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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앙사 창업주 김연수.회장 / 삼양그룹


삼양그룹이 얼마 전 공개한 광고가 화제였습니다. 불닭볶음면의 인기로 삼양식품 인지도가 커졌고 이로 인해 사람들이 삼양그룹과 삼양식품을 혼동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어요. 삼양그룹이 불닭볶음면을 파는 줄 안다는 게 핵심인데요.

그렇습니다. 삼양그룹은 불닭볶음면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삼양식품과 전혀 다른 회사거든요. 실은 이렇게 사람들이 혼동한다는 사실에 수치심, 혹은 모욕감마저 느낄 법한데요. 왜냐하면 삼양식품에 비해 삼양그룹이 훨씬 더 오래됐고, 더 크고, 사업 분야도 다양하거든요.

문제는 사람들의 이런 혼동이 단순한 착각을 넘어 삼양그룹 전반의 ‘저평가 문제’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자기보다 작은 회사에 묻혀 존재감마저 사라지고 있으니까요. 더 늦기 전에 최소한 불닭 파는 회사란 오해는 풀어보자는 게 이번 광고의 핵심이었어요. 그럼 대체 삼양은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요.

◆삼양식품보다 37년 앞서 창업

삼양그룹이 세워진 건 1924년이에요. 1961년 설립된 삼양식품에 비해 37년이나 빨랐어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죠. 근대화가 늦었던 한국에서 100년 넘은 기업은 손으로 꼽히는데요. 그 드문 회사 가운데 하나가 삼양입니다.

창업자는 김연수 회장이란 분이었어요. 이분의 형이 동아일보의 창업주인 김성수 전 부통령입니다. 김성수 전 부통령은 동아일보를 창업하기 이전인 1919년 경상방직, 지금의 경방을 세우는데요. 동생인 김연수 회장을 경성방직으로 불러들여 함께 경영을 했어요. 이후 김연수 회장이 독립해서 나간 게 지금의 삼양사, 당시 이름은 ‘삼수사’였어요.

삼수사는 처음부터 대단한 제조업을 한 건 아니었어요. 1924년 당시로선 드물었던 ‘기업형 농장’을 운영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전남 장성을 시작으로 줄포, 신태인, 고창, 영광 등지에서 간척지를 개간해 쌀 농사를 짓고 기업형 부농이 됐어요. 삼양사로 이름을 바꾼 건 1931년이었어요. ‘삼양(三養)’은 분수를 지켜 복을 기른다는 양복(養福), 마음을 너그럽게 하여 기를 기른다는 양기(養氣), 낭비를 삼가며 재산을 기른다는 양재(養財)를 뜻해요.

삼양이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은 건 1956년이었어요. 울산에 국내 최초의 정제 설탕 공장을 세웠거든요. 그 이전까지만 해도 설탕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수입 사치품이었어요. 삼양이 만든 설탕은 ‘국민 누구나 먹을 수 있는 설탕’이었어요. 한국인들의 입맛을 바꾸고, 국산 가공식품 산업의 토대를 만든 게 바로 이 삼양설탕이죠.

삼양그룹이 또 한 번 도약하게 된 계기는 1970년 폴리에스테르 섬유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였어요. 당시 한국은 석유화학 같은 중화학 산업 육성에 대대적으로 나섰는데 이 기회를 포착한 것이었어요. 폴리에스테르는 잘 끊어지지 않고 탄력성이 좋은 데다 면에 비해 다림질 필요성도 없었어요. 여기에 가격까지 저렴해서 나일론과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삼양그룹은 1986년 세계 10대 화학섬유 기업에 오를 만큼 이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기도 했어요.

◆삼양그룹의 현재와 사업구조

삼양그룹은 현재 국내 13개, 해외 17개, 총 3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어요. 작년 기준 전체 매출은 약 5조1000억원, 당기순이익은 2100억원이었어요.

그룹 내에서 가장 큰 계열사는 모태가 된 삼양사인데요. 삼양사는 설탕과 전분당, 밀가루, 식용유 같은 식품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요. 또 고성능 플라스틱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도 생산해요. 플라스틱이지만 금속과 유사한 수준의 강도를 가져 자동차부품이나 산업용 소재로 많이 쓰이죠. 또 이온교환수지란 것도 만들어요.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공정에는 세정 작업이란 것이 들어가는데요. 이때 세척을 해주는 물을 ‘초순수’라고 해요. 일반 물에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한 말 그대로 순수한 물이죠. 초순수를 만들 때 쓰는 게 이온교환수지예요. 삼양사의 사업 분야가 굉장히 넓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삼양그룹 매출의 38%, 순이익의 41%가 삼양사에서 나와요. 또 페트병을 제조하는 삼양패키징, 세제의 원료인 계면활성제를 생산하는 삼양케이씨아이도 자회사로 두고 있어요.

