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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영화제 장미희·신철 위원장 인터뷰
"경이로운 물감인 AI, 영화 혁신 이끌 것"
데뷔 50주년 장미희 "게으르지 않은 삶"
3일 오후 7시 부천아트센터에서 특별한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명은 'AI 묵시록'.

고대 문자에서 시작된 인류 문명이 산업혁명과 전쟁 등을 거치며 AI(인공지능)로까지 발전한 역사를 10여분 분량의 영상과 안무로 표현한 작품이다. 제작진도 화려하다. 배우 겸 연출가 송승환이 자문하고, 양윤호 영화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최호정 안무가는 '포스트 휴먼'을 상징하는 춤으로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이는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3~13일)의 개막 공연이다. 이들을 재능 기부란 명분으로 한데 모은 이는 올해부터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은 배우 장미희(67)다. 지난달 30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3월 위원장이 된 뒤 석달 간 공들여 준비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함께 이끌게 된 장미희 조직위원장과 신철 집행위원장.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화제 성격과 맞고 화제성 있는 개막 공연을 하고 싶어 영화제에 제안했죠. 배우 이병헌 특별전도 마련했으니, 이 정도면 정말 판타스틱하지 않나요?(웃음)"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대학 교수(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와 영화 행정가(영화진흥위원회 위원 등)를 거친 그가 영화제 일에 뛰어든 건 '책임 의식' 때문이었다. 그는 "정지영 감독(부천영화제 명예 조직위원장)으로부터 제안을 받고 난감했지만, 영화계와 팬들을 위해 재능을 나누고 싶었다"면서 "AI라는 영화제 화두가 신선하고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올해 영화제에선 AI가 각본을 쓴 영화 '그를 찾아서'(피오트르 비니에비츠 감독)가 개막작으로 상영되며, 41개국 217편의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이날 인터뷰에는 신철(67) 영화제 집행위원장도 함께 했다. '결혼이야기'(1992)로 기획영화 시대를 열고, '구미호'(94)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CG(컴퓨터 그래픽)를 도입한 그는 2018년부터 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천영화제 혁신을 이끌어왔다.

지난해 AI영화 국제경쟁 부문, AI 필름메이킹 워크숍 등을 신설한 부천영화제는 최근 부천시, SBS와 손잡고 'AI 영상교육센터 부천'을 설립했다. 올해부터 매해 2000명씩 5년 간 AI 필름메이커 1만 명을 양성한다는 목표다. 신 위원장은 AI를 '경이로운 물감'이라고 정의했다.

"영상전공 학생들이 워크숍에서 머릿속에만 그리던 영상이 실제 만들어지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군요.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어떤 이들은 힘센 말을 한 마리 더 사는 게 낫다고 했지만, 자동차 세상이 되는 데 1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현실이자 메가트렌드인 AI와 친해지고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장미희 부천영화제 조직위원장은 "AI에 인문학적 철학을 탑재해야 기술의 방향성을 잃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 위원장은 "기술의 방향성을 잃지 않기 위해 AI에 인문학적 철학을 탑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관순 열사가 미소 지으며 걸어 나오는 AI 동영상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AI 기술에 스토리텔링이 결합되면 상상도 못한 결과물이 나옵니다. 단, 철학·인문학적 사유와 같이 가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신 위원장은 AI가 영화 창작의 민주화를 앞당길 거라고 단언했다. 제작비의 제약 없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에게 '이제 너희들과 제임스 캐머런은 상상력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고 말해줍니다. 자본의 싸움에서 상상력의 싸움으로 바뀐 겁니다. 후배들이 AI를 활용해 '듄' 같은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신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AI 덕분에 아이디어와 상상력만 있으면 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다"고 말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상해도 괜찮아(Stay Strange)'란 영화제 슬로건이 '창의성'과 직결된다고 두 위원장은 입을 모았다.
"젊은 친구들이 이 슬로건에 위안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머뭇머뭇 흔들리며 가는 게 인생인데, 이 말을 들으면 '한번 해볼까'란 생각이 드는 거죠. 다르게 보고, 비틀고, 변형하며 새로움을 만드는 '트랜스포머'가 많아졌으면 합니다."(장 위원장)

"창의적인 게 처음엔 다 이상합니다. 사진은 '영혼을 훔쳐가는 요물'이었고, 유성 영화는 '예술성을 망친다'는 비판에 직면했었죠. 예술은 늘 그런 경계에서 도전하고 전진하는 겁니다."(신 위원장)

장 위원장에게 올해는 매우 뜻 깊은 해다. 부천 영화제 조직위원장에 취임하고, 데뷔 50주년을 맞았을 뿐 아니라, 지난달 말 대한민국 예술원 신입회원에 선출됐다.

"예술원에서 통보 받았을 때 잠깐 감격했지만, 무심히 설겆이를 했어요. 게으르지 않았던 하루하루가 쌓여서 이런 날이 왔고, 저를 사랑해준 대중과 영광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만, 그는 손수 집안 일을 하고 정원을 가꾸고 길고양이 사료를 준다고 했다. "몸을 움직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가 나온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장미희 배우의 자택 3층에 있는 빈 유골함. 그는 유골함 맞은 편 의자에 앉아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고 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그의 자택 3층에는 빈 유골함이 놓여 있다. 천장을 통해 햇빛이 내려앉는 유골함 맞은 편 의자에 앉아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고 했다. 아랫층 서랍장에는 자신의 배냇저고리가 소중히 보관돼 있다. 자신의출발점, 종착역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셈이다.

"매일 내 죽음을 바라보고 기도하며 삽니다. 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삶을 살아왔어요. 내 안을 들여다보는 오롯한 시간이 많았죠. 내 안의 씨앗이 반듯해야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잖아요. 배역을 충실히 소화해내는 건 수행이자 윤회라고 생각합니다."

신 위원장이 "살아있는 동안 계속 윤회하시네요"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자, 그의 얼굴에 연한 미소가 퍼졌다.

〈4일 더중앙플러스에서 이병헌 배우전 특별 책자 ebook을 공개한다. 백은하 배우연구소장의 이병헌 인터뷰, 박찬욱 감독 등이 본 이병헌 등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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