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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

“대학도 안 나온 새끼가, 상고 출신에 고졸 촌놈의 새끼가, 그런 촌스러운 새끼가, 이게 말이 되냐고! 이 대한민국이 어떤 나란데, 어떻게 세운 나란데, 저런 조무래기 새끼가!” 한재림 감독 영화 ‘더 킹’(2017) 속 대사다. 2002년 12월, 새 대통령으로 노무현 후보가 확실해지자 극 중 ‘정치 검사’가 한 말. 영화적 상상이라곤 하지만, 이게 엘리트 정치 검사만이었을까? 국회의원, 장관, 고급 관료, 주류 언론인, 재벌 대기업 사장 등 이른바 정치·경제의 고위층들은 그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는 ‘일류대’ 편향성(강박증)이 심한, 엘리트 의식에 빠져 있다. 많이 배울수록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더 ‘오만’해지는 경향성! 이런 풍토가 가진 최악의 결과는, 엘리트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계층들(빈민 출신의 조폭)조차, 그리하여 사실상 사회 전체가, ‘강자 동일시’ 심리를 내면화하고, 오만방자한 특권 의식을 당연시하는 일이다.

위 영화에서 ‘킹’은 대통령인데, 차기 대통령을 사실상 결정(‘정치 엔지니어링’)하는 데는 정치 검사들 역할이 크다. 결국, 일부 검사가 ‘킹’을 정하니, ‘진짜 킹’은 검사일 수도! 영화에서 한강식은 서울중앙지검 전략수사3부장으로, 대외적으론 굵직한 사건들을 계속 터뜨리는 ‘공정한 심판자’지만, 실제론 임의로 대형 사건을 기획·조작하는 공권력의 실세, ‘킹 메이커’다.

주인공 박태수는 고3 무렵, 천하제일이던 건달 아버지가 한주먹도 안 되는 일개 검사에게 싹싹 비는 꼴을 보고 ‘진정한 힘은 공권력에서 나옴’을 깨쳤다. 그때 장래희망이 섰다. ‘검사’가 되어 권력의 힘으로 아버지의 한을 푸는 것! 목표가 확실하니 광적인 집중력도 생겼다. 마침내 고3 끝엔 전교 1등을 하고 서울대 법대에도 보란 듯 입학했다. 군을 제대하자마자 사법고시에 합격해 드디어 ‘검사’가 된다.

태수에겐 두 학연이 있다. 고교 동창은 조폭의 행동대장이고, 대학 선배는 태수를 한강식 팀(킹메이커)으로 이끈다. 이제 태수는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명히 느낀다. 법 내지 공권력은 명분일 뿐, ‘권력 실세’는 정치와 돈을 장악한 자들임을 깨닫는다. 한강식이 “진실? 정의? 그런 거 말하는 거 아니야. 여긴, 권력이 전부야”라 하자 태수가 설득당한다. 실제로, 정·재계 로비, 언론 플레이, 여론 조작 등 온갖 음모와 거래를 밥 먹듯 하는 현실 세계에서 태수는 점점 ‘이상’을 잃고 현실과 타협해, 끝내 그런 현실의 공범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태수는 자신이 권력의 주체가 아니라 실은 권력의 부속품에 불과했음을 깨닫는다. 권력 생태계의 냉정함, 도태되는 자의 비참함, 마침내 ‘진짜 왕’의 정체에 대한 깨우침, 이것이 극적인 반전이자 희망의 실마리다.

영화의 마지막에 태수가 국회의원 후보로 결과를 기다리며 말한다. “나는 사기꾼이자 양아치였고, 권력을 위해 충성하는 개였다. 그렇게 사람들을 기만하고 속이고 잘 먹고 잘 살아왔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실히 그리고 자기 일에 충실하다. 그래서 세상은 돌아간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봐야 한다. 언제 속임수를 쓰는지 언제 딴짓을 하는지 한시도 긴장을 풀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백발백중 당한다. 내가 어떻게 됐냐고? 당선됐냐고? 떨어졌냐고? 그건 나도 궁금하다. 왜냐면 그건 ‘당신’이 결정하는 거니까. ‘당신’이 세상의 왕이니까!” 그렇다. 민주주의를 세우는 것도, 민주주의를 망치는 것도, 바로 ‘우리’라는 깨달음!

한강식이 영화 속의 ‘재앙’이었듯, 윤석열은 현실 속의 재앙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2017년 5월,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했다. 2년 뒤 윤석열은 검찰총장이 됐다. “신임 총장님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도 했다. 그런데 윤석열 검찰이 이른바 ‘조국 사태’를 일으키고 청와대를 겨냥한 엉터리 수사를 해도 문 정부는 여전히 “(윤석열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 신뢰했다. 오호통재라, 믿던 도끼에 제 발등 찍혔으니, 정말 수수께끼다.

바로 그 윤석열이 2021년 대선 국면에서 손바닥에 ‘왕’(王)을 달고 나오더니, 마침내 2022년 3월, ‘왕’이 됐다. 영화 속 ‘킹메이커’가 현실에서 스스로 ‘킹’이 된 것! 그 뒤 “자유, 자유, 자유”만 외치던 그가 2024년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5월의 계엄과 학살을 기억한 다수 국민, ‘3년도 길다’고 외치던 ‘깨시민’들, 그리고 ‘속은 기분’을 느낀 군인들의 지혜와 용기 덕에 2025년 4월, 윤석열이 파면됐다. 2025년 6월, 우리는 이재명을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제는 정치 검사들이 ‘킹’을 만들거나 스스로 ‘킹’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게 ‘비정상의 정상화’다.

이런 상식의 실현조차 갈 길은 멀다. 윤석열에 이어 한동훈, 주진우 등이 정치 검사를 자부하며 스스로 ‘킹’ 노릇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권력의 주인공이 아니라 소모품에 불과하다. 그것도 정의의 권력이 아닌, 탐욕적 권력의 소모품!

이제 한줌도 안 되는 정치 검사들은 “공익의 대표자로서 정의와 인권을 바로 세우고…”로 이어지는 ‘검사 선서’처럼,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공익과 진실’에 충직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제력이나 기술력은 세계 ‘톱 10’ 수준이다. 반면 검찰의 공신력은 후진국이다.

‘킹’을 꿈꾸던 정치 검사 한동훈이 상위법을 농락하는 ‘시행령’ 정치를 하더니, 이제 검사 출신 주진우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총리 후보자 김민석을 향해 ‘검은봉투법’을 발의하고 “축의금과 조의금,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현금 수억”을 거론하며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라 말한다. 그 전에 자신의 70억원 재산과 2005년생 아들의 7억원대 예금이 과연 ‘국민 눈높이’에 맞는지 물어야 한다. 일찍이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은, “구조적 변화의 출발은 어디까지나 나에게” 있다 했다. 손가락질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나부터’ 떳떳해야 한다.

다수 검사가 정의롭게 살고자 해도, 일부 정치 검사 탓에 조직 전체가 진흙탕이 된다. 특권 의식을 내려놓고 ‘모든 걸 제자리로 돌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위하여, 이제 검찰 세계도 ‘약자와 연대’하는 특별 혁명이 필요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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