삼양사 다음으로 큰 계열사는 삼남석유화학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석유화학 사업을 해요. 삼양홀딩스가 40, 일본 미쓰비시가 40, GS칼텍스가 20의 지분을 각각 보유하고 있어요. 일종의 동업을 하고 있는 셈이죠. 이 회사의 매출이 작년에 1조원을 넘었어요. 삼양사를 제외하곤 유일하게 ‘조 단위’ 매출이 나오는 계열사죠.

삼남석유화학은 파라자일렌이란 기초 석유화학 물질을 산화시켜서 테레프탈산(TPA)이란 석유화학 중간 물질을 만드는데요. TPA는 폴리에스테르 섬유의 원료가 됩니다. 삼남석유화학은 폴리에스테르 생산 업체인 휴비스에 TPA를 납품하는데요. 휴비스는 삼양홀딩스가 25.5%, SK디스커버리가 25.5%의 지분을 보유한 또 다른 동업 회사예요. TPA는 페트병의 원료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에도 들어가요. 그래서 삼양사와 그 자회사 삼양패키징이 가져다 쓰기도 하죠. 화학 사업에서 계열사 간 수직계열화를 해놓은 것입니다.

사업별 경쟁력도 높아요. 국내 시장에서 설탕은 32%, 밀가루는 10%, 전분당은 28%의 점유율을 각각 기록하고 있어요. 화학 부문에서 이온교환수지 시장의 38% 점유해 이 시장 1위 기업이고 페트병 점유율도 29%에 이르죠.

삼양그룹엔 바이오 사업을 하는 계열사도 있어요. 삼양바이오팜입니다. 이 회사는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를 만들어요. 쉽게 말해 수술하고 나면 몸 안에서 저절로 녹는 실이죠. 이 분야에서는 글로벌 점유율 1위에 오를 만큼 삼양그룹은 의료 소재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어요. 또 항암제 원료인 ‘파클리탁셀’도 생산하는데요. 이건 원래 희귀 수종인 ‘주목나무’에서 추출하던 성분인데 삼양은 이를 식물세포 배양 방식으로 대체해 자연 훼손 없이 항암제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죠. 화학에서 시작해 생명과학으로까지 확장한 이 행보는 삼양이 단지 오래된 기업이 아니라 진화하는 기업이라는 걸 보여줘요.



◆삼양사 PER 5배에 불과

이런 탄탄한 사업 구조를 통해 100여 년간 사업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삼양식품과 혼동할 정도로 삼양그룹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삼양그룹은 자산이 8조원에 이르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대기업 집단에도 포함되어 있어요. 중견기업 수준인 삼양식품과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되죠. 매출만 해도 삼양식품의 작년 매출 1조7000억원에 비해 3배가량 큽니다. 사업 영역도 라면에 특화된 삼양식품과 달리 엄청나게 넓고요. 여기에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달라요.

창업주인 김연수 회장은 주요 대기업 모임인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 경제협의회 회장을 맡기도 했어요. 또 형인 김성수 전 부통령이 세운 고려대학교에 큰돈을 기부해 한국의 고등교육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죠.

하지만 자본시장에서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요. 삼양식품의 시가총액은 10조원에 육박하는데 삼양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양사는 약 5000억원에 불과해요. 20분의 1 수준입니다. 삼양식품이 K푸드 대표 주자이고 매출이 급성장 중이란 부분을 감안해도 이런 차이는 설명이 잘 안 되는데요. 왜냐하면 삼양사 주가는 삼양식품이 아닌 다른 상장사와 비교해도 현저하게 낮거든요.

예컨대 주가 수준을 평가할 때 가장 많이 쓰는 주가수익비율(PER)로 보면 삼양사는 4~5배밖에 안 돼요. 이건 30배 수준인 삼양식품은 물론 10배 수준인 코스피지수 평균에도 훨씬 못 미쳐요. 그렇다고 투자자들에게 적대적인 것도 아닙니다. 배당수익률이 3%를 넘어요. 이 주식을 들고만 있어도 은행 이자 이상은 준다는 것이죠. 작년 말 기준 순이익의 20%가량인 176억원을 배당했어요. 한국의 상장기업 평균인 약 35%엔 못 미치는 것이긴 한데 배당 총액을 계속 늘리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개선될 여지가 있어요.

삼양그룹은 기성세대에겐 ‘설탕회사’란 인식이, 젊은 세대에겐 불닭볶음면 기업이란 오해에 가려져 있지만 그 실체를 뜯어보면 정밀소재, 바이오소재, 산업화학까지 아우르는 기술 중심의 기업이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잘 보지는 못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을 100년째 조용히 만들어왔죠. 하지만 삼양식품의 부상이 삼양그룹을 자극한 것 같아요. 더 이상 ‘조용히’ 있길 거부하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광고 제작은 그 첫발을 뗀 것이죠. 삼양그룹의 주가 저평가도 해소될지 궁금하네요.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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