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주행한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사망했던 ‘서울 시청역 교차로 차량 돌진 사고’ 1주기를 하루 앞둔 30일 당시 사고 현장인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8길에 차량용 방호 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이준헌 기자
1년이 지났지만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 호텔 앞부터 시청역 근처까지 나가는 도로 풍경은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보행자를 지키기 위해 새로 만들어진 건 표지판과 울타리가 전부였다. 이 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안전해졌다고 체감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1년 전인 지난해 7월1일 밤 이곳에서 9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차모씨(69)가 몰던 차량은 웨스틴조선 호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일방통행로를 빠르게 역주행한 뒤 인도로 돌진했다. 동료들과 저녁을 먹은 뒤 길에서 한담을 나누던 시민 등이 피할 새도 없이 세상을 등졌다.
지난 29일 밤 사고 현장을 다시 찾았다. 웨스틴조선 호텔 맞은편 도로에는 붉은 LED(발광 다이오드) 원 안에 ‘진입 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이 빛나고 있었다. 사고 현장에는 철제 ‘차량용 방호 울타리’가 설치됐다. 반면 맞은편 인도에는 그 보다 강도가 약한 보행자용 울타리가 그대로 있었다.
지난 29일 오후 10시 30분쯤 서울 중구 지하철 시청역 인근에서 한 차량이 울타리와 볼라드 사이 공간으로 인도로 진입하려 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29일 오후 9시 30분쯤 ‘시청역 차량 돌진 사고’가 시작됐던 서울 지하철 시청역 인근 웨스틴 조선 호텔 앞 도로에 붉은 LED(발광 다이오드) 원 안에 ‘진입 금지’라고 적힌 표지판이 빛나고 있다. 강한들 기자
사고현장 근처를 지나는 시민 대부분은 1년 전 사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사고 현장 근처를 지난다는 곽성현씨(29)는 “사람 사는 게 덧없다는 생각을 현장을 볼 때마다 한다. 돌아가신 분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 근처 한 매장에 5t 트럭으로 물건을 배달하는 조병관씨(32)는 1년전 사고 당일에도 일하고 있었다. 조씨는 “한 시간만 늦게 사고가 벌어졌으면 나에게 일어났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며 “이태원 참사 때도 현장 근처에 있었는데, 두 번씩이나 참사를 비껴갔다는 생각에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근처 상인들은 사고 영향으로 매출이 줄었다고 말했다. 한 매장의 업주 A씨는 “매장 앞으로 찍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이 매장 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지나가는 경우도 잦다”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아직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는 1일 1주기에 조문하러 오는 시민들이 놓은 꽃을 보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늘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오후 9시 30분쯤 ‘시청역 차량 돌진 사고’가 벌어졌던 서울 지하철 시청역 근처 인도에 차량용 방호울타리가 설치돼 있다. 강한들 기자
서울시는 사고 두 달쯤 뒤인 지난해 9월 사고 발생 위험이 큰 급경사, 급커브 도로 98곳에 차량용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무게 8t 차량이 시속 55㎞, 15도 각도로 충돌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운전자가 주행 방향을 헷갈릴 수 있는 일방통행 도로에는 LED 표지판을 설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윤모씨(26)는 “차량 충돌이 있었던 쪽만 울타리를 보강하고, 반대쪽에는 보행자용 울타리가 그대로 있다”며 “체감할 정도의 보완이 있었던 것은 아닌 거 같다. 사고 지역만 수습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아이들과 함께 현장 근처를 지나던 박모씨(38)도 “울타리는 미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안전이 더 중요하니, 가능한 만큼 바꾸는 게 좋겠다”며 “미관상 문제는 사람들이 금방 적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차량용 방호 울타리를 설치하기로 계획한 지점 중 이날까지 총 5곳에만 울타리 설치를 마쳤다. 서울시 관계자는 “경찰청, 자치구, 도로교통공단과 함께 차량 침범 위험 구간 수요 조사를 한 뒤 장소를 선정하고, 업체를 골라서 지난 5월부터 울타리 설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사고 지점 맞은 편의 경우 중복 작업을 피하기 위해, 인도 개편 사업과 함께 오는 9월까지 울타리 설치를 할 예정이고, 이미 선정된 지점에 대해서는 올해까지 울타리 설치를 마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강한들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