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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크뉴스 › 심장이 멈춘 남편은, 계속 숨을 쉬었다...연명의료 죽음의 풍경 [유예된 죽음]

랭크뉴스 | 2025.06.30 05:22:02 |
<1> 갈피를 잃었다
폐암 말기 남편, 연명의료 원했을까
시어머니는 "무조건 해 달라" 고집
존엄한 죽음, 과연 최선은 있었을까

편집자주

'존엄하게 죽고 싶다'는 우리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제가 올해로 시행 7년, 법 제정 기준으로는 내년이면 10년이 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300만 돌파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 사이 이별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전국 의료 현장에서 확인하고 파악한 실상과 한계, 대안을 5회에 걸쳐 보도한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와 환자 가족의 모습. 그래픽=신동준 기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2월 2일 오후, 정보현(46)씨는 아들(11)과 걷고 있었다. 과학·공학 인턴십 캠프를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길, 아들이 캠프에서 뭘 만들고 어떤 걸 했는지 말하던 찰나였다.

"환자분이 지금 호흡을 너무 힘들어하세요." 응급실 간호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입원 중인 남편(45)에 대한 얘기였다. "지금 인공호흡기 달지 않으면 한두 시간 안에 돌아가실 수 있어요." "어떻게 하시겠어요? 인공호흡기 다실 건가요?"

남편은 몇 달 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죽음은 그렇게 눈앞에 현실로 닥쳐왔다. '나의 때가 오면' 같은 존엄사 관련 책을 찾아 읽었다. 간병기를 블로그에 기록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9월엔 이런 글도 적었다. '인간에게는 모두 마지막이 있다.
마지막 순간을 늦추는 것과 마지막까지 가는 길의 평온함 중 고르라면, 주저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

문제는 남편이었다. 그의 죽음, 그의 연명의료 여부에 대한 결정이었다. 내 생각이 온전히 그의 생각일 순 없었다. 전화가 걸려오기 며칠 전 남편과 처음으로 연명의료에 관해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연명의료 받을 거야?"란 질문, "
아니, 안 받을 거야. 근데 지금은 그냥 치료 받는 중이니까, 여기에 집중하자
"라는 대답. 모호했다. 어쩌면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간호사도 "환자분께 의사를 여쭤봤는데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남편은 의료진에게도 비슷하게 답한 듯했다.

연명의료란? 그래픽=김대훈 기자


이번엔 응급실 의사였다. "지금 인공호흡기 달지 않으면 바로 돌아가실 수 있어요." "지금 다 (결정) 하셔야 합니다." 이어진 재촉, 간호사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 달면 중간에 뗄 수 없잖아요."

"가족이 모두 동의하면 나중에라도 뗄 수 있습니다."

"그럼… 인공호흡기, 부착해주세요."

그땐 당연히 알지 못했다. 앞으로 9일간 이어질 연명의료가 남편과 가족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지, 또 어떤 후회로 남을지.

폐암 말기...평범한 일상은 그렇게 끝났다

인공지능이 그린 정보현씨 가족의 모습. 그래픽=손영하 기자·미드저니


일상이 깨진 건 지난해 8월이었다. 가족 셋이서 일주일 동안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사업 준비로 바쁜 남편은 휴가가 오랜만이었다. 남편은 여행 내내 마른 기침을 했다. "목이 안 좋다"고 했지만, 분명 심상치 않아 보였다. "병원에 가봐." 여행을 멈출 순 없었다.

남편은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했다. CT(컴퓨터단층촬영)를 찍고 온갖 검사를 다 받았다. 검사 항목은 늘어났고, 그만큼 결과는 늦어졌다. 예삿일이 아닐 것 같았다. 몸서리가 날 만큼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과는 입원 2주가 지나서 나왔다. 주치의는 엑스레이(X-Ray)와 자기공명영상(MRI) 영상을 보여줬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더라도, 심각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종양은 크고 길었다. "몇 ㎝인가요?"라고 조용히 물었다.
이윤규 혈액종양내과 교수
는 화면을 움직여 가로 길이를 애써 쟀다. "4㎝요. 근데 위아래 세로 길이가 12㎝가 넘어요."
폐암 4기, 그중에서도 말기
였다.

알아보니 폐암 4기의 평균 생존기간은 6개월, 5년 생존률은 5%였다. 처음부터 완치는 치료 목표가 되기 어려웠다. 가족과 식사하고, TV 보고, 동네 산책이라도 함께할 수 있는 삶. 치료로 '삶의 유지' 기간을 늘릴 수만 있어도, 감사해야 했다.

9월부터 집중 치료가 시작됐다. 경과는 썩 좋지 않았다. 수술은 이미 불가능했고, 항암제도 별 효과가 없었다. 종양 크기는 좀처럼 줄지 않았다. 이 교수는 환자가 없는 틈에 "가장 효과가 좋다는 항암제를 썼는데도 반응이 안 좋다"고 털어놨다. 의사로서 무력함을 털어놓는 게 쉽지 않았겠지만,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이고, 그걸 보호자에게 정확하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편은 날로 쇠해 갔다. 진단 2개월 만인 10월 초, 가족은 경기 광주시 화담숲을 찾았다. 공기 좋은 숲을 일부러 택했다. 남편은 1시간 남짓 차를 타는 것부터 힘겨워했다. 화담숲에 도착해선 30도 경사의 오르막을 오르지도 못했다. 평지와 내리막도 힘겹게,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다.

