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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거 ③ 8·15 광복 오래고 간절했던 국민의 염원은 너무나 갑자기 현실이 됐다. 그래서였을까. 모두 거리로 뛰쳐나올 만했건만, 증언과 기록에 따르면 그날은 조용했다고 한다. 누구는 ‘해방’이라고, 누구는 ‘독립’이라고 부르는 광복 당일의 풍경이었다.

광복은 극소수를 빼곤 예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전제 조건이라 할 일본 패전의 분위기는 1945년 들어 스멀스멀 번졌다. 일제가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고서 “전쟁 상황이 유리하게 흘러간다”고 떠들었는데도 그랬다. “도쿄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불바다가 됐다(도쿄 대공습·45년 3월 9~10일)”는 얘기가 돌았다. 또한 공습에 대비해 국내에 방공호를 짓고 대피 연습까지 하는 것은 전황이 결코 일본에 유리하지 않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줬다. 전쟁 상대방이 거의 코앞까지 들이닥치지 않고서야 대피 훈련을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대체적인 인식은 “일본이 밀린다”는 정도이지, 금세 항복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45년 8월 14일, 라디오를 통해 예고가 나왔다. “내일 천황이 중대한 발표를 하니 잘 들으라”는 것이었다. 내용은 극비였다. 일본에서도 그랬다. 불만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항복 선언을 저지할까 봐서였다.

이튿날 정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 건 천황의 종전 선언이었다. 광복은 그렇게 급작스레 찾아왔다. 청취자 대부분은 라디오 방송 내용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잡음이 심했고, 당시 기준으로도 예스러운 문장이었던 데다, 내용조차 이리저리 꼬아놨기 때문이다.

이틀 후에야 전국 거리서 만세삼창
1945년 8월 15일에 찾아온 것은 불완전한 광복이었다. 주권을 되찾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 군정에 기대야 했기 때문이다. ① 북한 곳곳에서는 소련군 환영 행사가 열렸다. ② 남한에서는 9월 9일 미군이 서울에 들어와 조선총독부 앞에 달린 일장기를 내리고 대신 ③ 성조기를 게양했다.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천황의 목소리가 나간 뒤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일본인이 다시 조서를 읽었고, 이어 조선인 방송원 이덕근이 우리말로 번역본을 낭독했다. 그 뒤엔 해설 방송도 나갔다. 그제야 일본의 패전을 인식하게 됐다. 그래도 광복을 떠올리는 이는 많지 않았다. 일본이 전쟁에서 진다는 것과 우리가 주권을 되찾는다는 것은 약간 다른 얘기여서다. 극단적으로 일본과 우리가 한 덩어리로 패전국 취급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거리는 조용했다.

서울 시민들이 독립의 기쁨을 안고 거리로 쏟아져 나간 건 다음 날인 16일이었다. 전날 오후부터 “일본이 졌다” “소련군이 들어오고 우리는 독립된다”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퍼진 결과였다. 16일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돼 있던 소위 정치범 2000여 명이 석방돼 종로까지 행진했다.

지방은 16일에 소식이 전해지고, 하루 뒤인 17일에 태극기가 물결쳤다. 태극기는 대부분 귀퉁이의 4괘가 없이 빨갛고 파란 태극 동그라미만 있었다. 급한 김에 집에 있던 일장기에 파란색을 덧칠해 들고나온 것이었다.

당시 충북 충주에 살던 유종호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저서 『나의 해방 전후』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16일 학교 조회에서 교장은 ‘전쟁이 끝났으니 방공호를 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엊그제까지 일제의 승전을 목청 돋워 얘기하던 교장은 갑자기 독립과 해방 같은 생소한 단어를 썼다. 17일이 돼서야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와 만세를 불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도 난생처음이었다.” 8월 15일은 패전 선언의 날, 16일은 서울 해방의 날, 17일은 전국 해방의 날이었던 셈이다.

