도 자동 폐기되지 않는다. 만약 서울대병원에 방문했던 환자가 10년 뒤 다시 찾아도 의료진은 과거 기록됐던 리마인더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환자 또는 관련된 제3자의 정보가 사실상 영구적으로 쌓이는 것이다.

특히 리마인더에 기록된 정보는 비공식 정보라는 점에서 환자가 본인의 의료기록 정보 열람 청구를 해도 받아볼 수 없다. 정보 주체인 환자 또는 보호자 등 제3자가 자신의 어떤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리마인더를 통한 정보 수집 과정에서 개인정보 수집 동의 범위를 벗어난 정보가 포함됐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크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보호자 관련 개인정보라면 정보 주체인 당사자에게 동의를 받아 수집해야 한다”며 “처리 권한이 없는 정보를 기간도 안 정하고 수집, 처리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진료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정보 주체를 위해 수집했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정 기간 지나면 삭제하는 형태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홍보실 측은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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