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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토차관 재판서 녹취 등 공개
직원들 “결국 원하는 건 청와대
협조 않으면 단독일탈 결론 압박”

“값 조정은 검증행위”라던 직원들
고강도 조사 뒤 “정부 압박에 조작”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감사원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감사원이 ‘부동산 통계조작 의혹’을 감사하면서 한국부동산원 직원들을 압박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처음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 감사원이 ‘검찰 수사 요청’이란 결론을 정해놓고 문재인 청와대를 겨냥한 ‘끼워맞추기식’ 감사를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대전지법 제12형사부(재판장 김병만) 심리로 지난 25일 열린 공판에서 부동산원의 전 주택통계부장 ㄱ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됐다. 이날 재판에서 피고(윤성원 전 국토부 차관) 쪽 변호인은 검찰이 제출한 재판 증거인 ‘감사 문답서’와 ‘녹취록’ 등을 ㄱ씨에게 보여주며 질의를 이어갔다. ‘감사 문답서’는 감사원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불러 진술 조사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고, ‘녹취록’은 부동산원 주택통계 담당자인 ㄴ씨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대화 내용을 검찰 속기사가 그대로 옮긴 것이다.

‘감사 문답서’를 보면, 감사원은 감사(2022년 9월26일) 시작 전인 2022년 9월15일 ㄴ씨를 불러 “(다른) 감사 대상자들에게 오늘 들은 얘기를 잘 전달하고 머리를 맞대서 어떻게 대응할지 어떤 자료를 제출해야 할지 상의하라. 당신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입증해라, 그렇지 않으면 한국부동산원과 본사 담당자들이 (통계 조작의) 모든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도 굳이 길게 가지 않을 것이고, 부동산원이 통계조작을 했다고 하고 끝낼 것이다. 그러니 잘 대응하라”며 ‘수사 의뢰와 통계청 통보’를 언급했다.

녹취록에는 ㄱ·ㄴ씨 등 감사원 조사 대상인 부동산원 직원들이 “감사원이 본사의 통상적 주택가격조사 조정 업무를 통계법 위반이라 우긴다. 결국 원하는 건 윗선이고, 청와대다.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부동산원의 단독 일탈로 결론 내 검찰에 수사 의뢰한 뒤 통계청에 통보하고 끝낼 거란 식으로 압박한다”고 대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검찰은 통계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하며 압수한 ㄴ씨 휴대전화에 있던 음성파일 수십개를 확보했으나, 그 내용은 실제 수사 과정에선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 25일 재판에서 ㄱ씨는 “ㄴ씨가 대화를 녹음한 음성파일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검찰 조사 때도 녹취록 내용에 대해선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최달영 감사원 제1사무차장이 2023년 9월15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제3별관에서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수사요청 관련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동산원 직원들이 장기간 매우 강도 높은 감사원 조사를 받으며 심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린 정황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다.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감사 문답서’를 보면, ㄱ씨는 공식 감사기간(2022년 9월26일~2023년 3월31일) 전인 9월19일과 감사기간 동안 4번, 감사 종료 뒤인 2023년 4월12일~5월25일 15번 등 총 24차례 감사원에 불려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2023년 5월2일에 이어 다음날 바로 진행된 5월3일 조사는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다음 날 새벽 3시 넘어 끝나기도 했다.

2023년 3월27일 ㄱ씨와 ㄴ씨가 나눈 대화 녹취록에선, ㄴ씨가 “(감사관이) 기억 안 난다고 하면 계속 물어보고, (다시) 기억 안 난다고 하면 기억날 때까지 물어보고, 그걸 새벽 3시·4시까지 하고 그랬다”고 말하자, ㄱ씨가 “기억이 안 나는데 어떻게 기억을 한다는 거냐”고 맞장구치는 내용도 나온다.

ㄱ·ㄴ씨는 감사 초반엔 일관되게 “부동산원의 지사 조사원이 올린 주택가격을 본사가 조정하는 하는 것은 업무에 따른 당연한 검증행위이지 위법이 아니다. 부임 전부터 자료 메일수신처에 청와대가 있어 메일을 보낸 것이지, 청와대와 직접 연락하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원 조사가 이어지면서 “통계 조작이 맞다. 부동산원이 통계청 업무를 방해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했다. 국토부와 청와대 압박으로 어쩔 수 없이 한 것”이라고 바뀌었다.

