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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피를 잃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로 연명의료 거부
올 7, 8월로 작성자 300만 명 돌파 예상
65세 이상 20%, 70대 여성 31% 서명

편집자주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제가 올해로 시행 7년, 법 제정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이별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국 의료 현장에서 확인하고 파악한 실상과 한계, 대안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연명의료결정제가 시행 7년을 맞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올 8월 처음 30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사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이 가능한 부산대병원 상담실의 모습. 부산=김혜영 기자 [email protected]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의향서) 작성자 300만 명 시대가 열린다.
2018년 2월 연명의료결정제가 시행된 지 7년 만의 성과다. 가족이 아닌 환자가 스스로 연명의료를 유보 · 중단하기로 한 '자기결정존중 비율'은 52.5%로 최고점을 찍었다.

30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의향서 등록 및 인구 대비 작성 현황' 자료 등에 따르면, 등록기관을 찾아 '임종 단계에서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서 작성자는 27일 오전 9시 기준 293만7,839명으로 집계됐다. 한
주에 평균 1만2,000명이 작성하는 최근 추세를
감안하면 전체 작성자는 8월 10일을 전후로 300만 명을 돌파
할 전망이다. 전체 19세 이상 국민 중 약 6.8%가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셈이다.

연령별로는 80대 20%, 70대 25.7%, 60대 12.8%로 전체 65세 이상 인구 5명 중 1명(20%)이 의향서를 작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70대 여성의 경우엔 3명 중 1명꼴인
31.3%가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의향서 등을 통해 실제 병원에서 연명의료 유보나 중단을 이행한 자기결정존중 비율은 2023년 4분기 45.7%에서 1년 만인 2024년 4분기 52.5%로 급증했다.
제도 시행 첫 집계치인 35.1%(2018년 1분기)보다 17.4%포인트나 상승
한 수치다. 전체 이행자가 43만 명 정도인 걸 감안할 때 절반 이상인 23만 명 정도가 가족이 아닌 본인이 자신의 연명의료를 거부하기로 결심했다는 의미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집계한 연령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현황. 그래픽=이지원 기자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집계한 연령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현황. 그래픽=이지원 기자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이 파악한 '인구대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령별 등록 현황'. 70대 여성은 인구 대비 31%가 작성할 만큼 높은 관심과 이해를 보였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연명의료결정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2018년 2월 시행됐다. 치료 효과 없이 단지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을 연장시키는 의료 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였고, 법 시행 이후 실질적으로 다수 환자의 마지막 풍경을 바꿔놨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는 "생애 말기와 임종 과정이 중요하다는 사회적 어젠다가 등장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며 "그동안 환자 앞에서 터부시해야 했던 문제를 이제는 겉으로 꺼내 대처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생겼다"고 평가했다.

의료 현장에서의 변화는 쉽게 체감된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
는 "법이 생기지 않았으면 의료진이 '반드시 환자와 의논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시행 초기 힘겨워하던 의료진도 점차 전반적 사항을 환자와 직접 논의하려고 체득 중"이라고 했다.
이명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역시 "많은 보호자가 '환자에게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요청하기는 하지만 법 시행 이후로는 말을 안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제도의 복잡성과 이해 부족 등으로 여전히 환자, 보호자, 의료진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족 전원합의 규정 탓에 결국 연명의료를 받게 되고, 그 부작용 또한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이 교수는 "가족 합의가 안 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독거노인이나 무연고자 등은 정말 방법이 없다"며 "의료진 역시 '다 안다'고 생각해 별달리 교육을 강조하지 않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명의료결정제 시행 7년 동안 집계된 자기결정존중비율. 그래픽=김대훈 기자


제도가 상급종합병원 위주로만 정착되고 있다는 점도 향후 개선해야 할 지점으로 꼽힌다.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는 "큰 병원 환자에게만 좋은 법의 혜택이 돌아간다는 형평성 측면에서라도 해결하고 가야 할 문제"고 했다.