극소수는 광복을 미리 알고 있었다.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소련이 참전하자 일본은 항복을 결정했다. 소식은 이튿날 조선총독부에 알려졌다. 총독부 측은 몽양 여운형을 만나 치안권을 넘기는 것을 논의했다. 당시 총독부는 소련이 남한까지 들어와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것이라고 예측해 사회주의 계열의 여운형을 택했다. 소련이 들어온 이후를 고려한, 일본 관리들의 ‘생존 방안’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위도 38도를 기준으로 남과 북을 나눈다는 결정이 8월 20일 마닐라에 파견돼 맥아더 사령관과 만났던 일본 정부 대표단에 통보됐다. 대표단은 22일 조선총독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국내에서는 8월 24일 매일신보와 다음 날 경성일보에 보도됐다.

생존책으로 여운형과 만났던 고즈키 요시오(上月良夫) 중장은 9월 1일 오키나와의 하지 미국 제25군단 사령관에게 전문을 보내 “조선 안에는 평화와 질서를 파괴해 이득을 보려는 공산주의자가 많다”고 했다. 하지는 같은 날 “일본군은 미군이 책임을 인계할 때까지는 북위 38도 이남에서의 조선 치안을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1949년 법률안엔 광복절 아닌 독립기념일
9월 8일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가 가졌던 치안권과 행정권을 완전히 회수했다. 잠시 되찾았던 주권은 그렇게 다시 우리 손을 떠났다. 결국 45년 8월 15일은 불완전한 대한민국의 재탄생, 불완전한 광복이었다. ‘광복’이 뜻하는 주권 회복을 이루지 못했으니까. 일각에서 ‘광복’이 아니라 ‘해방’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49년 9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 초안은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니라 ‘독립기념일’이라고 했다.

우리가 불완전한 광복을 맞은 이유는 힘이 없어서였다. 수많은 우국지사가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45년에 맞이한 광복(또는 해방)은 미국을 비롯해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의 힘에 의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48년 8월 15일 정부가 세워졌다. 그렇다면 그때가 진정한 광복일까. 약간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광복은 주권 회복뿐 아니라 ‘빛나는 역사를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헌법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나와 있으니, 우리가 회복해야 할 ‘빛나는 역사’는 이념으로 갈리기 전의 한 몸이 아닐까. 통일 없이는 완전한 광복을 얘기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진정한 광복절이 언제인가”라는 논란도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 45년 8월 15일을 ‘부분의 광복절’, 미국의 군정에서 벗어난 48년 8월 15일을 ‘미완의 광복절’, 장차 도래할 통일의 날을 ‘완성된 광복절’로 말이다.

☞트리거=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결정적 계기들을 ‘트리거’라 이름 붙였다. 중앙일보는 창간 60주년을 맞아 광복 후 있었던 60개의 트리거를 선정, 역사와 의미를 연재 중이다.

백범 “친일파 처리, 광범위한 파급 원치 않아” 1945년 8월 15일부터 정부가 세워진 48년 8월 15일까지 우리에겐 여러 과제가 있었다. 큰 이슈는 친일파 처리였다. 백범 김구(사진)는 강경파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은 통합주의자에 가까웠다.

원칙은 확고했다. 45년 12월 ‘3000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방송에서 “적지 않은 협잡 정객과 친일분자, 민족반역자들을 숙청해야 한다… 죄악이 많아 용서할 수 없는 불량분자만은 엄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친일파 처리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광범위하게 파급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면구장(면장과 이장) 이하까지 추궁한다면 교각살우(矯角殺牛)의 폐가 있을 것 같다.” (49년 2월 기자회견) “일본이 바로 이웃인데 친일파는 많을수록 좋다. 반민족적 친일파를 처단하라는 것이지, 언제 단순히 친일파를 처단하라고 했느냐.”(백범의 비서였던 고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회고)

백범은 친일파의 완전한 청산을 부르짖는 이상주의와 ‘건국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는 현실 속에서 절충과 통합을 택한 것 같다. 건국이라는 지상 과제를 이루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미래를 위한 통합은 지금도 화두다. 그래서 백범의 정신이 새삼 되새겨지는 광복 80주년이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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