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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94
국회 시정연설 야당과 화기애애 분위기 연출
균형·발탁·안배 인사 호평…긍정 평가 64%
‘말로만 의회주의’ 윤석열 전철 밟으면 안 돼
이재명 대통령이 6월2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취임 뒤 첫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악수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이 6월 26일 국회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 연설을 했습니다. 20분짜리 연설에는 과장도 없었고 군더더기도 없었습니다. 경제라는 단어를 24차례, 성장이라는 단어를 12차례 사용했습니다.

“새로운 나라,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은 대통령 혼자 또는 특정한 소수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인수위원회도 없이 출범한 정부가 시급하게 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한 이유는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경제는 타이밍’이라고 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 타이밍으로 생각됩니다.”

연설 내용 못지않게 눈길을 끈 것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 국민의힘 의원들은 일어서서 맞았습니다. 연설을 마친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다가가서 웃는 표정으로 많은 사람과 악수를 했습니다. ‘노련한 정치인’의 모습이었습니다.


요즘 이재명 대통령의 성적표는 매우 좋습니다. 한국갤럽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직무 평가를 조사해서 27일 발표했습니다. 긍정 64%, 부정 21%였습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첫 직무 긍정 평가는 노태우 29%, 김영삼 71%, 김대중 71%, 노무현 60%, 이명박 52%, 박근혜 44%, 문재인 84%, 윤석열 52%였습니다.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져 가는 환경에서 긍정 64%는 꽤 높은 수치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재명 대통령은 6월4일 취임식에서 ‘통합과 회복’을 강조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정의로운 통합정부, 유연한 실용정부가 될 것”이라며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내란 극복과 단죄’도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세 특검 임명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한 뒤, 내란 극복과 단죄는 전적으로 특검에 맡겼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자신은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으로 무너뜨린 민생·경제, 외교·안보 정상화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내란 극복이라는 말은 아예 입에 담지 않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무 평가의 상당 부분은 인사가 좌우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균형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고위 공직에 주로 정치인과 관료들을 임명하고 있습니다. 교수들은 대통령실 참모나 국정기획위원회에 배치했습니다. ‘라인’과 ‘스태프’를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적절하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정치인은 고위 공직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15년 집권 경험이 있습니다. 인재의 창고입니다.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을 많이 기용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둘째, 발탁입니다.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과감하게 발탁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앙 정치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고위 공직을 맡길 만한 측근들이 별로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발탁해서 쓸 수밖에 없습니다.

발탁 인사는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강훈식 비서실장, 우상호 정무수석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기용한 고위 공직자 중에 진정한 의미의 ‘친이재명’ 인사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정우 에이아이(AI)미래기획수석,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등 민간 분야 발탁도 눈에 띕니다.

셋째, 안배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인사의 기준은 실력이라고 천명했지만, 실제로는 실력 못지않게 출신 지역, 정치 성향, 성별 등에 따라 다양한 안배를 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전북 출신입니다. 강훈식 비서실장은 충청 출신입니다. 우상호 정무수석과 윤창렬 국무조정실장은 강원 출신입니다.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는 보수입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입니다.

“내각 여성 비율 30%를 명시하기는 어렵다”고 미리 엄살을 부렸지만,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여성들을 기용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장관으로 지명한 후보자 가운데 몇 사람은 앞으로 언론 검증과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재명 대통령이 고위 공직 인사를 통해 국민통합을 실천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본래 이렇게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을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의 뛰어난 역량과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도 경험과 단련을 통해 성장합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17년 성남시장 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하면서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날 때부터 강심장이어서가 아니라 인생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렇습니다. 그는 경북 안동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남시로 이주해 소년공이 됐습니다. 공장에서 산재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됐습니다. 공장 관리자들에게 심하게 맞았습니다.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그래 죽을 힘을 다해 살아보자!’ 손자병법 구지편을 보면 ‘어쩔 수 없게 되면 싸우게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때의 내가 꼭 그러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처지까지 내몰렸고, 이제 남은 것은 인생의 시련과 싸워나가는 일뿐이었다. 나는 주먹을 쥐고 다시 일어섰다. 가진 것은 맨주먹과 아직 남아 있는 한 톨의 희망이 전부였지만 그것을 밑천으로 싸워볼 생각이었다.”

그는 검정고시로 중앙대에 진학했고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가 됐습니다. 성남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을 맡는 등 시민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법률 지식으로 기득권 세력에 맞서 싸우는 ‘투사’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2004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 무산이 계기였습니다.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20년 정치 이력을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2006년 성남시장 출마 낙선

2008년 총선 성남분당갑 출마 낙선

2010년 성남시장 당선

2014년 성남시장 재선

2017년 대선후보 경선 출마 낙선

2018년 경기지사 당선

2022년 대선 출마 낙선, 국회의원 당선, 대표 당선

2024년 국회의원 재선, 대표 재선

2025년 대통령 당선
성남시장 8년과 경기지사 4년 동안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이 기간에 그가 보인 리더십은 ‘행정가’의 리더십이었습니다. 행정가 리더십을 기반으로 2022년 대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뒤 국회의원이 됐고 민주당 대표가 됐습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두 차례 국회의원과 두 차례 민주당 대표를 하면서 이재명 대통령은 정치인으로 바뀌었습니다.

행정가와 정치인은 비슷해 보이지만 많이 다릅니다. 행정가는 주어진 제도와 환경에서 성과를 내는 사람입니다. 정치인은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사람입니다.

제도와 환경을 바꾸는 것은 개혁입니다. 개혁하려면 국민을 설득해야 합니다. 정치인에게 설득의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개혁하려면 생각이 다른 집단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필요하면 양보도 해야 합니다.

혁명보다 어려운 것이 개혁입니다. 혁명은 국민이나 시민이 할 수 있지만, 개혁은 정치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도 바로 개혁입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과 지속성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취임 6일 뒤 국회 시정연설에서 협치를 강조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각자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공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의회주의’라는 말을 네 차례, ‘초당적 협력’이라는 말을 세 차례 했습니다.

말뿐이었습니다. 야당을 외면하고 배제하고 탄압했습니다. 애초부터 협치나 의회주의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말만 그럴듯하게 했던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훌륭한 반면교사인 셈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획재정부 개혁, 검찰 개혁과 같은 고난도 과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기득권 세력은 강하게 저항할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민을 설득하고 제도와 환경을 바꿔낼 수 있을까요?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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