ㄱ씨는 25일 재판에서 여러 차례 “여전히 본사의 주택가격 조정 행위는 통계법 위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으나, 피고 변호인이 감사 문답서와 녹취록을 보여주며 “감사 후반에는 왜 지금과 다른 답변을 했냐”고 묻자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반복된 감사원 조사의 강도와 당시 느낀 압박감을 묻는 말에 ㄱ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힘들었던 건 맞다”고 했다.

감사원은 감사 종료 5개월여 뒤인 그해 9월13일 ‘부동산 가격과 고용 통계, 가계소득 분야 국가 통계를 조작한 혐의’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 4명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22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이틀 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언론에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국가 기본 정책인 통계마저 조작해 국민을 기망한 정부”라며 “‘주식회사 문재인 정권”의 회계 조작 사건으로 엄정하게 다스리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을 넘겨받은 대전지검은 6개월 뒤인 지난해 3월14일 ‘국가통계 조작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의 김수현·김상조 정책실장과 홍장표 경제수석, 국토부의 김현미 전 장관과 윤성원 전 차관 등 11명을 기소했다. 검찰 발표 27일 뒤인 4월10일은 22대 국회의원 선거일이었다. 부동산원에선 원장·부원장을 포함해 직원 누구도 기소되지 않았다.

감사원 대변인실은 “우리는 재판 참여자가 아니라, (재판에서 증거 제시된) 문답서와 녹취록의 내용에 대해 답변하기 어렵지만, 답변을 강요한 사실은 없다. 최종 책임자를 규명하려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국토부 관련성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최예린 기자 [email protected]

‘문재인 정부 부동산 통계조작 사건’은?

윤석열 정부 시절 감사원이 전 정부 청와대와 국토부 등을 대상으로 한 감사에서 비롯한 사건이다.

감사원은 감사 시작 2년7개월 만인 지난 17일 ‘주요 국가통계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원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가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주택통계를 사전에 보고받은 뒤 시장 상황이 안정되거나 부동산 대책 효과가 있는 것처럽 한국부동산원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모두 102차례 통계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당시 국토부 공무원들이 부동산원에 압박성 발언을 하거나, 청와대 행정관이 통계 조작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찾아냈다”고 했다.

앞서 2년 전인 2023년 9월13일 감사원은 2022년 9월26일부터 2023년 3월31일까지 진행한 감사 결과를 토대로 장하성·김수현·김상조·이호승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인 4명 전원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등 22명을 통계법 위반과 직권남용, 업무방해 등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청와대가 국토부를 압박하고, 다시 국토부가 한국부동산원을 압박해 부동산 주택통계 주중치를 실제 조사된 값보다 낮게 조작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었다.

감사원 요청을 받아 전방위적인 수사를 벌인 검찰은 2024년 3월14일 김수현·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 문 정부 관료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감사원 수사 요청 대상에 포함됐던 장하성·이호승 실장과 부동산원 원장·부원장 등 나머지 11명은 “통계법 위반의 공소시효가 5년이라 혐의 적용에 한계가 있었다”며 무혐의 처분했다. 당시 대전지검은 이례적으로 지청에 기자들을 불러 서정식 당시 차장검사가 직접 수사결과를 브리핑했다.

당시 검찰은 “김수현 전 실장과 윤성원 전 국토부 1차관은 아직 발표하지도 않은 부동산 대책 효과를 변동률 산정에 반영하라고 지시하고, 김현미 전 장관은 부동산 대책 효과가 숫자로 나타나야 한다고 국토부 직원들에게 거듭 지시해 국토부 실장 등이 부동산원 직원들을 질책해 변동률을 낮추게 했다”며 “이런 내용의 명시적 지시가 있었음을 당사자 진술과 문자 내용 등으로 확인했다”고 청와대 쪽의 ‘조작 압박’ 혐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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