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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말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장 임명
국가 R&D 전략 수립 및 투자 방향 기획 맡아
데이터 활용 위한 규제 개혁 강조
“정부 R&D, 수요자인 기업 주도로 해야”

김현석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장(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6월 20일 서울 서초구 한국기술센터에서 국내 과학기술산업의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한국 산업의 혁신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 어느 순간부터 ‘다음에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 자체가 사라졌다.”

과거 삼성전자의 소비자가전(CE) 부분을 이끌며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 1위 달성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 김현석 전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 경제의 위기의 본질적인 이유로 ‘사라진 혁신성’을 꼽았다.

엔지니어 출신인 김 전 사장은 삼성전자에서 영상디스플레이부문 사장, 소비자가전(CE) 부문장 겸 대표이사, 미래기술 부문 상임고문을 지냈다. 지난달 말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의 신임 단장으로 임명됐다.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은 정부의 산업·에너지 분야 R&D의 전략 수립과 투자 방향을 기획하고 성과 관리 체계 설계를 총괄하는 조직이다. 지난 2010년 설립됐다. R&D 전략기획단장에 기업인이 임명된 것은 2010년 초대 단장으로 임명된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이후 두 번째다.

김 단장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전략기획단 사무실에서 한국 경제가 마주한 현실과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R&D 방향을 주제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국내 산업의 혁신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좁은 시야와 낮은 데이터 활용성을 꼬집었다.

김 단장은 “우리는 스마트폰 출시를 새로운 하드웨어 시장으로 봤지만, 미국은 플랫폼 시장으로 이해했다”면서 “이커머스를 비롯해 세계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전부 미국이 장악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데이터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라면서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정작 데이터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다”라고 했다.

이어 “개인정보보호만 강조하다 보니 데이터를 거의 못 쓰게 해놨다”라면서 “중국은 데이터를 장사나 서비스의 도구로 본다. 중국의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는 인력, 투자도 있지만 무엇보다 데이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단장은 R&D 개편의 방향으로 ‘수요자 중심’을 제시했다. 또 정부 R&D 지원이 중소기업에 편중되고, 소규모로 ‘나눠먹기식’으로 진행되는 현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정부 R&D 지원이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대기업과 괴리가 생겼다고 본다”라면서 “자금과 인력이 부족해 중소기업이 스스로 R&D를 주도하기 어렵다. 정부가 과제를 줘도 제품화가 쉽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는 R&D도 기업 주도로 해야 한다”며 “KPI(핵심성과지표)를 기업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현석 산업통상자원 R&D 전략기획단장(전 삼성전자 사장)이 지난 6월 20일 서울 서초구 한국기술센터에서 국내 과학기술산업의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인원 기자

―삼성에서 나온지 얼마나 됐나. 공직 제안은 언제 받았나.

“삼성을 떠난 지 이제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 대표를 지내고 퇴임하면 3년의 상근 고문 기간이 있다. 올해 초 비상근 고문으로 넘어갈 때가 되니까 딱 맞춰 연락이 왔다. 과거 정부와 프로젝트를 같이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을 한번 실제로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어떤 프로젝트였나.

“2022년 말 진행한 ‘산업 대전환 방안’ 과제였다. 내부에 있는 사람이 나를 추천했다고 하더라. 처음엔 ‘산업 대전환’이 뭔지도 몰랐다. 3개월만 한다고 시작했는데 대통령 해외 일정 등으로 보고가 지연되며 거의 1년 가까이 진행됐다.”

―당시 보고서에 어떤 내용을 담았나.

“당시 교육·인력·투자 등의 분과가 있었고, 나는 생산성 분과를 맡았다. 제조업 생산성 제고를 다루는 줄 알았는데, ‘총요소생산성’을 다뤘다. 보고서에서 ‘한국 산업의 혁신이 사라진 지 오래됐다’는 결론을 냈다. 새로운 것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한국의 미래를 만들거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국가 경제성장률이 심각한 저성장 기조로 갈 것이라고 진단했고, 또 정부와 기업체 간 R&D 협력이 잘 안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혁신이 사라진 이유는 뭐라고 보나.

“2000년대까진 ‘패스트 팔로우’ 전략이 있었다. 그게 곧 혁신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다음에 뭘 해야 하지’라는 질문 자체가 사라졌다. 그사이 미국 같은 나라는 플랫폼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하드웨어에 머물러 있었다.”

