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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알려졌다시피 미국 대통령제에선 연방 의원들이 장관직을 맡을 수 없다. 연방 헌법에 “재임 기간 신설되거나 봉급이 인상된 어떤 연방 정부 공직에도 임명될 수 없다”고 돼 있다. 상원의원이던 마코 루비오가 국무장관이 되면서 의원직을 내놓은 게 일례다. 예외 비스름한 게 부통령인데 상원의장이 된다. 단, 가부 동수일 때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고 상원의원도 아니다.

미국 건국 아버지들의 설계도가 그랬다. “야심은 야심으로 억제돼야 한다”는 제임스 매디슨의 말에서 고심을 엿볼 수 있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등 모든 권력이 한 사람이든 소수든 다수든, 그리고 세습이든 자의든 선출이든 상관없이 같은 손에 축적되는 것은 폭정의 정의랄 수 있다. 권력을 최대화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권력분립에 대한 위협이 생겨난다면 바로 그 권력 의지로 그 위협에 맞서야 한다.” 그는 입법부를 걱정했다. “최대의 전제적 위협은 입법부에서 나오는데, 입법부는 활동 영역을 사방으로 넓히고 모든 권력을 그 맹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당긴다”고 했다. 그는 의회를 상·하원으로 나누고 의원 겸직을 금지하자는 주장을 관철해 냈다.

원래 대통령제선 의원 공직 금지
우린 허용, 여당 대통령 종속 우려
겸직 비율 44%, 과도한 것 아닌가
귤이 태평양을 건너 탱자가 됐다. “헌법을 만들고 해산하는 원초적 입법가들의 집단이 아니라 헌법을 만든 후 권력의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할 정치인들의 집단”(권기돈, 『오늘이 온다』)에서 나온 설계도여서다. 의원내각제로 성안했다가 이승만이 “민간에 남아서 국민운동이나 하겠다”고 반발하자 대통령제를 가미했다. 첫 조각부터 의원 다수가 장관이 됐다.

1960년대 7년간을 제외하곤 의원들의 장관행은 한국 대통령제의 한국적 요소가 됐다. 그만큼 본래 의미의 권력분립에서 이탈했다. 국회의 본분은 행정부 견제인데, 의원이 장관이 되면서, 또 되길 바라면서 그게 안 됐다. 대통령의 의중을 따르다 아예 대통령·정부의 대변자가 되곤 했다. 여당의 대통령 종속을 낳곤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추가경정예산 시정연설을 하기 전 입장하며 의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반성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9년 여당이던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이 “개각 때마다 의원들이 입각설에 휘말리면서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의 지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면서 의원의 장관 겸직을 금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작 그 역시 여당 의원 신분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보건복지부 장관, 문재인 정부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서양 관료의 관찰대로 어떤 이성적인 성찰도, 여야 간의 타협도, 정책을 위한 진지한 토론도 마비시키는 권력을 향한 강고한 소용돌이다.

요즘 이게 더 심해졌다. 이전 정부에선 겸직 비율이 10~20%대였는데, 이번엔 44%(1일 기준)로 치솟았다. 이재명 정부가 “지금까지 좋다(so far so good)”(김종인)는 평을 듣는다지만, 대통령제 차원에선 그렇지 않다. 양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그렇다. 과거와 달리 중진일수록 당성(黨性)이 충만한데, 주로 이들이 발탁됐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 관리를 책임질 행안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의원을 보라. 그간 국세청장 출신 정치인은 있었어도, 여당 의원 출신 국세청장은 없었다. 이젠 정치인 수장이 이끌게 됐다. 진정 고위직이 되려면 특정 정파에 투신하고 배지 정도는 달아야 하는 시대가 됐다. 공직이 사실상 당직이 되고 있다.

이러니 인사청문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후보자를 감싸는 걸 넘어, 야당 청문위원을 청문하겠다고 나서는 희비극이 벌어진다. 협상하는 게 일인 여당 원내대표가 야당을 향해 “민생 방해 세력과의 전면전”을 선포한다. 여당이 알아서 온갖 데와 싸우니, 대통령은 듣기 좋은 소리만 해도 되게 됐다. 정상인가.

미 헌법 성안 후 벤저민 프랭클린에게 누군가 “어떻게 되었나. 공화정인가. 군주정인가"라고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공화정이다. 여러분이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린 제대로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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