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라 클라시크 발레단, 7월 고양과 부산에서 ‘백조의 호수’ 공연
국내 기획사와 공연장은 “민간 단체인 만큼 공연 취소 이유 없다” 입장
국내 기획사와 공연장은 “민간 단체인 만큼 공연 취소 이유 없다” 입장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됐던 러시아 예술단체의 내한공연이 재개를 앞뒀다. 모스크바 라 클라시크 발레단(Moscow Ballet ‘La Classique’)은 7월 5~6일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 7월 12~13일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백조의 호수’를 선보일 예정이다. 다만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두 공연장에 중단을 요청하는가 하면 일부 주한 유럽연합(EU) 회원국 대사관도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스크바 라 클라시크 발레단의 내한공연은 부산에 본사를 둔 기획사 월드쇼마켓이 진행하고 있다. 두 공연장 모두 대관이다. 당초 부산시민회관은 공동주최였지만,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의 항의에 대관으로 바꿨다. 하지만 두 공연장 모두 해당 발레단이 우크라이나 무용수가 포함되는 등 정치적 성격이 없는 민간 순회 예술단체인 만큼 공연을 취소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내한공연에 필요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추천 심사를 통과한 데다 주러 한국 대사관에서 비자까지 받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세계 각국 예술계에서 러시아 예술가와 예술단체가 퇴출됐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친(親)푸틴’ 성향이 아닌 러시아 예술가들은 서방 무대에 다시 서게 됐다. 우리나라도 한-러 민간 예술가(단체) 사이의 자율적 교류를 제한하고 있지 않아서 그동안 다수의 연주자, 지휘자, 무용수 등이 내한공연을 가진 바 있다. 다만 한국 정부가 대러 제재에 동참하는 상황에서 러시아 국공립 예술단체나 ‘친푸틴’ 예술가들의 내한공연은 중단됐다.
이와 관련해 지난 2023년 국내 기획사인 국제음악예술협회가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발레단(Russian State Ballet Theater of Moscow)의 내한 공연을 예고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이듬해엔 ‘푸틴의 발레리나’로 불리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모댄스’와 볼쇼이 발레단 주역 무용수들의 ‘볼쇼이 발레 갈라’ 내한공연이 논란을 일으킨 끝에 취소됐다. 당시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 ‘모댄스’ 반대 입장문을 낸 뒤 국내 기획사 인아츠와 대관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은 관객과 아티스트의 안전을 이유로 취소를 결정했다. 그리고 ‘볼쇼이 발레 갈라’는 주최사인 발레앤모델이 공연명과 내용, 출연진 등을 바꾼 것과 관련해 세종문화회관의 대관 재심의에서 부결된 데다 법원에 낸 계약이행 가처분 신청도 기각되면서 취소됐다.
재한 우크라이나인 공동체가 지난 6월 22일 고양아람누리 앞에서 모스크바 라 클라시크 발레단의 내한 공연에 반대하는 시위를 열고 있다. 우크라이나 뉴스 인스타그램 캡처
하지만 이번 모스크바 라 클라시크 발레단의 내한 공연은 앞선 사례들과 다르다는 게 고양아람누리와 부산시민회관의 입장이다. 처음에 단체명이 모스크바 라 클라시크 국립 발레단(Moscow State Ballet ‘La Classique’)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국공립 단체로 오해받았지만 민간 단체가 맞다는 것이다. 이는 단체의 해외 투어를 담당하는 스페인 기획사 보호 프로덕션(BOHO Production)의 공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고 밝혔다. 또한 이번 공연을 수입한 월드쇼마켓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서커스단 엘리시움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내한공연을 진행하는 등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고 부산시민회관 측은 강조했다.
이에 대해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나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는 ‘우크라이나 뉴스’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계속하는 동안 러시아 발레단이 해외에서 ‘정상성’의 환상을 만들고 전 세계의 관심을 러시아 군대의 범죄로부터 돌리고 있다”면서 “침략을 가리는 문화는 그 자체로 무기이며, 이 발레 투어는 크렘린 선전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가 ‘소프트 파워’를 통해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멈출 때까지 러시아 문화 행사를 보이콧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는 6월 16일, 22일, 30일 세 차례에 걸쳐 고양아람누리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한편 러-우 전쟁 장기화 속에 러시아 예술단체와 친푸틴 예술가들이 서방 무대 복귀에 시동을 걸고 있다. 그동안 중국, 북한, 두바이, 태국, 세르비아 등 러시아와 가깝거나 러-우 전쟁에 중립을 표방한 국가들에서만 공연을 가지다가 근래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던 국가들에서도 공연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계 러시아 지휘자 테오도르 쿠렌치스가 이끄는 러시아 오케스트라 무지카 에테르나는 러-우 전쟁 직후 유럽에서 보이콧을 당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스페인과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에서 꾸준히 공연하고 있다. 전쟁을 지지한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는 2023년 11월 싱가포르에서 콘서트를 가졌고, 러시아 음악계의 대표적 친푸틴 인사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스페인 기획사의 초청으로 내년 러시아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서방 예술계가 러시아 예술가들을 다시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