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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책에 빠졌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한 아빠의 마지막
가족 의사 따라 병원은 각종 연명의료 진행
끔찍한 모습에 중단 원했지만, 의사가 거부

편집자주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제가 올해로 시행 7년, 법 제정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사이 이별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국 의료 현장에서 확인하고 파악한 실상과 한계, 대안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지난 4월 27일 김혜영(오른쪽)씨가 어머니 이춘희씨와 함께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봉안당에서 아빠의 납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박고은·이수연·박채원 PD


"어떻게, 그걸 아무도 안 물어봤던 거지?"

지난해 11월, 수도권의 한 병원 중환자 대기실.
김혜영(45)씨
목소리에 잔뜩 성이 나 있었다.

"언니가 왜 화내?" 숨 죽인 채 눈물을 흘리던 여동생이 벌떡 일어났다. "언니가 해외에 나가 있어서 이렇게 된 거잖아. 우린 하자는 대로 한 거고."

중환자실에선 자매의 아빠가 숨을 쉬고 있었다. 엄마까지 세 명이나 있었는데 '한 번 시작하면 다시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왜 아무도 못했을까. 혜영씨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베트남에서 한 2분의 통화

어린 김혜영씨가 그네를 타는 모습을 아빠가 지켜보고 있다. 김씨 제공


불과 며칠 전, 혜영씨는 남편과 베트남 남부 관광지 푸꾸옥(Phu Quoc)을 여행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그늘에 자리를 잡고, 간만에 노곤함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아버님... 지금 돌아가실 거 같대요."

매부는 울먹이고 있었다.

"연명의료 할 거냐고 물어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꼭 한해 전 아빠는 폐암 4기 진단을 받았다. 혜영씨는 아빠 책상 위에 있던 '버지니아 슬림 골드' 담배부터 떠올렸다. 의사는 그때 "4년 정도는 (더) 볼 수 있다"고 했다. 근데 이제 1년 조금 지났는데? 하필 왜 지금이지? 혜영씨는
2분가량 침묵하고,
단호하게 외쳤다. "연명의료 해달라고 해주세요!"

아빠의 결정, 엄마의 고민

지난 4월 27일 이춘희씨가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봉안당에서 남편의 납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박고은·이수연·박채원 PD


엄마
이춘희(73)씨는
그러나 걱정이 앞섰다. 얼마 전 남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임종기에 접어들면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의료를 하지 말아 달라"는 남편의 결심이었다.

호흡곤란으로 남편이 이송되고 의사는 '임종기에 접어들었다'고 판정했다. 병원은 환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지만, 가족 전원이 원하면 연명의료를 해주겠다고 했다. 딸의 목소리가 엄마의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둘째 사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잘 생각하셔야 해요. (반대하면) 처형이 평생 원망할 수도 있어요."

연명의료의 시작...아빠는 시들어갔다

지난 4월 27일 김혜영(오른쪽)씨가 어머니 이춘희씨와 함께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추모공원에서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박고은·이수연·박채원 PD


연명의료가 시작됐다. 혜영씨가 보기에 아빠는 겨우 숨을 붙들고 있었다. 입에 플라스틱 산소호흡기가 꽂혀 있었다. 호흡기를 고정하기 위한 테이프가 호흡기 주변으로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손, 발은 끈으로 꽁꽁 묶여있었다. 팔과 다리는 수액으로 퉁퉁 부은 상태. 몸은 보라색으로 물들어갔다. 눈물로 진득해진 눈가는 바들바들 떨렸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혜영씨는 아팠다. 그나마도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딱 30분이었지만.

"물 마시고 싶어?"

아빠는 기계가 꽂힌 입을 열지 못해 겨우 고개만 끄덕였다. 종이컵에 물을 받아 오는데 간호사가 막아 섰다. "호흡기 단 상태로 물 못 드세요."

"손발 주물러 줄까?"

반응이 없었지만 아빠의 손을 매만졌다. 차갑게 식어 있었다. 퉁퉁 부어버린 몸은 레고 장난감 같았다.

"수면제 넣어줄까?"

이번엔 고개를 움찔거렸다. 혜영씨는 한번도 제대로 된 대답을 들지 못했다. 그의 숨을, 심장과 폐를 움켜쥐었다가 놔주는 기계음이 뜨문뜨문 들렸다. 그때마다 숨이 막혔다. "이제 그만하자." 처참해진 몰골에 가족들이 이구동성 뜻을 모았다.

그러나 그건 몰랐다. 의사가 매몰차게 거절할 줄은. "한 번 시작하면 자가 호흡이 가능할 때까지 못 떼요." 의사는 툴툴대며 말을 보탰다. "하지 말라니까 왜 한다 해 가지고."

가족들은 서로를 원망했다. 혜영씨와 여동생은 누구 탓인지를 두고 다퉜다. 매부는 눈물만 흘리는 남동생을 나무랐다. 심적 부담과 갈등이 가족들에게 오롯이 전가됐다.

그때 논산 바람은 선선했다

2년 전, 이춘희씨가 남편과 함께 충남 논산에 있는 남편의 모교 앞에서 활짝 웃고있다. 이씨 제공


2년 전 단풍잎이 빨갛게 물들었던, 그즈음을 혜영씨는 떠올렸다.