인공지능으로 그린 숲을 걷는 가족의 모습. 그래픽=손영하 기자·미드저니


먹고 마시는 평범한 일상도 망가졌다. 남편은 한 번 기침을 시작하면 도통 멈추질 못했다. 계속 구토를 했다. 특히 음식 냄새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요리할 때 남편이 기침을 하면, 느긋한 성격의 아들이 깜짝 놀라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해야 했다. 구이와 볶음 요리부터 없앴다. 그래도 기침은 나아지지 않았다. 집에서는 어떤 요리도 할 수 없었다. 창문을 열면 조금 나았지만, 곧 바깥에서 들어온 먼지가 기침을 돋우었다.

집은 침울했다. 일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으니 생활 소음은 사라졌다. 그 공백은 남편의 기침 소리, 끙끙 앓는 소리가 채웠다. 눈으로는 안 보면 그만이지만, 소리로부터는 도망칠 수 없었다. 앓는 소리가 들릴 때면 "진통제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고, 남편은 "괜찮아. 별로 안 아파"라고 답했다. 내색을 잘 안 하는, 여전히 과묵한 남편이었다. 가족에게 기침은 참기 힘든 고통의 소리였다.

남편은 지난해 12월 간호병동에 입원했다. 구토 때문에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구토라도 해결하자, 그 생각에 입원을 결정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면서 '집으로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겠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이 교수가 "나이가 많은 환자셨으면, 호스피스를 권했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연명의료 중단, 가족 간 논의는 불가능했다



1월 말 남편의 폐에 물이 찼다.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2월 2일, 인공호흡기가 입에 부착됐다. 연명의료가 마침내 시작됐다.

"가족 모두가 동의하면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르면 환자에게 의사 능력이 없을 때 배우자와 1촌 이내의 직계존·비속의 전원 합의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미성년자인 아들을 빼면 시부모만 동의해주면 되는 일이었다.

환자 가족 전원은? 그래픽=김대훈 기자


인공호흡기가 부착된 다음 날 시부모, 시누이, 친정어머니가 모두 중환자실 앞으로 모였다. 주치의인 이 교수가 남편의 상태를 명료하게 설명하려고 애를 썼다.
①항암 치료에 반응이 없었고 ②암세포는 뼈로 전이됐으며 ③심장과 폐에 물이 찼고 ④마지막 항암이 효과가 있는 듯했지만, 3주가 지나니 암세포가 다시 활동한다
는 게 핵심이었다. 헛된 희망을 굳이 주려 하지 않았다. "저희가 제일 좋은 약을 아껴두는 게 아니에요. 치료 효과가 제일 좋은 걸 먼저 쓰기 시작해요. 기대치는 점점 더 낮아질 겁니다."

시어머니
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선생님, 저희 아들 꼭 좀 낫게 해주세요. 꼭 치료해주세요. 할 수 있는 거 다 해주세요." 시어머니는 언젠가 본인에 대해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놨다. 자신의 연명의료는 반대했지만, 아들에 대해선 치료를 받고 회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듯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그래픽=김대훈 기자


다른 가족은 별다른 의견을 내지 않았다. 주치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시어머니를 두고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친정어머니는 주치의에게 그저 "잘 부탁드린다"고 말할 뿐이었다. 시어머니 호소에 이 교수는 "항암 치료를 계속 하자"고 답했다.

면담 다음 날인 2월 4일, 블로그에 이런 글을 올렸다. '내가 기대한 생존 기간은,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채, 장기가 하나씩 꺼져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현대의학은 뇌 기능이 정지할 때까지, 다른 장기들을 계속 되살리고 보조하며 살게 한다. (중략) 가족 중 한 명 정도는 연명의료 거부에 반대하고, 가끔은 환자의 의사를 거스르기도 한다.
종종 그들은 투병기를 함께하지 않은 사람이고, 이후 남겨질 막대한 의료 비용 부담과 무관한 편이기도 하다.
'

남편의 생각, 끝내 알 수 없었다



남편의 몸은 처참히 무너져 있었다. 40대 남편이 70대처럼 보였다. 영양제를 투입하는 팔은 퉁퉁 부었고, 다른 곳은 수분이 사라진 나무 껍질 같았다. 기력도 없었다. 절반 정도 물이 찬 종이컵을 드는 것조차 힘에 겨워했다.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의료기기가 남편 몸 곳곳에 연결됐다. 인공호흡기와 연결된 튜브를 입에 물고, 코에는 영양을 공급하는 콧줄을 꼈다. 폐의 불순물을 빼는 관이 양쪽 가슴에 삽입됐다. 주사제를 넣기 위한 관이 정맥에 연결돼 있었다. 남편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장치들도 부착됐다.

