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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온다"…인생 3막은 나무 의사 도전장


편집자 주
= 20대부터 민주화를 이끌었던 '86세대'가 노인 인구에 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알아요'를 외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춤을 따라 추던 엑스(X)세대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넘쳐나는 활력에 하고 싶은 일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지만 어쩌다 보니 시니어가 된 세대, 연합뉴스는 86세대 중 처음으로 올해 노인연령(65세 이상)에 편입되는 1960년생부터 올해 50세가 되는 1975년생까지를 액티브한 시니어 세대, 즉 '액시세대'로 보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봤습니다. 액시세대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 살펴보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액시세대의 고용, 소비, 여가 등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매주 일요일 소개합니다.

관리사무소장 된 40년 공무원
[촬영 김준범]


(대전=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인생 제2막의 기회도 준비한 사람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9일 대전 동구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만난 정제언(64)씨는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

정씨는 2021년 40년간 몸담은 공직을 떠나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퇴직 후 첫 출근을 하며 1981년 공무원 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날을 떠올렸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꿈꿨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20살 나이에 취업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때 야간 대학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었다"며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꾹 참고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충남 예산 출신인 그는 답답한 시골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시를 찾아 천안을 공직 생활 초임지로 선택했다.

그런 그에게 더 큰 무대인 대전에서 공직 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7년 후인 1988년 대전 동구로 근무지를 옮겼다.

어린 시절부터 배움에 목말랐던 그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틈이 나면 공부를 이어갔다.

업무에 쫓겼지만, 방송통신대 수업을 꾸준히 수강해 2002년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어 2015년에는 학점 인증제를 통해 사회복지 전문학사까지 취득했다.

일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사회복지사 2급과 갈등 상담사 자격증도 틈틈이 준비해 따냈다. 주경야독의 성과였다.

근면 성실함으로 공무원의 본분도 다했다.

2009년 대전시 모범공무원으로 선정돼 국무총리상을 받은 데 이어 2016년에는 행정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해 2차례에 걸쳐 공모전 입상에도 성공했다. 행정자치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주는 상을 포함해 모두 6개의 상을 받았다.

이장우 동구청장(오른쪽ㆍ현 대전시장)에게 포상받는 정제언씨
[정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그가 대전 동구 대청동장을 비롯해 대전시 가정복지과와 노인보육과 등에서 일하며 다양한 민원인을 만나 쌓은 경험은 공무원의 역량을 키우는 자양분이 됐다.

20살 청년에게도 4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베테랑에게 어느덧 은퇴 시기가 닥쳤다.

정씨는 "매일 업무에 매달리면서 살다가 정년퇴직이라는 현실과 갑작스럽게 마주했다"면서도 "조금이라도 일찍 다음 스텝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어 바로 실행에 나섰다"고 말했다.

은퇴를 1년 앞둔 2020년 공로 연수에 들어가면서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공무원들에게 통상 공로 연수는 '쉼의 시간'일 수 있었지만, 그에겐 '인생 2막 준비 시간'이었다.

주저 없이 학원에 등록한 후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매일 14시간 이상 책상에 앉아 쉼 없이 책을 들여다봤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어 부족한 체력은 집과 학원을 걸어 다니며 키워 나갔다.

정씨는 "어릴 적 학원에 다니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갈 수 없었다"면서 "내 돈으로 학원에 다닐 수 있는 상황이 오니 항상 기쁜 마음으로 공부했던 기억이 있다"며 소회를 밝혔다.

5년 전 코로나19 여파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던 상황은 오히려 공부에 집중할 좋은 기회로 다가왔다.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가족들은 늘 정씨의 에너지가 되었다.

아내는 "당신의 재능을 썩히지 말라"고 응원의 말을 전하며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딸은 허리가 불편한 정씨에게 안마의자를 사주면서 아버지의 앞날을 응원했다.

정씨는 "60세라는 나이에 공부하기가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가족들이 항상 큰 버팀목이 되었다"라며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도 가족들의 응원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렇게 그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뒤 10개월 만인 2021년 10월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했다.

같은 해 12월 정년퇴직을 한 정씨는 숨 쉴 틈도 없이 다음 달인 다음 해 1월 곧바로 회사에 취업한 뒤 2023년부터는 현재 근무 중인 회사로 옮겨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씨는 "오랜 시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것들이 많아 사회에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라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아파트 관리소장이 되었다"고 취업 이유를 설명했다.

근무 중인 정제언씨
[촬영 김준범]


오랜 공직 생활은 관리소장으로서 일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어려움을 겪는 주민 고충을 해결하는 등 민원을 상대하고 각종 회의와 계약서, 입찰자료와 같은 서류 만드는 일이 공무원 시절 했던 일들과 비슷해 척척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씨는 관리소장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임하기 위해 조경기능사, 소방 안전관리자 등 자격증을 추가로 획득하는 등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 공무원 후배들이 자신과 같은 길을 가길 원하면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한다.

실제로 그의 조언을 들은 공무원 후배 2명은 자격증 취득 후 올해 관리소장 자리에 앉기도 했다.

그는 "후배들에게 늘 도전하라고 조언한다"라며 "미리 방법을 알고 준비하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웃음 지었다.

인생 2막을 시작한 정씨는 아직도 배움과 공부의 끝을 아직 놓지 않았다.

정씨는 "인생 3막을 위해 나무 의사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다"라며 "지인들과 꾸준히 공부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생 2막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허공에 날아다니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손을 길게 뻗어야 한다"라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노력해 인생의 기회를 잡고 싶다"고 목표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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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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