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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로 1000㎞ 이상 거리인데… '46년간 대립'
20세기 중반 이란 팔레비 왕정 땐 '우방 사이'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계기로 적대적 관계
'공동의 적' 이라크 견제 위해 '은밀한 공생'도
이란 핵개발에 갈등 고조… '그림자 전쟁'까지
베냐민 네타냐후(왼쪽 사진) 이스라엘 총리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뉴시스·연합뉴스


지난 13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이 이란 전역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하면서 촉발된 양국의 극한 갈등은 일단 ‘트럼프식 강압 외교’의 개입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1일 이란의 주요 핵시설 대규모 기습 폭격을 감행한 뒤, 이틀 후인 23일 이란과 이스라엘 간 전면 휴전 합의를 공식 발표한 것이다. 다만 이번 공습으로 이란 핵시설이 얼마나 파괴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더 큰 무력 충돌은 피했지만, 이란의 핵 개발 지속 여부는 미궁에 빠진 상태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중동의 대표적 앙숙이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국가 간 분쟁은 대부분 영토나 종교적 종파를 둘러싸고 벌어지는데, 두 나라의 관계는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특수한 적대관계’라는 얘기다. 두 나라는 육로로 최소 1,400㎞ 이상 떨어져 있고, 이들 사이에는 이라크·요르단 등 아랍 국가들이 자리해 있다. 공식적인 전면전을 벌인 적이 없으며, 경제적 이해관계도 크게 얽혀 있지 않다. 그럼에도 수십 년간 대리전을 치러 온 게 이란과 이스라엘이다.
46년간 이어지고 있는 양국 대립
관계의 역사적 맥락을 되짚어 봤다.

①이란, '친미 왕정' 땐 이스라엘에 우호적

22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구시가 성벽에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 국기(성조기)의 이미지가 투사되고 있다. 예루살렘=AP 뉴시스


사실 이란과 이스라엘은 20세기 중반 때만 해도 돈독한 우방 관계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했을 때, 이란은 튀르키예에 이어 이슬람권 국가 중 두 번째로 이를 승인했다. 그 배경에는 이란이 아랍 문화권에 속하지 않는
‘비(非)아랍 이슬람 국가’
라는 특수성이 있다. 이란은 지리적으로 중동에 위치해 있고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으나, 나라를 구성하는 주요 민족은 아랍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다. 언어 역시 아랍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요르단·이라크 등 아랍 국가들이 연합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제1차 중동전쟁(1948년 5월~1949년 3월)에도 이란은 관여하지 않았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 말까지 이란을 이끈 인물은
친(親)미국·친서방 성향의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
이었다. 정권 자체가 친미 성향이었기 때문에
이란은 중동 내 미국의 주요 동맹국 중 하나
였다. 이스라엘도 주변 아랍국들의 적대감에 맞서기 위해 이란과의 우호 관계를 적극 추진했다. 이 시기 두 나라는 미사일을 공동 개발하고, 서로를 잇는 직항 항공 노선까지 운영했다.

②'신정 체제' 이란 정권, 반미·반이스라엘 노선



양국 관계가 180도 바뀌게 된 분기점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등 서방의 내정 간섭을 허용했던 팔레비 왕정의 독재 체제가 무너졌다. 이후 이란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운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섰고, 이란·이스라엘 관계도 급속히 냉각됐다.

이란 수도 테헤란에 위치한 이란 초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1902~1989)의 묘. 오른쪽에 있는 대형 걸개 그림이 호메이니의 초상화이며, 왼쪽 걸개 그림의 주인공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현 이란 최고지도자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혁명으로 들어선 이란의 ‘신정 체제’ 정권은 미국을 ‘큰 사탄’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혈맹인 이스라엘은 ‘서방의 식민주의 대리인’, 곧 ‘작은 사탄’으로 바라봤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적대적 감정은 정권 지지층 결집의 기반이 됐다. 당시 이란은 수도 테헤란의 이스라엘대사관을 점거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넘기는 상징적 조치를 취했고, 이후에는 아예 팔레스타인 문제까지 흡수하며 이스라엘 국가의 합법성을 전면 부정했다. 이때부터
이란과 이스라엘 간 외교·경제 관계는 공식적으로 단절
됐다.