중환자실에는 하루에 한 명씩, 20분 면회가 가능했다. 남편은 24시간 중 20시간 이상을 마약성 진통제에 취해 있었고, 면회 시간에만 깨어났다. 시부모 등 다른 가족과 순서를 정해 4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갔는데 그때마다 남편의 상태는 눈에 띄게 악화됐다.

인공지능으로 만든 환자와 환자 가족의 모습. 그래픽=손영하 기자·미드저니


2월 9일, 인공호흡기 부착 8일째. 간호사의 박수 소리에 의식을 간신히 부여잡은 남편과 손을 잡았다. 따뜻한 시선과 고갯짓으로 대화를 나눴다.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이 치료, 계속 하고 싶어?"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도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구나. 하지만 단어만 바꿔서 같은 질문을 던지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바뀌었나, 아니면 의식이 명료하지 않나. 알 길이 없었다. 이날 시아버지가 연명의료 중단을 마음먹고 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가족 전원합의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남편은 죽은 뒤에도 호흡을 했다



다음 날 일찍 눈을 떴다. '내가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중환자실로 연결을 부탁한 뒤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스스로 명료한 정신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그때 중환자실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혈압상승제를 계속 쓰고 있는데 혈압 유지가 안 돼요. 병원으로 빨리 오셔야겠어요. 올 수 있는 보호자만이라도 먼저 오세요."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2시간 뒤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도착했다. 시어머니는 아들을 보며 "내 새끼 왜 이렇게 아프냐"며 울먹였다. 이 교수가 말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폐렴이 왔습니다. 오늘은 멀리 가지 마시고 병원에 계셔야 합니다."

어린 아들도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다. 간호사에게 "1인실로 옮겨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얘기를 전해 들은 이 교수는 "아들을 데려와도 좋다"고 했다. 친정어머니가 "아빠, 편안한 곳으로 가세요"라는 말을 연습시킨 뒤 손자를 데려왔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전과 너무 다른 아빠 모습에 아들은 많이 놀라 보였다. 그리고 오후 5시 41분, 사망이 선언됐다.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았다. 했더라도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남편은 8, 9개 줄과 관을 꽂고 있었고, 침대 양쪽으로 수많은 의료 기계가 작동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그린 환자와 가족들의 모습. 그래픽=손영하 기자·미드저니


심장은 멈췄지만, 남편은 숨을 계속 쉬고 있었다. 들숨과 날숨을 이어갔다.
기계에 의지한 인공의 호흡
이었지만 시어머니는 "우리 아들 살아 있다"며 의료진을 불렀다. 죽음에 이르게 한 폐가 남편 몸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움직였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9일간 인공호흡기 관을 물고 있던 남편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눈을 뜨고 죽은 이의 눈을 감겨주는 장면은 본 적 있지만, 입을 벌린 채 죽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시어머니가 턱을 잡고 아들 입을 닫으려 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계속 울었다. "애가 아프다. 이렇게 아프다."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땠을까



시어머니는 이 모든 기억을 갖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남편의 연명의료를 반대했을까.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시어머니가 "괜찮냐"고 물었다. "남편이 더 이상 아프지 않으니까 괜찮아요"라는 답에 시어머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내가 아들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길게 늘어뜨렸구나.' 표정은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당연히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무엇이 최선이었는지 그때도 지금도 알지 못한다. 남편과 미리, 상세히 논의하고 준비했다면 달라졌을까. 시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다툼의 시간만 길어졌으려나. 그래도 한 가지는 가슴에 새겼다. '내가 죽을 때, 이 고민을 절대 우리 아들한테 넘기지 않겠다. 무조건 내가 결정하고 가겠다.'

아들은 하루 사이 부쩍 성장했다. 장례식장에서 방문객들을 식사 자리로 안내하고, 엄마가 저녁을 먹었는지 챙겼다. 하지만 오후 10시가 지나자 탈진했다. 예전의 아이로 돌아가 집에 가고 싶다고 울먹였다.

■ '유예된 죽음' 특별취재팀팀장= 김혜영 기자(엑설런스랩)
취재= 손영하 · 이서현 기자(엑설런스랩), 백혜진 · 정혜원 인턴기자
사진= 정다빈 · 강예진 기자
영상= 박고은 · 이수연 · 박채원 PD, 김태린 작가
인터랙티브= 박인혜 기획자, 남유진 개발자, 이정화 디자이너

목차별로 읽어보세요

  1. ① 갈피를 잃었다
    1. • 심장이 멈춘 남편은, 계속 숨을 쉬었다...연명의료 죽음의 풍경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902070004504)
    2. • "안 받겠다" 해도 결국 절반은 연명의료 받다 숨진다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1714550003896)
    3. • '연명의료 거부' 300만 시대... 70대 여성 31%가 쓴 이 문서는 [유예된 죽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318510004794)
    4. • "나는 오늘 아빠의 죽음을 결정했다" [인터랙티브]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291155000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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