"딸, 고향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폐암 진단을 받기 며칠 전, 아빠는 갑자기 충남 논산을 찾았다. 어린 시절 뛰어놀던 도랑, 8남매가 함께 미꾸라지를 잡으며 놀았던 그 도랑. 아빠가 논밭 사이에 있는 어느 도랑 옆을 걷기 시작했다. 멀리 보이는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하늘이 이렇게 높았나.' 그는 우두커니 서서 논밭을 둘러봤다. 은은한 미소 사이로 한마디 말도 건넸다. "와 봤으니 이제 안 와도 되겠다." 혜영씨는 중환자실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요양병원 전원...그때서야 알았다

지난 4월 27일 김혜영씨가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봉안당에서 아빠의 납골함을 바라보고 있다. 박고은·이수연·박채원 PD


의사는 그 후로 혜영씨와의 면담을 꺼렸다. 연명의료 중단 요구가 성가신 듯 보였다. 답답한 마음에 가족은 그 병원 중환자실을 벗어나기로 했다. 엑셀 표를 만들어 요양 병원마다 전화를 돌렸다. 대부분이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으면 전원이 불가하다"고 답했다. 그렇게 1주일이 지났다. 겨우 찾은 요양 병원은 두 곳. 그중 본가에서 가까운 성남의 한 요양 병원으로 정했다.

전원이 완료된 후에야 요양병원으로부터 아빠의 상태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혼수 상태셨어요. 모르핀(진통제)이랑 영양제도 투입하셨네요."

병실은 고요했다. 심전도 모니터에선 아빠의 심장이 뛸 때마다 그래프가 요동을 쳤다. 그리고 요동 폭은 조금씩 줄어들고 약해졌다.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아빠 너무 미안해."

전원된 그날 밤, 지난해 12월 6일. 아빠의 심장이 멈췄다.
인공호흡기가 제거됐다.


전하지 못한 말...미안해

지난 4월 27일 경기 용인시에 위치한 봉안당에 붙어있는 편지. 박고은·이수연·박채원 PD


혜영씨는 끝이 이럴 줄 정말 몰랐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었지만, 병원은 계속 보호자 의견을 물었다. 가족이 모여 결정을 뒤집었지만, 제대로 정확히 설명해주지도 않았다. 법은 분명 가족 전원이 합의할 경우 철회, 변경, 중단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땐 그 사실을 몰랐다. 따지고 보면 모두의 잘못이다. 혜영씨는 여전히 후회 중이다. 중환자실에서 보랏빛으로 변해 퉁퉁 부은 얼굴로 얼마나 아팠을까.

남편을 떠올리며 뒤척이긴 춘희씨도 마찬가지다. "원망 듣더라도 말렸어야 하는데." 중환자실의 남편은 고개를 가로로 휘젓는 느낌이었다. 입을 움찔할 때는 '그냥 빨리 가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손가락이며 팔, 급기야 온 몸이 터질 것만 같이 부어오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의 영정을 어루만질 때마다 하는 생각은 하나다.

'
다시 만나면 미안하다 꼭 말해줄게. 마지막을 그렇게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병원이 제대로 설명만 해줬더라도...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이 전국 병원 종사자 및 환자 보호자 50여 명 심층 인터뷰 등으로 의료 현장을 확인해보니, 의료진이 법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았다. 법에 명시된 '연명의료 관련 정보제공 및 교육'에 강제성이 결여된 탓이다.

이로 인해 소수 대형병원을 제외하곤 법 취지를 거스르는 의료 행위들이 반복되고 있다. 가족 전원이 연명의료 중단을 합의했음에도 의료진이 이를 거부한 혜영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처벌 조항도 따로 없다. 본보는 병원에 입장을 물었지만,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만 들었다.

이명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의존한 환자라면 임종기로 판단하는게 맞다"며 "'웰다잉'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의료인 교육이 부실한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유예된 죽음' 특별취재팀팀장= 김혜영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손영하 · 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백혜진 · 정혜원 인턴기자
사진= 정다빈 · 강예진 기자
영상= 박고은 · 이수연 · 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인터랙티브= 박인혜 기획자, 남유진 개발자, 이정화 디자이너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갈피를 잃었다
    1. • 심장이 멈춘 남편은, 계속 숨을 쉬었다...연명의료 죽음의 풍경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02070004504)
    2. • "안 받겠다" 해도 결국 절반은 연명의료 받다 숨진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714550003896)
    3. • '연명의료 거부' 300만 시대... 70대 여성 31%가 쓴 이 문서는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318510004794)
    4. • "나는 오늘 아빠의 죽음을 결정했다" [인터랙티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911550002745)
  2. ② 마음이 흩어졌다
    1. • "연명의료 싫다" "끝까지 받겠다"...내 결정을 가족이, 의사가 막아섰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913350000358)
    2. • 소외된 외국인과 무연고자...이들은 연명의료를 끝까지 받아야 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222360004659)
    3. • "임종 판단 못해" 그 의사가 벌벌 떤 이유... 식물인간은 대책도 없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323540003696)
    4. • "죽음 너무 괴로워 조력사 논의까지.. 대리인이 결정할 수 있어야"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22180002265)
    5. • '김 할머니' 떠난 지 15년 "죽음은 여전히 공장화... 가정돌봄 절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21090000993)
  3. ③ 빈틈에서 헤맸다
    1. • '심정지 1시간' 아빠, 간호사 자매는 연명의료를 선택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610220003322)
    2. • 연명의료 중단 결정, 그 후 대책이 없다...방치될까 두려운 환자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423060002777)
    3. • "편히 가려고 왔는데"...60일마다 '병원 찾아 삼만리' 떠나는 까닭은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510290001551)
  4. ④ 자책에 빠졌다
    1. • 늘 취해 있던 아빠의 죽음에 서명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807530002739)
    2. • 2분 고민하고 아빠는 지옥의 2주를 보냈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809330004025)
    3. • "시한폭탄 안은 기분" "비정규직 1명이 전체를"...공용윤리위 들여다봤더니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511250000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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