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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낮12시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앞에서 친족 성폭력 생존자와 활동가 20여 명이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전면 폐지 촉구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오소영 기자

" 제가 8살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아버지로부터 지속해서 성폭력을 당했어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줄 알고 혼자 버티다가 18년이 지난 뒤에야 이렇게 말을 해봐요. "
지난달 28일 친족 성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하자고 촉구하는 시위에 참여한 A씨(26)가 말했다. A씨를 비롯한 23명은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에 모여 피켓 시위를 했다. 관련 국민청원이 올라온 지 6년이 지나고 여러 피해자가 처음으로 공개 석상에 모여 낸 목소리였다.

현행 청소년성보호법 20조 제2·3항에 따르면 13세 미만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친족 성폭력의 경우 공소시효가 없다. 하지만 13세부터 19세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범행의 공소시효는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로부터 10년이다. 즉 13~18세에 성폭력을 당했던 피해자가 만 29세가 되면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려워지는 셈이다.

2019년 6월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를 폐지해달라는 글을 올린 B씨(56)도 8살 때부터 약 10년간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는 공소시효가 끝난 40대 후반이 돼서야 과거의 상처와 마주했다. B씨는 “청원 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며 “공소시효를 폐지해 처벌할 수 있게 돼야 피해자들에게 비로소 치유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9년 6월 24일 푸른나비(활동명·56)가 올린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국민청원. 해당 국민청원은 3개월 만에 청원 동의 4512명을 기록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신고까지 긴 시간 필요…충격에 기억 해리도”
피해자들은 범죄를 당했다는 인지가 늦거나, 신고까지 오랫동안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호소했다. 충격으로 기억 해리(특정 사건이나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는 현상)를 겪는 경우도 있다. 만 13~18세에 당한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10년으로 제한하는 건 짧다고 증언하는 이유다.

A씨는 “처음엔 내가 겪는 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잘 안 되었다”며 “성인이 돼서야 불현듯 전부 사실이었다는 게 실감 났고,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 22살에 집에서 뛰쳐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받아들이고 터놓기까지 18년이 걸렸다”며 “금전적 여유까지 더해져야 법적으로 싸워볼 힘이 날 것 같은데, 아직 치유도 벅찬 내게 10년이란 제약이 기회를 빼앗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군대 휴가를 나온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C씨(35)는 “괴로움에 피해 기억이 한동안 해리됐다”고 했다. 그는 “26살쯤 다른 일로 상담을 받다 갑자기 떠올랐고, 가족들에게 말했지만 옛일이니 잊어버리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지난한 싸움 끝에 가족과 연을 끊은 B씨는 정신 차려보니 30대가 돼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정근영 디자이너

실제로 친족 성폭력은 피해 발생 한참 뒤에야 신고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 사이에 오랫동안 심리적 지배나 정서적 연결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2022~2024년 친족 성폭력 피해 상담사 절반 이상이 공소시효 후에야 상담했다. 2020년 미국의 아동 권리 보호 싱크탱크 차일드유에스에이(ChildUSA)에서 아동 성 학대 피해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한 평균 연령은 52세에 이른다.



친족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논의 필요
친족 성폭력의 특징을 고려해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부모를 고소하는 것 등을 고민하게 되고 가족의 2차 가해를 당하면서 피해자들은 더욱 입을 다물게 된다”며 “미성년자 친족 성폭력에 대해선 공소시효를 전면 폐지하고, 다른 범죄처럼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기간의 시효를 정해두지 않는 등 민사 소멸 시효 개정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13세 이상 미성년자도 여전히 보호를 받아야 하는 존재”라며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는 순간 가족 내에서 안전을 담보 받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동·성 문제처럼 특수성을 지닌 범죄는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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