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등재 당시 '노동 강요' 언급하고도 딴소리…정보센터 전시도 왜곡·부실
작년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도 영향…한일, 추도식 등 놓고 갈등 여전
작년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도 영향…한일, 추도식 등 놓고 갈등 여전
일본 나가사키현 군함도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교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오는 5일이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규슈 나가사키현 '군함도' 등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지 정확히 10년이 된다.
나가사키시에서 배로 40분이면 닿는 하시마(端島)의 별칭인 군함도는 일본이 2015년 7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하 '산업혁명유산') 중 하나다.
일본 정부는 산업혁명유산을 등재할 당시 조선인 강제동원 설명과 관련된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공개 약속했지만, 아직도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일본은 산업혁명유산 등재 이후 오히려 조선인 징용·위안부와 관련해 강제성이 없었다는 주장을 강화했으며, 세계유산에서 전체 역사를 외면하고 자국에 유리한 사실만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안내판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군함도 외에도 강제노역 현장 많아…한일, 세계유산 등재 전후 외교전 치열
산업혁명유산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만들어진 조선, 제철·제강, 석탄 산업 시설 23개로 구성된다.일본은 조기에 산업화를 이룩한 서양에서 멀리 떨어진 동양 섬나라가 반세기에 걸쳐 추진한 공업화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이들 유산에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들 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지역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군함도를 포함해 야하타 제철소, 나가사키 조선소, 다카시마 탄광 등 7곳에서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동원된 조선인 수만 명이 노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과 일본은 2015년 독일에서 개최된 세계유산위원회 막판까지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고,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각 시설의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라는 자문기구 권고를 충실히 반영할 것이라고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밝혔다.
당시 일본 대표는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하여 동원돼 가혹한 조건 하에서 노동을 강요당했다"며 일본은 정보센터 설치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은 이 약속을 발판 삼아 산업혁명유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했지만, 등재 직후부터 태도를 바꿔 강제노동이 없었다는 억지 논리를 폈다.
일본 정부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대표가 영어로 언급한 '노동을 강요당했다'(forced to work)를 일본어로는 '일을 하게 됐다'로 표현했고, 각료들도 '노동을 강요당했다'는 영어 언급이 '강제노동'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이후에도 조선인 강제노동을 명확히 인정하지 않은 채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른바 '물타기' 전략을 구사했다.
2017년 12월 유네스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강제'(forced)라는 단어를 빼고 '지원'(support)이라는 용어를 넣어 강제성을 희석했다.
재일교포 고 김광렬 씨가 촬영한 군함도 광부관리사무소
[국가기록원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국가기록원 제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엉뚱한 곳' 도쿄에 세워진 정보센터…내용도 강제노동은 전혀 부각 안돼
일본이 산업혁명유산과 관련된 약속을 어겼다고 비판받는 결정적 이유는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이하 정보센터) 때문이다.산업혁명유산 23개 가운데 군함도를 비롯한 16개는 규슈에 있다.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에는 야마구치현에 5개가 있고, 시즈오카현과 이와테현에 각각 1개씩 존재한다. 다만 야마구치현은 규슈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
일본은 이러한 유산 분포와 무관하게 정보센터를 유산이 많은 규슈가 아닌 수도 도쿄에 세웠다. 한국으로 치면 세계유산인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전시관을 서울에 설치한 셈이다.
세계유산 등재 5년 후인 2020년 개관한 정보센터는 조선인 강제노동을 전혀 다루지 않고 일본 산업화가 자랑스럽고 중요하다는 내용만 기술해 역사 왜곡 지적이 제기됐다.
예컨대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군함도 주민 발언을 소개하면서도 이들 유산에서 조선인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한국은 산업혁명유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철회해야 한다고 유네스코에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약속한 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했다"고 반박했다.
양국은 이후에도 세계유산위원회 등에서 일본 측 '약속'을 둘러싸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으나, 일본의 조치는 사실상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두 나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강제로 노역한 또 다른 장소인 니가타현 '사도 광산'이 지난해 7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도 전체 역사 반영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일본은 사도 광산의 경우 산업혁명유산과 달리 등재 직후 광산 인근 건물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 공간을 만들어 공개했지만, 전시물에서 '강제'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았다.
또 세계유산 등재 시 약속한 사도 광산 노동자 추도식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추도사 내용·행사 명칭 등과 관련해 한국과 인식 차를 보였고, 결국 추도식은 한국 측 인사가 참석하지 않아 '반쪽 행사'로 치러졌다.
양국은 올해도 사도 광산 인근에서 추도식을 치를 예정이지만, 공동으로 순조롭게 행사를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는 지난달 30일 올해 사도광산 추도식이 당초 예정됐던 7∼8월에는 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