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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혜 외교안보부장
문재인 정부 이후로 ‘완전한 비핵화(Complete Denuclearization)’라는 표현을 쓰게 됐지만, 북핵 문제에서 국제사회가 견지해온 오랜 원칙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 CVID)’다. 문재인 정부는 CVID에 대한 북한의 거부감을 고려, 2018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에 CVID 대신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표현했다.

당시 정부는 완전한 비핵화와 CVID가 사실상 같은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불가역성, 북 비핵화의 핵심
이란 핵의 ‘물리적 I’ 현실화
김정은에겐 실존적 공포일 듯

CVID에서 C(완전한 비핵화)는 V(검증)와 I(불가역성)의 달성을 통해 도출되는 결과로, 말하자면 최종적인 상태다. 그러니 문재인 정부의 설명은 큰 틀에서는 맞다.

하지만 그렇게 축약해버리기에는 V와 I에 담긴 의미가 너무 크다. 그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고비마다 막혔던 건 결국 V를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V의 목표는 I, 즉 불가역적 비핵화가 완료됐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직접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약속했다. 이어 다음달인 2018년 5월 한국 언론을 포함한 국제 기자단을 현장에 불러놓고 폭파하는 장면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외부 검증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당시 폭파했던 풍계리 3번 갱도는 완전히 복원돼 언제든 추가 핵실험을 진행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게 한·미 정보 당국의 공식적인 평가다. 애초에 폭파 당시 I, 즉 불가역적인 불능화도 아니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V, 사후 검증도 이뤄지지 않은 결과다.

풍계리 핵실험장 폭파는 I가 얼마나 힘든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리고 북한 비핵화에서 I의 핵심은 사실 핵 과학자, 이른바 ‘핵 두뇌’다. 제재로 온갖 물자 수급이 막힌 열악한 환경에서도 북한이 자력으로 다량의 핵탄두 생산에 성공한 원동력이 이들이다.

엄밀히 따져 I는 영구적 불가역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비핵화 협상에 관여했던 이들은 I의 의미를 ‘북한이 다시 핵을 가지려 했을 때 너무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해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게 만든다’는 취지로 이해한다. 시설을 부수고 장비를 망가뜨린다 해도 핵 두뇌가 건재하다면 북한이 핵 재무장시 치러야 할 비용이 훨씬 적어진다.

새삼 이런 I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 이유는 최근 이스라엘-이란 사태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대규모 폭격에 더 시선이 쏠리긴 했지만,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공을 들인 건 이란 핵 과학자 제거였다. 소설 시리즈의 이름을 따 ‘나니아 작전’으로 명명한 해당 계획을 통해 이스라엘은 테헤란 자택에 머물던 이란의 최고 핵 과학자 9명을 거의 동시에 사살했다.

이란이 무기급으로 우라늄을 농축하는 걸 저지하지 못했다고 판단하자, 핵무기 제조 과학자들을 암살해 아예 싹을 자르기로 한 것이다. 곧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란의 핵 시설 3곳을 직접 타격했다. 핵 능력 제거의 정도를 두고 공방이 여전하지만, 핵 두뇌와 핵심 시설을 폭격으로 제거해버린 ‘물리적 I’가 현실화한 셈이다.

이를 바라보는 김정은의 심경은 어떨까. 이제 트럼프에게 뭔가를 기대하기도 어려우니, 핵 과학자들을 꽁꽁 숨겨 놓고 중·러와의 관계를 관리하며 핵 능력 고도화에 몰두해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란과 북한의 상황은 다르기도 하다.

다만 이와 별개로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핵에 대해 물리적 I를 실현하는 과정은 김정은에게 실존적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트럼프는 지금도 이란이 다시 우라늄을 농축할 경우 또 공습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I만 가능한 건 아니다. 옛 소련 붕괴로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은 자국 영토에 ‘비자발적으로’ 핵무기를 갖게 됐다. 이에 미국은 ‘넌-루거법’을 마련해 이들의 핵무기 폐기를 위한 기술과 자금을 지원했다. 특히 핵 개발에 동원된 옛 소련 과학자 등에게 재취업을 알선하고, 전직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 핵 두뇌의 유출이나 재활용을 막았다. 핵 두뇌를 물리적으로 제거한 게 아니라 고난 속에 핵을 개발할 필요가 없도록 사고방식과 환경을 바꾼 것이다.

I를 달성하는 방식에는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김정은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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