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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인망 남획으로 몸 크기 작아야 살아 남아
어업 금지해도 예전 모습 찾기 어려워
남획에 온난화까지 겹치면서 복원 난항
도시에 사는 다람쥐, 여우는 얼굴까지 바뀌어

1987년 핀란드 연구자가 찍은 발트해 대구. 길이가 1m 이상까지 자랐다. 지금은 5분의 1로 크기가 줄었다./덴마크 수산해양연구소


미국 작가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는 1997년 발표한 책 ‘대구(Cod)’에 ‘세계를 바꾼 물고기의 일대기’란 부제를 붙였다. 북유럽의 바이킹에 이어 서유럽 바스크족(族)은 소금에 절인 대구를 가지고 바다로 나갔다. 염장(鹽藏) 대구는 장거리 항해의 필수 식품이었다. 바스크족은 아메리카 대륙까지 대구 어장(漁場)을 확장했다. 콜럼버스보다 먼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다.

대구는 인간에게 대항해 시대를 열어줬지만 그 대가로 받은 건 멸종의 길이었다. 개체수만 줄어든 게 아니다. 크기도 작아졌다. 예전에는 서너 살 아이만 한 크기의 대구가 흔했는데 지금은 손안에 들어올 정도로 줄었다. 단순히 큰 대구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남획(濫獲)이 대구의 몸 크기를 바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구가 스스로 몸을 줄이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사반세기 만에 몸무게 5분의 1로 줄어
독일 게오마르(GEOMAR) 헬름홀츠 해양연구소의 토르스텐 레우스(Thorsten Reusch) 교수와 한귀영(Kwi Young Han) 박사 연구진은 “과도한 어업으로 발트해(海)의 대구가 개체수가 감소했을 뿐만 아니라 몸 길이도 절반으로 줄었다”고 지난 25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발표했다. 한 박사는 성균관대 생명과학과에서 석사학위까지 받고 게오마르 해양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는 과거 청어와 함께 발트해 어업의 주축을 이뤘다. 하지만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감하자 2019년부터 발트해에서 대구잡이가 금지됐다. 북미도 마찬가지다. 앞서 캐나다는 1992년 뉴펀들랜드주(州) 앞바다 그랜드 뱅크스 해역에서의 대구 조업을 금지했다. 미국은 1994년부터 매사추세츠주의 조지스 뱅크스 해역에서 가혹할 정도의 어획량 할당제를 실시했다. 모두 한때 전 세계에서 가장 대구가 많이 잡히던 해역이다.

독일 게오마르(GEOMAR) 헬름홀츠 해양연구소의 한규영 박사가 발트해 대구를 들고 있다. 한때 거대했던 대구는 이제 성체도 두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줄어들었다./Thorsten Reusch, GEOMAR

연구진은 1996년부터 2019년까지 발트해 보른홀름 분지에서 포획된 대구 152마리의 이석(耳石, otoliths)을 분석했다. 이석은 귓속 내이(內耳)에 있는 딱딱한 석회질의 돌로, 물고기의 평형감각을 담당한다. 여기에 나무처럼 해마다 하나씩 나이테가 생긴다. 이를 통해 그사이 대구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인간이 남획을 멈추면 대구가 다시 살아나지 않았을까. 안타깝게도 개체수가 복원돼도 예전의 대구가 아니었다. 조사 기간 성체 대구의 중간 길이는 40㎝에서 20㎝로 감소했다. 몸무게도 2019년 중간값이 272g이었는데, 이는 1996년에 1356g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한귀영 박사는 “과도한 어업이 동발트해 대구의 유전체를 변화시켰다”고 말했다. 분석 결과 큰 몸집을 갖게 하는 유전자 변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빨리 자라는 대구가 거의 사라지고, 느리게 자라지만 작은 몸으로도 생식 가능한 대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인간이 친 저인망을 벗어나기 위해 몸집이 작은 대구가 자연 선택된 결과이다. 레우스 교수는 “개체군에서 가장 큰 개체들이 지속적으로 제거되면, 더 작고 빨리 성숙하는 물고기가 진화적 우위를 차지한다”며 “인간 활동에 유발된 진화는 과학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생태학적으로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발트해의 대구 채집 위치와 시간별 몸길이 변화. (A) 동발트해 대구의 주요 산란지인 보른홀름 분지(Bornholm basin). 고틀란드 분지와 그단스크 심해는 이제 대구 산란지가 안다. (B) 1996년, 2002년, 2008년, 2014년, 2019년에 보른홀름 분지에서 포획된 성체 대구의 길이 분포./Science Advances

남획에 온난화까지 겹치면서 위기 초래
이번 연구 결과는 2019년 동발트해의 대구 어군 붕괴 이후 시행된 전면 어업 금지 조치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크기의 대구가 돌아오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이 잡지 않아도 이미 대형 대구는 유전적으로 씨가 마른 셈이다.

