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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퍼컴퍼니 이용 위장계산서
대법 “실거래자와 명의 달라 위법”
[법알못 판례 읽기]


삼양식품 밀양 2공장.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과 자회사들이 라면스프·포장박스 공급 과정에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계산서를 위장 발급·수취했다는 이유로 세무당국이 부과한 거액의 세금 추징이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같은 기업집단 내 거래라 하더라도 세금계산서상 명의와 실제 거래 주체가 달라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실명제 원칙을 재확인한 것으로 평가된다.

대법원 제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 5월 29일 삼양식품과 삼양내츄럴스, 삼양프루웰, 알이알이 성북세무서장과 원주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부가가치세 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2심 판결 중 상당 부분을 파기환송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 일부승소로 판결한 2심과 달리 세무당국의 과세처분이 대부분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번 소송에서 원고 삼양식품 등을 대리해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정병문·김용상·정광진·김정현 변호사가 나섰고, 피고인 성북세무서장과 원주세무서장을 대리해서는 법무법인 무영(강경구·임정현·김효빈 변호사)과 법무법인 바른(이원일·추교진·백종덕 변호사)이 나서 상고심에서 최종 승소를 이끌었다.

7년간 503억원 규모 세금계산서 위장 발급


이번 사건은 삼양식품 등이 2011년부터 2017년까지 약 503억원 상당의 라면스프와 포장박스를 공급하면서 실제 거래 당사자와 다른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았다는 혐의에서 비롯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이 2018년 10월부터 2019년 2월까지 실시한 법인제세통합조사 결과 복잡한 세금계산서 위장 구조가 드러났다.

구체적으로 삼양식품은 삼양내츄럴스로부터 388억여 원 상당의 라면스프 원료를 공급받았음에도 페이퍼컴퍼니인 I홀딩스 명의로 발급된 세금계산서를 수수했다. 또한 삼양프루웰로부터는 115억여 원 상당의 포장박스를 공급받았음에도 알이알 명의로 발급된 세금계산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삼양내츄럴스와 삼양프루웰이 금수실업, 일품포장 등 실제 거래처들로부터 라면스프와 포장박스를 공급받았음에도 마치 알이알 등 페이퍼컴퍼니로부터 받은 것처럼 세금계산서를 꾸며 수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런 복잡한 구조 뒤에는 삼양그룹 회장과 그 배우자의 조직적인 횡령 계획이 있었다. 이들은 2007년경부터 삼양의 자회사 직원들로 하여금 원래 모회사들이 삼양식품으로부터 지급받아야 하는 공급대금을 페이퍼컴퍼니 계좌로 받아 사용하도록 공모했다.

실제로 회장과 배우자는 2019년 이 횡령 범행에 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3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런 배경 때문에 세무당국은 단순한 세무 오류가 아닌 조직적인 탈세 행위로 보고 무거운 가산세를 부과했다.

성북세무서는 삼양식품에 대해 2011년 1기분부터 2017년 2기분까지의 부가가치세 본세와 각종 가산세 등 합계 47억여 원을 증액경정·고지했다. 원주세무서는 삼양내츄럴스에는 부가가치세 26억여 원과 법인세 27억여 원을, 삼양프루웰에는 부가가치세 5억여 원과 법인세 14억여 원을 각각 부과했다.

3가지 쟁점 놓고 엇갈린 판결


이 사건에서는 크게 세 가지 핵심 쟁점을 두고 1·2심과 대법원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 먼저 명의불일치 세금계산서의 매입세액 공제 가능성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다.

2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 1-1행정부(재판장 심준보)는 “실제 재화나 용역의 공급이 있었다면 세금계산서상 명의가 달라도 가공 세금계산서가 아니다”라며 매입세액 공제가 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실제 거래를 한 사업자와 세금계산서상 명의자가 다르므로 ‘사실과 다른 세금계산서’에 해당한다”며 “매입세액은 공제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두 번째 쟁점인 부정행위 인정 및 부과제척기간에서도 시각이 달랐다. 2심은 같은 기업집단 내 거래에서 명의만 달랐을 뿐 조세포탈 의도로 보기 어렵다며 5년 부과제척기간을 적용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자금 횡령을 목적으로 자회사 명의를 이용해 매출 외형을 이전시킨 것”이라며 명백한 부정행위로 판단하고 10년 부과제척기간을 적용했다. 모회사들에 대해 해당 법인세 본세를 포탈하려는 부정행위가 인정돼 그 본세에 대해 10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면 각 가산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10년의 부과제척기간이 적용된다고 본 것이다.

세 번째 쟁점인 각종 가산세 부과의 정당성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2심은 모회사들이 자회사 명의로라도 세금계산서를 발급했으므로 세금계산서미발급가산세 등 대부분의 가산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봤다.

반면 대법원은 실제 거래를 한 주체와 명의자가 다르므로 모회사들은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지 않은 것이고, 자회사들은 공급 없이 가공으로 발급·수취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모든 가산세 부과가 정당하다고 결론지었다.

대법원은 무엇보다 세금계산서 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강조했다. “전 단계 세액공제법을 채택하고 있는 부가가치세법 아래에서 세금계산서 제도는 당사자 간의 거래를 노출시킴으로써 부가가치세뿐 아니라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원포착을 용이하게 하는 납세자 간 상호검증의 기능을 한다”며 “사업자등록과 함께 부가가치세 제도를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밝혔다.

이런 취지에서 재판부는 “실제 거래를 한 사업자인 원고 모회사들과 명의자인 자회사들이 달라 ‘공급받는 자의 등록번호’가 사실과 다르게 적힌 세금계산서에 해당한다”며 “그 매입세액은 원고 모회사들의 매출세액에서 공제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돋보기]

명의대여 vs 실질적 사업 운영, 명확한 구분 기준 제시


대법원은 이번 삼양식품 판결에서 세금계산서 명의 관련 중요한 법리를 정립했다. 재판부는 “제3자의 위임 아래 제3자 사업자등록을 이용해 실제 거래를 하면서 제3자 명의로 된 세금계산서를 발급·수취한 경우”와 “형식적으로만 제3자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실제로는 자신이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는 경우”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자의 경우 세금계산서는 실제 거래행위자가 아닌 제3자의 거래행위를 나타내기 위해 제3자에 의해 발급·수취된 것이므로 가공 세금계산서에 해당한다고 봤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실제로 사업체를 운영하는 자가 세금계산서를 발급·수취해야 할 주체가 되므로 가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런 구분의 판단 기준으로는 △명의자와 실제 사업체 운영자의 경력·지위·관계 △제3자 명의 사업자등록을 하게 된 동기나 목적·경위·시기 △제3자 명의로 운영하는 사업의 구체적 내용과 거래 방식 △수익이나 비용 등의 관리 및 자금 운영 방식 △명의자가 세금계산서 발급·수취에 관여한 정도와 그를 통해 얻은 이익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회장이 운영한 원고 모회사들은 자회사의 사업자등록 명의만을 빌려 실제 사업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단지 대표이사 등의 자금 횡령을 목적으로 자회사 명의의 기존 사업자등록을 이용해 모회사들의 매출의 외형을 자회사로 이전시키면서 자회사의 거래행위를 나타내는 세금계산서를 발급·수취했을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허란 한국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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