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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인 가운데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던 홍석천 씨에게 '사랑'은 주요 화두다. 그는 "사랑은 쉽지 않다"면서도 결국 "사랑이 답"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사랑이 답이다.”

‘성소수자의 대부’, 홍석천 씨는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적었다. 최근 그의 서울 이태원동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 사진기자가 “뭔가 쓰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청하자, 망설임 없이 바로 적어 내려간 문장이다. 마침 그가 입은 티셔츠에도 사랑 애(愛)자를 형상화한 이미지가 인쇄돼 있었다. 25년 전 어렵사리 “저는 동성애자입니다”라고 말문을 열 용기를 낸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고 한다.

지난 5월 국내 성소수자 권익 비영리단체 ‘신나는센터’가 주는 공로상 ‘프라이드 어워드’를 받은 그를, 5월 말과 6월 중순 두 차례에 걸쳐 만났다. 인터뷰 첫날 그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례라는 걸 서야 한다”며, 기쁨과 긴장감으로 눈을 반짝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홍석천 씨는 2000년 한국인 연예인 최초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 길은 쉽지 않았다. 전민규 기자


Q : 벌써 커밍아웃 25주년이다.


“커밍아웃을 결심한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당시 남자친구가 ‘왜 나를 당당하게 소개하지 못하느냐’라고 슬퍼했고, 둘이 함께 뉴욕으로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시트콤(‘남자 셋 여자 셋’)에서 갑자기 인기가 많아지며, 갈 수가 없었다. 1999년, 세기말을 보내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커밍아웃해야겠다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고. 방송에서 다 하차할 것도 다 각오하고 한 결정이었다. 결국 그 사랑과는 잘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랑이 답이다. 나를 버티게 해준 것도 사랑이고, 내가 대중에게 갈구하는 것도 사랑이다.”


Q : 사랑보단 미움이 득세하는 세상인데.


“사랑은 쉬운 듯 쉽지 않다. 사랑을 지키는 건 사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니까. 반대로 미워하고, 반목하고, 갈등을 조장하는 건 쉽다. 나도 누군가를 미워해 봤지만, 결국 그건 내게 안 좋더라. 다들 내 편과 네 편으로 갈라치기를 하는데, 이건 결국 남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어서 오해가 쌓이고 싸움을 하는 거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다들 똑같다면 이 세상은 어떨까. 다들 각자의 다름으로 빛나기에 세상이 아름다운 거다.”

서울 이태원동 사무실에서 만난 홍석천 씨. 전민규 기자


Q : 주례사는 어떻게 할 건가.


“결혼이라는 건 멋지고도 어려운 게 아닐까. 다른 생각, 다른 꿈을 갖고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의 공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일이니까 말이다. 결혼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 입을 열기 전에 귀를 열라는 말을 해주려고 하는데, 솔직히 이건 나도 살면서 늘 까먹는 거다(웃음).”

지난 5월 열린 프라이드 갈라에서 성소수자의 권익을 위해 활약한 공로로 '프라이드 어워드'를 받는 홍석천 씨. 사진 신나는세상 김조광수 대표 제공

Q :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은 아직도 곱지만은 않다.


“10대부터 정체성을 고민했다. ‘나’는 누구인지. 기독교 모태 신앙인데 그 공동체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죄책감에 힘들었다. 내가 ‘별종’이라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끙끙 앓았다. 그러다 갑자기 연예인으로 성공하면서, 내가 숨 쉴 공간이 없어졌고, 당시 남자친구가 내게 ‘네가 너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너를 사랑하겠냐’고 해 준 게 결정타가 됐다. (커밍아웃이) 쉽진 않았다. 공포 때문에 3주 동안을 밖엘 못 나갔으니까. 그래도 커밍아웃하고 나서 그 전보다 덜 힘들었다.”

미국의 첫 세컨드 젠틀맨(여성 부통령의 배우자)인 더글러스 엠호프(오른쪽)과 청계천을 걷는 홍석천 씨. 2022년 사진이다. [중앙포토]


미국의 첫 ‘세컨드 젠틀맨(the Second Gentleman, 여성 부통령의 배우자)’이었던 더글러스 엠호프는 2022년 방한 때 홍석천 씨를 오찬에 초청했다. 엠호프는 기자와 단독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의 다양성을 끌어낸 인물”이라는 말로 초청 이유를 설명했다. 홍 씨는 “당시 엠호프 세컨드 젠틀맨이 ‘뭐든지 처음이 힘들지만, 시작이 있으면 다양성이라는 흐름은 막을 수 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Q : 배우 윤여정 씨 아들도, 아이돌 그룹 저스트비 멤버(배인)도 성소수자로 당당히 살아가고 있다.


“난 가끔 생각한다. 나 이전의 (성소수자) 세대는 어땠을까. 터널 끝이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있었을 거다. 나도 길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 길이 안 보일 때, 그 막막함을 그래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가끔 후배들이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라고 할 때 정말 보람을 느낀다. 내가 돌을 제일 먼저 맞아줬으니, 내 뒷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맞았으면 좋겠다.”

홍석천 씨(왼쪽)와 지난 4월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 아이돌 그룹 저스트비의 멤버 배인. [중앙포토, 뉴스1]


그는 저스트비 배인의 커밍아웃 직후 “신선한 충격이고 반가운 소식”이라는 입장을 냈고, 배인 역시 소셜미디어에 “(홍석천) 선배님께서 누구보다 외롭고 힘든 길을 처음으로 걸어주셨기에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며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저도 선배님처럼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요즘 그래도 우리 사회가 포용이 많이 생겼다. 최근에 들었던 가장 기쁜 말을 전하고 싶다.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후배가 들려준 이야기다. 부모님이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이렇게 말씀했다고 한다. ‘너가 행복하면 됐다. 그런데 말이야, 한 가지 조건이 있어. 홍석천 씨처럼 멋지게 살아주렴.’” (웃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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