다만 이 시기 이스라엘에는 이란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당시에는 이라크의 세력 확장·군사력 증강이 중동 안보의 최대 위협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1990년대 말까지는 이란에 대한 적개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이라크 전쟁에선 ‘이라크 견제’라는 명분으로 이란 측에 몰래 무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등을 돌린 사이지만,
이라크라는 ‘공동의 적’ 앞에서 은밀히 공생
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③이스라엘, 이란 핵개발 저지 총력… 과학자 암살도



1990년대 들어 이라크의 역내 영향력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란과 이스라엘 간 갈등에도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른바 ‘그림자 전쟁’이 본격화한 시점도 이때다. 이란은 주변국의 반(反)이스라엘·친이란 무장단체를 비밀리에 지원했다. 1980년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후원을 시작으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및 이슬람지하드 △예멘의 후티 반군 등에 무기·자금·훈련 인력 등을 제공했다.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활동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 본토를 기습 공격했을 당시에도 이란이 배후 세력으로 지목됐던 이유다.

25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 위치한 주레바논 이란대사관 바깥에서 열린 '이란 지지' 집회 도중,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를 지지하는 한 시민이 이란 국기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사진을 양손에 각각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베이루트=AP 뉴시스


‘이라크’라는 주적이 사라진 뒤, 이스라엘에 가장 위협적인 요인은 이란이 은밀히 개발해 온 핵기술이었다.
1990년대부터 이란은 무기화가 가능한 핵기술 개발에 속도를 냈고, 1999~2003년에는 이른바 ‘아마드 프로젝트(AMAD Project)’를 통해 핵무기 개발도 본격 추진했다. 이 시기 이란은 원심분리기, 우라늄 농축, 핵탄두 설계 등 핵심 기술을 확보했다.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외교전·첩보전·사이버전을 총동원했다. 2010년에는 이란 핵시설에 악성코드를 심어 공격했으며, 이후 2년에 걸쳐 이란의 주요 핵 과학자들을 제거했다. 2020년엔 ‘이란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던 핵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를 암살했고, 지난해 10월 이란의 방공 시스템도 거의 무력화했다. 이란의 핵 위협이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올해 6월, 결국 이스라엘은 이란 핵시설을 겨냥해 사상 최대 규모의 직접 군사 공격을 단행했다.

④미국도 참전했지만… 이란, 핵개발 포기할까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약 408㎏, 핵폭탄 9개 상당을 제조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로선 중동 내에서 가장 적대적 관계인 이란이 핵무기를 손에 쥐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은 없다. 최근 하마스와 헤즈볼라 등 이란의 대리 무장 세력이 크게 약화된 점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금이 이란을 공격할 최적의 시기’라고 판단하게 만든 배경이다.

13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민들이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파손된 아파트 건물을 지켜보고 있다. 테헤란=AP 뉴시스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발표 이후 이란·이스라엘 간 상호 공격은 잦아들었지만,
‘이란의 핵 개발’ 향방은 여전히 안갯속
이다. 이란은 휴전을 수용하면서도, IAEA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결의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며 핵 개발 지속 의사를 드러냈다. 잠재적인 불씨는 남아 있는 셈이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이 대목에 있다. 이스라엘·미국의 공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이란 입장에선 오히려 ‘핵 개발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이란 내에선 “국가 안보를 위해 믿을 건 핵무기뿐”이라는 강경파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게다가 이번에 이란 핵시설이 얼마나 파괴됐는지도 불분명하다. CNN방송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란이 핵시설 공습을 당하기에 앞서 농축 우라늄 비축량을 외부로 반출했을 가능성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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