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님 개시도 전에 “차비 줄 수 있냐”며 노숙인 들어와
짠한 맘에 현금 쥐어 내보내…“다음에 오면 알바라도”
지난 27일 서울 중구의 한 음식점을 찾은 여성 노숙인. 한은진씨 제공
가게에 방문해 다짜고짜 아르바이트를 구하느냐고 묻는 손님이 있다면 어떨까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당황스러울 겁니다. 이 손님이 차비까지 요구한다면 그 당황스러움은 더 커지겠죠. 하지만 다소 뜬금없는 손님의 요청에 딸을 떠올리며 차비를 쥐여 보낸 사장님이 있습니다. 서울 중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한은진씨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27일 한씨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도시락 매장에 한 여성이 들어왔습니다. 한씨는 자연스레 주문을 받으려 했죠. 하지만 이 여성은 주문은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냐고 물었습니다. 한씨가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않는다고 하자 가게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죠. 무슨 일인지 묻자 “차비 2000원을 빌려줄 수 있냐”는 질문이 되돌아 왔습니다.
한씨는 이 여성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20대로 보이는 앳된 여성은 한여름에 두꺼운 재킷을 입고 있었죠. 손에 든 쇼핑백에는 옷가지가 한가득이었습니다. 한씨는 이 여성이 노숙자라는 걸 그제야 눈치챘습니다.
아직 마수걸이도 못 한 상황이었지만 그보다 이 여성에 대해 짠함이 한씨의 마음속에 피어났습니다. 카드 결제가 많은 매장이지만 이날 따라 금고에는 마침 2000원이 있었죠. 한씨가 2000원을 건네자 이 여성은 “감사하다”며 쇼핑백에 돈을 넣고 떠났습니다.
한씨가 이같은 사연을 자영업자 커뮤니티 ‘아프니까 사장이다’에 공유하자 “마음이 아프다” “많이 놀라셨을 텐데 어른스럽게 대처 잘하셨다” “더 좋은 일로 돌아올 거다” 등의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가게에 노숙인이 찾아온 건 한씨도 처음 경험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씨는 매몰차게 내쫓기보다는 따뜻함을 선사하기로 했죠. 오히려 돈만 주고 보낸 게 아쉽다고 했습니다. 한씨는 “워낙 어린 아가씨라 저도 딸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이 쓰였다”며 “만약 다시 온다면 아르바이트를 시켜서 돈을 주고 밥도 먹이고 싶다”고 말했죠. 그러면서 “그분이 나간 뒤에야 밥이라도 먹일 걸 하는 생각이 들어서 후회했어요”라며 “어떤 사연인지 모르지만 새 출발 하길 바란다”고 응원의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씨의 따뜻함 덕분일까요. 이 여성이 다녀간 다음 날 매장의 매출이 폭등했습니다. 원래 하루 20만원이던 매출이 10배 가까이 치솟았죠.
한 누리꾼은 한씨의 선행을 두고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좋은 일 하셨네요. 복 드리려고 천사가 잠시 다녀가신 걸지도.”
국민일보
권민지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