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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속 가능한 민생 및 성장 정책을 위한 핵심
피터 드러커 "기업이 혁신의 근원적 주체"
이재명 정부, AI 100조 원 투입 성장 전략
"결국 민간 주도의 생태계 구축 필요"

편집자주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가 다양한 경제 현안을 깊이 있는 분석과 참신한 시각을 담아 전해드리는 '이정환의 경제시대'를 연재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유럽연합(EU)의 테크기업 저성장과 관련한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는 미국과 중국이 혁신과 성장을 위해 질주하는 동안, 유럽은 규제와 윤리 문제에 집착해 기술 경쟁력을 빠르게 잃고 있다고 비판한다. 구글, 아마존, 메타와 같은 미국과 중국의 대형 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지만, 유럽은 복잡한 노동시장 등에서의 규제와 윤리적 논쟁으로 인해 혁신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기업의 혁신 능력이 '젊음'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상위 10대 상장기업의 중위 설립 연도가 1985년인 데 비해 유럽의 경우 1911년으로, 무려 한 세기 가까이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지난해 보고서를 통해 유럽 경제 침체의 근본 원인이 테크 산업의 심각한 부진이라고 진단했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공적 자금을 적극 투입할 것을 제안했지만, 이 같은 접근은 민간 투자 활성화와 근본적인 규제 완화를 외면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WSJ 역시 유럽의 정체된 혁신 생태계가 근본적인 민간 투자 부족과 규제 과잉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EU 지역에서는 인공지능(AI)을 논할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윤리와 규제부터 꺼내지만, 미국과 중국의 투자자들은 혁신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대비했다.

민간 투자 부족한 EU, 美·中에 뒤처질 수밖에

게티이미지뱅크


이 같은 비판은 결국 혁신의 최종적이고 실질적인 주체가 바로 기업이라는 사실과 긴밀히 연결된다. 현대 경영학의 창시자인 피터 드러커는 그의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기업에는 오직 두 가지 기능만이 필요하다. 그것은 마케팅과 혁신이다"라고 단언했다. 이는 기업의 본질이 단지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고객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데 있음을 의미한다. 드러커에게 있어 기업은 단순히 이윤을 얻는 조직을 넘어 끊임없이 시장의 변화를 읽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만드는, 혁신의 근원적 주체임을 제시한다.

드러커는 또한 그의 명저 '기술, 경영, 그리고 사회'에서 경영의 목적이 효율성 그 자체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술적 운영과 비용 절감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사회 전체에 가치 있는 변화를 불러오는 혁신을 실현하는 데 있다. 결국, 사회적·경제적 발전을 견인하는 혁신의 실제적 주체는 정부나 학계가 아니라 시장의 도전을 과감히 마주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업이라는 것이다.

드러커의 기업관은 분명하고 명쾌하다. 연구 기관의 지식 생산과 창의적 인재의 아이디어가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이를 현실에서 구체적 서비스와 제품으로 전환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진정한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혁신의 진정한 동력은 기업의 구체적인 실천과 시장에서의 현실적 적용에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아이디어도 기업을 통해 실제 제품과 서비스가 되지 않으면 의미를 가질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혁신의 최종 주체가 기업임을 강조한다.

기업의 혁신은 결국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된다. 성장에 있어 포용적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작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역시 기업 차원의 혁신 활동이 경제 성장과 생산성 향상의 핵심 동력임을 명시한다. 그는 혁신, 자원의 재배분, 그리고 경제 성장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며, 덜 생산적인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당하고 혁신 능력이 뛰어난 기업에 자원이 효율적으로 재배분될 때 경제의 장기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아제모을루에 따르면, 경제 성장의 동력은 고혁신 능력을 갖춘 기업과 저혁신 능력 기업 간의 시장 선택(selection) 과정에서 비롯되며, 이 같은 역동적 과정이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장기적 경제 성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혁신 기업으로 자원이 집중될 경우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李 정부, AI 인프라 구축 초점...민간 주도 생태계 구축 부족

그래픽=송정근 기자


기업혁신과 경제 성장에 관한 논의는 새 정부 경제정책에 시사점을 준다, 현재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출범 초기부터 민생과 성장을 동시에 강조하며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30조 원이 넘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소비 진작과 소상공인 채무 탕감 등 민생 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고, AI를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아 총 100조 원을 투입하는 강력한 혁신 성장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들은 단기적으로 민생 회복에 기여할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성장과 혁신을 논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혁신의 구체적인 주체와 이를 통한 경제 성장의 명확한 주체 설정이다. 예컨대 이재명 정부의 AI 중심 정책은 하드웨어와 인프라 구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제 혁신을 이끌 기업과 이를 뒷받침할 민간 주도의 생태계 구축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WSJ의 유럽 테크 기업 저성장에 대한 분석은 한국이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교훈을 담고 있다. 유럽의 사례는 혁신의 주체인 기업과 혁신 환경을 만드는 정부의 관계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 역시 최근 AI나 첨단기술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혁신을 주도하는 기업의 역할과 이들을 둘러싼 정책적·제도적 환경은 불분명한 상태이다.

연구실에 갇혀있는 R&D...기업 발목 잡는 규제

그래픽=송정근 기자


국가 연구개발(R&D) 사업과 같은 경우, 혁신 주체로서의 기업과 정부의 인식이 괴리된 대표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막대한 규모의 R&D 투자를 해왔으나, 성과는 기대 이하라는 지적이 지속되고 있다. 세계적 학술지인 네이처 인덱스(Nature Index)는 최근 한국의 R&D 성과가 예산과 인력 투입 대비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예산 지출 비율이 5%로 세계 최상위권이고, 절대적 연구자 수 역시 주요 과학 선진국보다 많지만, 실질적인 기술 혁신이나 경제적 성과는 이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비효율성의 핵심 원인 중 하나는 R&D 정책이 기업의 혁신 수요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지 않은 채 기초 연구와 초기 실험 단계에만 과도하게 편중된 것에 있다. 감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국가 R&D 과제는 기술성숙도(TRL)가 낮은 1~4단계에 집중돼 있고, 실증과 사업화를 담당할 중·후기 단계(TRL 5-6)는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가 실제 시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성과로 연결되지 못하고 연구실에 갇혀있는 상황으로, 기업 혁신과 경제적 가치 창출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R&D 전략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그간 한국에서도 기업 혁신을 위해 네거티브 규제 전환과 민간 모험자본 활성화 등 다양한 정책적 제안들이 오랜 기간 논의돼 왔으나, 현실적으로 규제 철폐나 혁신 중심의 자금 조달을 위한 은행 자본 투자 등 구체적 제도 개선은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이제는 추상적이고 반복적인 논의에서 벗어나 실질적 제도 개선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R&D 분야에서 지적했듯, 개선 사항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새 정부는 과거의 반복적 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기업이 혁신의 진정한 주체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책을 입안해 지속 가능한 '민생과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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