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초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50% 상속세’ 도입 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한다. 해당 법안은 오는 11월 30일 국민의 직접 투표에 부쳐질 예정이며, 통과 시 스위스 최초로 연방 단위 상속세가 신설된다.
2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 제안은 2022년 스위스의 청년사회주의자당(JUSO)이 처음 발의한 것이다. 사회민주당(SDP)과 연계된 이 정당은 5,000만 스위스프랑(약 860억 원) 이상 재산을 상속할 경우, 해당 금액의 절반을 세금으로 징수하도록 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해당 세수는 기후변화 대응 기금 등 공공 목적에 사용될 예정이다.
스위스 헌법상 ‘국민제안제도’에 따라, 특정 사안에 대해 10만 명 이상의 서명을 확보하면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청년사회주의자당은 이미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아 투표 요건을 충족시켰다. 정부와 의회는 법안에 대해 반대 뜻을 밝혔으나, 직접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국민투표는 예정대로 진행된다.
현재 스위스에는 연방 차원의 상속세가 없다. 대신 대부분의 주(州)가 독자적으로 상속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그 세율과 기준은 주별로 다르다. 상속자의 관계나 자산 규모 등에 따라 0%에서 최대 50%까지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배우자·자녀·손자녀 등 직계비속은 상속세 면제 대상이다.
정부는 법안 통과 시 발생할 수 있는 세수 감소를 우려하고 있다. 스위스 정부는 해당 법안을 통해 약 50억 달러(약 6조 8,000억 원)의 세수를 거둘 수 있지만, 고액 자산가들이 타국으로 이주할 경우 이 중 최대 75%의 세수가 유실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했다. 또 “기후 보호 명목의 고세율이 지역 경제와 지방 재정을 위협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실제 스위스 내 부유층 일부는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회계법인 PwC의 조사에 따르면, 이번 법안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산가의 78%가 이미 해외 이주를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족기업들은 “법안이 통과되면 가족기업 3곳 중 2곳이 경영권 승계 시점에 남지 않거나 어렵거나 일부만 남을 것”이라고 답했다.
스위스 중도 및 우파 정당 역시 “무리한 고세율은 기업의 세대 간 승계를 가로막고,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킬 것”이라며 국민에게 반대표를 행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스위스 기업인 피터 스풀러는 “이 법이 시행되면 스위스를 떠날 것”이라며 “이 아이디어는 ‘스위스의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발의안은 최근 글로벌 흐름과도 대조된다. 해외 주요국들은 상속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며, 자산의 세대 간 이전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도모하고 있다.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전면 폐지했고, 미국은 1,361만 달러(약 190억 원)까지 면세 혜택을 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상속세율은 26% 수준이며, 한국 역시 현행 최고 세율 50%를 30%대까지 낮추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