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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패러글라이딩 조종사 성낙윤씨 은퇴 비행
아들 말리려다 환갑 나이에 패러글라이딩에 매료
은퇴 후에도 '현역'…영상 편집 동아리 회장 맡아
93세 성낙윤씨가 지난달 29일 충남 보령에서 열린 '2025 만세보령머드배 전국 패러글라이딩대회'에서 은퇴 비행을 하고 있다. 보령=정다빈 기자


지난달 29일 '2025 만세보령머드배 전국 패러글라이딩대회'가 열린 충남 보령 옥마산 정상. 짙은 안개가 잠시 걷힐 때마다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가 하나씩 날아올랐다. 대회 최고령 참가자 성낙윤(93)씨도 굳은 표정으로 안개가 걷히길 기다렸다. 성씨의 마지막 비행은 1년 전이었다. 두 달 전 다른 활공장을 찾았을 땐 궂은 날씨 탓에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아침에 먹은 우황청심환 때문인지, 단순히 긴장한 탓인지 성씨는 입이 바싹 말라 자주 물을 찾았다.

"자, 이제 어르신 나가십니다!"


절벽을 향해 홀로 내달리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동호회원 두 명이 성씨 양옆에 붙었다. 원활하게 이륙하려면 속도가 붙어야 하는데 성씨가 빨리 뛸 수 없어 두 동료가 팔을 한 쪽씩 붙든 채 함께 달렸다. 장비 끝에 달린 패러글라이딩 날개가 바람을 품고 팽팽하게 부풀었다. 절벽 끝에 다다르자 성씨의 두 발이 하늘 위로 떠올랐다.

600m 상공까지 오른 성씨가 10여 분간 비행을 마치고 미끄러지듯 잔디밭에 착륙하자 환호와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이날 비행을 끝으로 성씨는 33년간의 패러글라이딩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나비처럼 사뿐히 내려갔어야 했는데 아쉽다"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성씨가 마지막 비행을 마치고 착륙하자 사람들이 축하해주고 있다. 보령=정다빈 기자


"아들 고마워!"... 환갑에 펼쳐진 '하늘 인생'

마지막 비행을 마친 성씨가 착륙장에서 헬멧을 쓴 채 밝게 웃고 있다. 보령=정다빈 기자마지막 비행을 마친 성씨가 착륙장에서 헬멧을 쓴 채 밝게 웃고 있다. 보령=정다빈 기자


성씨가 패러글라이딩과 인연을 맺은 건 환갑인 1992년이었다. 경로당을 오가며 무료한 나날을 보내던 그에게 첫째 아들이 폭탄선언을 했다. 성씨는 아들이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사업을 하겠다는 말에 놀랐고, 그 사업이 패러글라이딩 교육이라는 말에 또 놀랐다. 맏아들은 일본 유학 시절 당시만 해도 국내에 생소했던 패러글라이딩을 배워 왔다. 하지만 취미 활동과 사업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너무 위험해 보였다. 성씨가 말리고 다그쳤지만 아들은 관두기는커녕 두 동생까지 끌어들였다. 패러글라이딩이 뭐길래 저토록 빠져드나 싶어 아들 사업장을 찾아갔다.
하늘을 나는 모습을 직접 본 순간 성씨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아, 나도 해야겠다.'


"내가 새처럼 날고 있더라고." 아들의 도움으로 처음 하늘로 떠오른 순간, 성씨는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자유로움을 느꼈다. 뭐든 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솟았다. 차근차근 배우다보니 6개월 만에 회원들을 교육할 수 있게 됐다. 그를 보고 늦은 나이에 비슷한 도전을 하는 사람도 생겼다. 20년째 함께 활동한 동호회원 황부호(78)씨는 "나이 오십에 이 운동을 해도 될지 망설였는데 어르신이 '난 환갑에 시작했어'라고 말해 용기를 얻었다"고 회상했다.

성씨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은 '3대 비행'이다. 성씨와 큰 아들, 다섯 살 된 손주 셋이 한 기체에 탔다. 큰 아들이 조종하고, 성씨는 손주를 품에 안은 채 하늘을 날았다. 성씨는 "3대가 한번에 패러글라이딩한 건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 아닐까"라며 뿌듯해했다. 당시 겁에 질려 있던 손주는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됐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끝나지 않는 도전

착륙 직후 성씨가 카메라 앞에 섰다. 그의 몸에 착용한 장비 무게를 다 합치면 20kg에 달한다. 보령=정다빈 기자


"다시 태어나도 할 거냐고? 기운만 있으면 더 하고 싶지." 나이에 비해 정정하다고들 했지만, 성씨는 갈수록 정신이 흐려지고 몸이 굼떠지는 걸 느꼈다. 20kg에 달하는 장비를 들고 다니는 일도 버거웠다. 야맹증으로 교통사고를 겪은 뒤엔 혼자 차를 몰고 활공장을 찾아가는 일도 접었다. 홀로 비행하는 걸 걱정하는 이들이 많아지자 성씨는 결국 은퇴를 결심했다.

하늘은 날지 않지만 그의 '인생 3막'은 계속된다. 성씨는 동영상 편집 동아리 회장을 맡아 일주일에 2, 3번씩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20년 전 패러글라이딩 영상을 배우며 익혔던 편집 기술을 자신과 같은 고령자들에게 알려주고 어떻게 편집해야 효과적일지 열띤 토론도 벌인다.
끝으로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성씨는 눈을 반짝이며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고 싶은 걸 해. 패러글라이딩도 재밌으니 많이 해봐."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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