현장의 지속되는 호소에 보건복지부와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등은 관련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공론화를 주도할 사회적 협의체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본부장
은 "종교계 반대도 만만치 않은 데다 국민 수용성에 대한 조사와 토의가 뒷받침돼야 하는 만큼 사회적 공론화가 없이는 즉각적 변화가 어려운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관련 변화를 촉구할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역시 공백 상태다. 지난해 6월 임기가 완료됐지만, 12.3 불법계엄 등으로 위촉 절차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엑설런스랩은 올해로 법 시행 7년, 내년 법 제정 10년을 맞은 연명의료결정법이 전국 의료 현장에 끼친 영향을 탐사했다. 긍정적 변화가 또렷했지만 제도의 복잡성이 유발한 혼선, 인식 및 교육 부족이 낳은 고통, 방치된 구조적 빈틈, 허약한 정책 전달 체계 등 심각한 한계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실상, 한계, 진단, 대안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 '유예된 죽음' 특별취재팀
팀장= 김혜영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손영하 · 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백혜진 · 정혜원 인턴기자
사진= 정다빈 · 강예진 기자
영상= 박고은 · 이수연 · 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인터랙티브= 박인혜 기획자, 남유진 개발자, 이정화 디자이너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갈피를 잃었다
    1. • 심장이 멈춘 남편은, 계속 숨을 쉬었다...연명의료 죽음의 풍경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02070004504)
    2. • "안 받겠다" 해도 결국 절반은 연명의료 받다 숨진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714550003896)
    3. • '연명의료 거부' 300만 시대... 70대 여성 31%가 쓴 이 문서는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318510004794)
    4. • "나는 오늘 아빠의 죽음을 결정했다" [인터랙티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911550002745)
연명의료결정제도 ■ 사전연명의료의향서 =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 관련 의사를 문서로 작성한 것. 주로 건강할 때 미리 등록기관에 가서 쓴다.

■ 연명의료계획서 = 말기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의사에 따라 담당 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 관련 결정 등을 문서로 작성한 것. 주로 의료기관 진료 및 입원 도중에 쓴다.

■ 연명의료 = 치료 효과 없이 죽음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 그 밖에 담당 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 (※ 예를 들어 같은 수혈이라도 의사가 치료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면 연명의료로 보지 않는다. 의사가 환자에게 무익하다고 판단하는 시점 이후에만 각 기술을 연명의료라고 분류할 수 있다.)

■ 연명의료 유보 =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연명의료를 처음부터 시행하지 않는 것.

■ 연명의료 중단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이미 시행 중인 연명의료를 중지하는 것.한국일보 '유예된 죽음' 자문 취재원 가혁 은혜요양병원장, 고미애(환자 보호자)씨,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건강의학과 교수, 고정희 전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김귀엽 전진상의원 간호사, 김동기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김미정(환자 보호자)씨, 김수은(환자 보호자)씨, 김아진 인하대병원 입원의학과 교수, 김예은 부산대병원 간호사, 김예진 서울대병원 사회복지사, 김원희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 김정아 동아대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김진희 경북대병원 간호사, 김현주(환자 보호자)씨, 김혜영(환자 보호자)씨, 김혜진(환자 보호자)씨, 노상미 전진상의원 호스피스센터장, 라혜영(환자 보호자)씨, 문용준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센터 선임팀장, 문재영 세종충남대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 박광우 가천대길병원 신경외과 교수, 박중철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 교수, 박지수 강원대병원 간호사, 박지연 국립암센터 간호사, 박형욱 단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배현정 전진상의원 원장, 서보남 영남대병원 간호사, 손덕현 이손요양병원장, 송숙녀 인하대병원 간호사, 신경원 죽음교육연구센터장, 신현호 해울 대표변호사, 양진원 제주대병원 간호사, 양현미 고대구로병원 간호사, 원혜영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명예교수,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이경희 영남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명아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이안나 이손요양병원 사회복지사, 이윤규 강북삼성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 이주선 충남대병원 간호사, 이춘희(환자 보호자)씨, 장영아(환자 보호자)씨, 정민규 연세암병원 완화의료센터장, 정보현(환자 보호자)씨, 정현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명예교수, 조우현 양산부산대병원 내과 교수, 조정숙 국가생명윤리정책원 연명의료관리본부장, 차은영 제주대병원 사회복지사, 최경석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미영 국립암센터 간호사, 최진영 국립암센터 중앙호스피스센터장, 하수진 부산대병원 간호사, 허대석 서울대병원 내과 명예교수, 허정식 제주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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