―하드웨어에 집중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인가.

“원래 미국도 제조업 중심이었다. 이후 제조는 일본과 한국에 넘기고, 자기들은 소프트웨어로 넘어갔다.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이다. 우리는 스마트폰 출시를 새로운 하드웨어 시장으로 봤지만, 미국은 플랫폼 시장으로 이해했다. 이커머스를 비롯해 세계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전부 미국이 장악한 배경이다.

우리도 네이버, 카카오, 쿠팡 같은 플랫폼 기업이 있긴 하지만, 정작 플랫폼 기반 서비스는 제대로 못 키웠다. 하드웨어에만 집중한 게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세상을 넓게 봤어야 했다는 얘기다. 특히 이 과정에서 데이터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데이터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가 정작 데이터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다.”

―데이터 분야의 문제는 어떤 것인가.

“개인정보보호만 강조하다 보니 데이터를 거의 못 쓰게 해놨다. 요즘 규제 풀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정말 빨리 풀어야한다. 중국은 다르다. 데이터를 기술이 아니라 장사나 서비스의 도구로 본다.

중국의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한 배경에 인력, 투자가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데이터가 있었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없으면 의미 없다. 중국은 플랫폼도 서로 공유한다. 우리는 내가 만든 플랫폼은 내 것이라고 닫아버리는데, 중국은 자동차 플랫폼도 정부가 만들어서 다 같이 쓰게 한다. 중국은 서비스로 경쟁하는데, 우리는 플랫폼 개발만 놓고 싸우고 있다.”

―우리도 정부가 플랫폼을 만들고 개방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나.

“좀 다른 얘기다. 한국은 생태계가 피라미드 구조다. 꼭대기에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이 있고, 그 안에 이미 플랫폼이 있다. 정부가 그런 곳까지 플랫폼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로봇처럼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은 분야는 정부가 관여해야 한다. 정부가 플랫폼을 만들고, 기업은 그 위에서 서비스 경쟁을 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AI반도체 영역에서도 가능한 이야기인가.

“AI 반도체는 자동차, 로봇, 가전 등 다양한 산업에서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서버나 클라우드보다 엣지 디바이스(스마트폰이나 가전처럼 사용자 가까이에 있는 기기)에 강점이 있다. 이런 디바이스에 들어가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에 R&D를 집중해야 한다.

정부 주도로 온디바이스 관련 프로젝트를 하면, 자동차·로봇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 과거처럼 ‘이거 개발했으니 너희 써봐’ 방식은 안 된다. 이제는 플랫폼 오너가 ‘이게 필요하다’고 말하고, 거기에 맞춰 개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수요자 중심의 R&D 전략으로 바꾸자는 얘기인가.

“맞다. 이를 위해선 정부도, 기업도 좀 더 솔직해져야 한다.”

―R&D 구조 개편을 이야기하려면 지난 정부의 구조조정 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평가하나.

“당시 논의가 ‘카르텔’이라는 단어로 시작한 게 문제였다. 예산부터 깎고 밀어붙이니까 반발이 안 나올 수 없었다. 운영 방식부터 손봤어야 했다. 규정을 세우고 구조를 바꾸는 게 먼저인데, 프레임을 씌우면서 꼬인 거다.”

―앞서 정부 프로젝트를 통해 ‘정부·기업 간 R&D 협력이 잘 안되고 있다’고 진단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원래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R&D 해온 나라다. 초기 반도체, CDMA도 정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따로 놀기 시작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명확한 건 없지만, 정부 R&D 지원이 중소·중견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대기업과 괴리가 생겼다고 본다. 국내 산업은 여전히 대기업 중심이다. 중소기업도 그 생태계 안에 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해 중소기업이 스스로 R&D를 주도하기 어렵다. 정부가 과제를 줘도 제품화가 쉽지 않다. 주려는 쪽과 받으려는 쪽의 기대와 관점이 달랐던 것 같다.”

―정부 등 공공에 대한 기업의 시각은 어떤가.

“기업에 있을 때 정부에서 누가 온다고 하면 피해 다녔다. 정부 과제 하자고 하면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결과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KPI(핵심성과지표)가 달랐던 거다. 정부에선 ‘이 정도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하고, 기업에선 ‘이 정도만으로는 내가 실제 쓸 수 있는 수준이 안 돼’라고 생각한다. 정부가 하는 R&D도 기업 주도로 해야 한다. KPI를 기업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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