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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오른쪽) / 사진=연합뉴스
‘어떻게 미국이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을 만들었나.’

6월 24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오늘날 미국과 이란은 군사 충돌까지 치닫는 ‘적국’이다. 하지만 과거는 달랐다. 미국은 이란을 중동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맹국으로 봤고, 협력은 핵기술 이전까지 나아갔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기점으로 양국 관계는 극적으로 바뀌었다. 석유를 이유로 중동 안정을 꾀하는 미국과 시아파 세력 확장을 목표로 하는 이란의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양국은 협상과 적대, 제재와 보복을 반복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두 국가의 악연을 되짚어봤다.

석유 국유화와 CIA의 개입, 갈등의 서막
미국과 이란의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란의 석유 산업은 영국의 앵글로-이란 석유회사(AIOC)가 독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 내에서는 외세로부터의 자주권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운동이 확산됐다. 1951년 총리직에 오른 무함마드 모사데크는 석유 국유화를 추진했다.

영국은 이란의 석유 국유화에 강하게 반발하며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군사 개입까지 검토하던 영국은 미국을 끌어들여 모사데크 정권 전복을 모의했다. 하지만 당시 트루먼 행정부는 무력 개입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1953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 냉전이 본격화되자 미국은 이란이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될 가능성을 우려했고 CIA와 영국 MI6는 ‘아작스 작전’을 통해 모사데크 축출에 나섰다.

그해 8월 군부 쿠데타로 모사데크 정권은 무너졌다. 이어 무함마드 리자 팔레비 국왕이 권좌에 복귀했다. 아작스 작전은 미국의 중동 개입이 본격화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이후 이 사건은 중동 전역에서 반서구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이 건넨 핵 개발 씨앗
팔레비 국왕은 이란을 친서방 중동 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1963년 ‘백색혁명’이라는 이름의 근대화 개혁을 추진했다. 여성의 히잡 착용을 완화하는 등 급속한 서구화 정책이 시행됐다. 이는 이란 종교계와 전통 보수층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팔레비의 이란은 미국에게 중동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동맹이었다. 팔레비 국왕은 스스로를 중동의 ‘지역 경찰’로 자처하며 미국산 무기 구매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다. 미국은 첨단 전투기와 무기를 이란에 수출했다. 이 시기 이란은 미국 무기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로 기록된다.

이란은 핵기술 개발에도 나섰다. 1957년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란과의 핵 협력을 개시했고, 본격적인 핵 인프라 구축이 시작됐다.

1968년 이란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하며 평화적 목적의 원자력 이용 권리를 갖게 된다. 그러나 1974년 이란이 핵연료의 자체 생산과 재처리 능력 확보를 시도하자, 기술이전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한다. 이에 지미 카터 행정부는 원자로 공급 계약에 ‘재처리 금지’ 조항을 넣으며 기술 통제를 강화했다.

“미국에 죽음을” 외교 단절로 치달은 시위
1970년대 후반 급속한 서구화와 경제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이란 전역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번졌다. 시위대는 “샤(왕)에게 죽음을,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팔레비 왕정과 미국에 대한 분노를 분출했다. 1979년 1월 팔레비 국왕은 이란에서 도망쳤고, 시아파 최고 성직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귀국해 이슬람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같은 해 11월 ‘이란 인질 사건’이 발생한다. 미국이 팔레비 국왕의 입국을 허용하자 이에 반발한 이란 과격파 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점거했다. 당시 미국 외교관 52명이 444일간 억류됐다.

사건 직후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그리고 이란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하며 본격적인 경제제재에 돌입했다. 이슬람 혁명과 인질 사건은 양국 관계에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남겼다.

1980년에는 이라크가 이슬람 혁명 직후의 혼란을 틈타 이란을 침공해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은 공식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이라크를 지원했다. 해상에서는 이란 군함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핵 개발 페달 밟는 악의 축’ 이란
1990년대 이란은 러시아의 기술 지원을 받아 본격적인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란-이라크 전쟁이 이란에 핵 개발 의지를 심어줬다는 분석도 있다. 이란 정부는 “전력 생산 등 평화적 목적의 개”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은 이 계획을 핵무기 개발로 의심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강경한 대이란 정책을 펼쳤다.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북한과 함께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적대적 기조를 공식화했다. 같은 해 이란 내 비밀 핵시설이 존재한다는 CNN의 보도도 나왔다.

2003년 10월, 국제사회의 압박 속에서 이란은 핵시설 일부 가동 중단과 핵 관련 부품 제조 중지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5년 보수 강경 성향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에 취임하자 이란은 우라늄 농축을 재개하며 핵 개발 속도를 높였다.

미국은 2006년 ‘이란 제재법(ISA)’을 통해 이란 국영은행과의 거래를 차단한다. 2007년에는 이란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며 자산을 동결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이란 제재 결의안을 채택했고, 2008년 미국은 전면적인 대이란 경제제재를 단행하기에 이른다.

2011년 11월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보고서가 발표된다. 이란이 핵무기 기폭장치 개발을 위한 컴퓨터 시뮬레이션 실험을 수행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유엔과 미국은 제재를 더욱 강화했다.
핵 합의 탈퇴와 솔레이마니 사살, 치닫는 갈등
2013년 중도 성향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집권하며 이란은 핵 협상에 다시 복귀한다. 그리고 2015년, 미국과 이란은 ‘포괄적 공동행동 계획(JCPOA)’에 최종 합의하기에 이른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 농도를 제한하고 IAEA의 감시를 수용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단계적으로 제재를 해제했다.

그러나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JCPOA의 일방 탈퇴를 선언한다. 이에 맞서 이란도 JCPOA 이행을 단계적으로 중단했고, 고농축 우라늄 생산을 재개하며 핵 프로그램을 복원해 나갔다.

2020년 1월, 미국은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를 사살한다. 이란은 이라크 주둔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며 보복에 나서며 핵 합의 이행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이후 이란은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저항의 축’ 대리 세력들과 연결되며 미국과 충돌해왔다.

누적된 양국의 갈등은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6월 21일(현지 시간) 미국이 이란 지하 핵시설 3곳을 직접 폭격했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우려가 커졌지만 이란이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휴전 합의를 이행하면서 충돌은 일단락됐다. 다만 이란이 공식적으로 핵 포기를 선언한 것은 아니다. 이란은 평화적 핵 프로그램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란의 향후 행보에 따라 추가 공습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발언하며 양국 간의 긴장은 여전한 상태다.


고송희 인턴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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