영국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의 스테파노 마리아니(Stefano Mariani) 교수는 이번 결과에 대해 “인간 활동이 진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이정표적인 결과”라며 “어류 개체군의 유전자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단순히 개체수를 추적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고 평가했다. 다만 마리아니 교수는 대구의 몸이 줄어든 것을 유전자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환경 요인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메인만 연구소의 앤드루 퍼싱(Andrew Pershing) 박사는 지난 2015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1990년대 대표적인 대구 어장에서 잇따라 조업 금지 조치가 시행됐지만 좀처럼 수가 불어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고 발표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메인만의 수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대구 생존율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남획에 이어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1984~2004년 메인만의 수온(水溫)은 연간 섭씨 0.03도씩 올랐다. 전 세계 바닷물의 평균온도 상승의 3배나 됐다. 그런데 2004~2013년 수온 상승은 전 세계 평균의 무려 7배로 치솟았다. 수온 상승은 대구 치어의 먹잇감인 작은 물고기를 없앴다. 대구 치어는 예전보다 일찍 찬물을 찾아 먼바다로 나갔다. 당장 천적의 표적이 됐다. 수가 늘래야 늘 수가 없는 상황이다.

수온 상승의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어획량만 할당하다 보니, 대구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얼마 남지 않은 대구를 합법적으로 없애는 역효과를 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인간은 오랜 남획에다 지구온난화까지 일으켜 대구에 이중의 고통을 안긴 셈이다.

미국 시카고 필즈 자연사박물관의 스테파니 스미스(왼쪽) 박사와 안드레슨 페이호 박사가 동부줄무늬다람쥐 표본을 검사하고 있다./미국 필즈 자연사박물관

도시 다람쥐, 들쥐 얼굴까지 바뀌어
바다의 대구가 인간 때문에 몸 크기를 줄였다면 육지에서는 다람쥐와 여우가 도시에 살기 위해 얼굴을 바꿨다. 미국 필즈 자연사박물관의 앤더슨 페이호(Anderson Feijó) 박사 연구진은 지난 26일 국제 학술지 ‘통합 및 비교 생물학’에 “125년 동안 시카고의 도시화에 따라 이곳에 사는 설치류의 생김새가 달라졌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1898년부터 2023년까지 시카고 지역에서 수집된 동부줄무늬다람쥐(학명 Tamias striatus)와 동부초원들쥐(Microtus pennsylvanicus)의 두개골 모양을 측정했다. 시카고가 도시화되면서 다람쥐의 두개골이 커졌지만, 이빨은 짧아졌다. 연구진은 이를 식습관의 변화로 설명했다.

도시화가 진척되면서 다람쥐는 인간이 먹고 버린 음식에서 쉽게 칼로리를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몸집이 커졌다. 동시에 자연에서 견과류와 씨앗에서 칼로리를 추출하는 데 도움이 됐던 튼튼한 이빨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초원들쥐는 두개골 크기에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초식을 하고 사람을 피해 다녀 도시화가 돼도 초원들쥐에겐 먹이가 더 많아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다만 초원들쥐의 귀에 있는 청각융기(auditory bulla)는 도시 지역에서 더 작아졌다. 연구진은 도시의 소음을 줄이기 위해 진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영국 도시의 쓰레기통 주변에 있는 붉은여우. 이 여우가 원숭이두창 바이러스의 저장소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Sam Hibson

기다란 주둥이 여우는 도시에선 옛말
영국의 붉은 여우도 도시에서 둔갑했다.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기다란 주둥이는 이제 도시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영국 글래스고대의 케빈 파슨스(Kevin Parsons) 교수 연구진은 지난 2020년 ‘영국왕립학회보 B’에 “도시에 사는 붉은 여우는 두개골 형태가 도심 생활에 맞게 야생 여우보다 전반적으로 작아졌다”고 밝혔다.

파슨스 교수 연구진은 국립 스코틀랜드 박물관, 런던 자연사 박물관 등에 보관 중인 여우 두개골 274점을 조사했다. 도시 여우는 주둥이가 짧고 넓적했다.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고 냄새를 맡을 때도 주둥이가 짧은 편이 낫다고 연구진은 추정했다. 연구진은 시골 여우의 기다란 주둥이는 도시 여우보다 더 빨리 다물 수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야생에서는 도망가는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주둥이를 빨리 닫을 수 있어야 한다.

바다에서 육지에서 동물들은 저마다 살아남을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미 생태계가 바뀐 터라 살아남아도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언제쯤 바다에서 대구다운 대물(大物)이 잡히고, 땅에선 앞니 뾰족한 다람쥐와 주둥이가 긴 여우가 살아갈 수 있을까.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r9889

Integrative and Comparative Biology(2025), DOI: https://doi.org/10.1093/icb/icaf081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2020), DOI: https://doi.org/10.1098/rspb.2020.0763

Science(201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ac9819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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