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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약'

밥약이란 '밥 약속'의 준말로, 갓 입학한 새내기에게 위 학번 선배가 밥을 사주는 캠퍼스 문화를 뜻합니다.

대학 생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생이 밥약을 통해 선배와 친분을 쌓고, 학교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입생으로선 없어서는 안 될 문화 중 하나죠.

이때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이듬해 선배가 되면, 신입생들에게 본인이 받았던 호의를 그대로 물려주는 게 이른바 '품앗이', '내리사랑' 문화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봄은 일명 '밥약의 계절'이라고도 불립니다. 우스갯소리로 새내기들은 봄에 '교통비만 들고 다녀도 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대학교 2학년 재학생 유지상 씨.

■ "제 식비 아끼면 후배들에게 돈을 더 쓸 수 있으니까요."

서울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유지상 씨는 올해 2학년 진학 후 생긴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후배들과의 밥약입니다.

신입생으로서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먹던 작년에 이어, 올해 처음으로 선배로서 후배들을 맞이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20일 만난 지상 씨는 "저도 이제 2학년이라서 아래 후배들 밥을 사줘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밥값이 많이 들어서 제 식비라도 아껴야 해요"라며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로 말했습니다.

혼자서만 먹어도 1만 원이 훌쩍 넘는 식비를 후배 몫까지 부담하자니 밥약 한 번에 최소 3만 원이 깨지고 마는 이 상황을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후배 앞에서 저렴한 식사를 제안할 수 없으니 내가 먹는 식비라도 아껴야 했습니다.

서울 성북구 소재 대학교 학생 식당 내 ‘천 원의 아침밥’ 설명문.

■ 밥약 한번 '3만 원'이지만…내 아침밥은 '천 원'으로

지상 씨가 생각한 대안은 '천 원의 아침밥'으로 식사 해결하기.

천 원의 아침밥은 말 그대로 단돈 천 원에 조식을 판매하는 식당을 말하는데요,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생활비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정부가 일부 대학교와 손잡고 운영하는 지원사업입니다.

학생 식당에서 판매하는 아침밥을 시중 가격보다 저렴하게 제공해 학생들의 아침값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죠. 점심이면 6천 원이 넘는 메뉴를 아침에만 단돈 천 원에 먹을 수 있습니다.

남양주~서울 통학생 지상 씨는 학교에 오려면 1시간 30분 동안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아침 식비를 절약하기 위해 이 고된 여정을 반복 중입니다. 1주일에 수업이 3일 있는데 3일 내내 천 원의 아침밥을 먹습니다.

대학교 2학년 재학생 이동현 씨(좌)·정승민 씨(우)

■ "밥약 부담스러워…식비 아끼려 굶기도 해요."

또 다른 대학생 2학년 이동현 씨와 정승민 씨도 최근 외식 물가 상승에 난처했던 경험에 대한 답변으로 후배들과의 밥약을 꼽았습니다.

동현 씨는 "우리 학교는 선배들이 후배들 밥 사주는 밥약 문화가 많은데 점점 물가가 오르니까 너무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했습니다. 승민 씨도 "한 끼 먹을 때마다 한 2~3만 원씩 쓰면 순식간에 용돈 받은 게 없어지더라고요"라며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눈치 없이 오르는 물가는 대학생들을 때로는 배고픔에 굶주리게, 때로는 불필요한 시간을 할애하게 만듭니다.

승민 씨는 늦은 저녁 배가 고파도 아무것도 먹지 않고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어떻게든 버팁니다. 날이 밝자마자 교내 학생 식당으로 달려가 천 원의 아침밥을 먹기 위해서입니다.

동현 씨는 최근 일주일간 빽다방, 홍콩반점 등의 본사인 외식 프랜차이즈 기업 더본코리아가 진행한 릴레이 할인 행사를 따라다녔습니다. 매 끼니를 저렴하게 해결하기 위함이었죠.

서울 성북구 소재 대학교 인근 식당가 모습

■ 저렴한 대학가? 옛말…"한 끼 1만 원"

문제는 밥약이 이뤄지는 주 장소인 대학가의 물가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번 취재에서 만난 대학생 10명 중 7명이 '한 끼 1만 원'을 언급하며, 외식 물가 상승을 체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대학가의 물가는 어떨까요.

서울 성북구 소재 대학교의 주요 식당 거리에 방문해 후문으로부터 100m 이내에 있는 식당 11곳의 메뉴판을 들여다봤습니다.

그 결과, 각 식당에서 대표로 선보이는 메뉴를 주문한다고 가정했을 때 1인분 기준 평균 1만 427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은 1만 30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학생들은 공부 시간을 쪼개 한 시간을 꼬박 일해도 한 끼를 채 못 때우는 셈입니다.

과거 저렴함의 대명사였던 대학가도 고물가의 파고를 뛰어넘지 못한 것입니다.

서울 성북구 소재 대학가에서 닭갈비 집을 운영 중인 장기민 씨

■ "아무리 가격 낮춰도 학생 입장에선 비싸니까…."

고물가는 비단 대학생들만의 위기가 아닙니다.

8년째 서울 성북구 대학가에서 닭갈비 집을 운영 중인 장기민 씨는 "업주인 제 입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한 편인데도 학생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가격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게 애로사항"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이 가게의 닭갈비는 1인분에 9천 원.

기민 씨는 가게 메뉴판을 가리키며 "하다못해 요즘 지방을 가도 닭갈비가 1만 2천 원에서 1만 4천 원인데…"라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10년 가까이 대학생들의 외식 일상을 그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본 기민 씨는 최근 학생들의 소비 패턴에 변화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그는 "(돈이 없는 학생들은)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먹는다는지, 비싼 음식 위주로 소비를 줄여요"라며 "당초 일주일에 5번 먹었던 걸 2~3번 먹는 식으로 먹는 횟수 자체를 줄이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재학생 정태희 씨(좌)·안도준 씨(우)

■ '돈 아끼려' 편의점·패스트푸드점 맴도는 대학생들

비싼 외식 거리에서 이들이 찾은 곳은 그나마 저렴하게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입니다.

대학교 1학년으로 재학 중인 안도준 씨는 "돈 없을 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라면 같은 거 먹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1학년 이기흥 씨도 "다른 데는 다 1만 원 넘어가서 부담스러운데, 맥도날드는 1만 원 아래로 먹을 수 있으니까 싸게 먹을 수 있어요"라며 패스트푸드 소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맥도날드의 대표 메뉴인 '빅맥 세트' 가격마저 지난 2020년 5천900원에서 올해 7천400원으로, 5년 사이 25% 올랐습니다.

보다 저렴한 밥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 매섭게 오르는 물가를 따라잡아 보려 애쓰지만 버겁기만 합니다. 이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는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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