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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취재진이 만난 ‘영국 아빠’ 일리야 씨, ‘영국 남성 육아휴직 2주는 충분하지 않다’는 플래카드를 만들었다

SNS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는 '영국 남자' 조쉬를 아실까요? 한국 여성과 결혼해 한국과 영국의 문화를 서로 알리면서, 다정한 남편과 아빠의 일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조쉬의 사례만 보면 모든 '영국 남자'가 가정적이고, 육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같지만, '영국 아빠들'의 육아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데요. 이번 특파원 리포트는 '영국 남자'의 육아휴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휴가 쓰고 유아차 끌고 나온 영국 아빠들…"2주는 너무 짧다"

지난 11일, 영국 런던의 한복판 트래펄가 광장과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서 특별한 집회가 열렸습니다.

아빠들이 아이들을 유아차에 태우고 거리로 나온 건데요. 평소라면 일터에 있을 시간이지만, 오늘만큼은 특별한 휴가를 썼습니다. 바로 'Dad Stike', 아빠들의 파업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섭니다.

아빠들이 파업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국이 남성에게 허용하는 법정 육아휴직이 단 2주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유럽의 아빠 육아휴직은 평균 8주입니다.

집회에서 만난 14개월 아들 제이콥의 아빠 일리야 씨는 "2주는 너무 짧아서 배우자가 출산 후 회복하는 기간에 함께 있을 수 없다"며 "자녀와 유대감을 만들 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집회에서 발언 기회를 얻은 많은 아빠가 청소년이 된 10대 자녀와 단둘이 시간을 보낼 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습니다.

■ 배우자와 나눠 쓰는 공유육아휴직…남성 1.7%만 사용

영국의 육아휴직 제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복지가 잘 돼 있다는 유럽인데, 정말 2주만 보장해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거든요.

영국엔 배우자와 함께 나누어 쓸 수 있는 50주의 '공유 육아휴직' 제도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2주 간의 육아휴직과는 별도인데, 이는 부부가 상황에 맞게 번갈아 육아 계획을 세우라는 좋은 취지긴 합니다. 하지만, 이 공유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아빠는 전국에 만여 명, 육아휴직 대상자의 단 1.7%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여성 배우자가 50주를(약 1년) 꽉 채워서 육아 전선에 뛰어드는 겁니다.

이유는 '돈' 때문입니다. 영국 정부는 공유 육아휴직자에게 1주일에 약 170파운드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한국 돈으로는 약 30만 원이니 한 달에 120만 원으로 생계를 꾸려야 합니다. 1주에 480파운드 상당인 영국의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못 미칩니다.

영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성의 평균임금이 여성보다 높습니다. 그러니, '영국 남자'가 '영국 여자' 대신 육아휴직을 쓰면, 가계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더 큰 셈입니다. 동시에 '영국 여자'의 커리어는 결국 육아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기업의 낮은 기대치가 낮은 임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 영국 합계출산율, 선진국 가운데 하위 10%

당연한 말이겠지만,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영국 여자'가 일평생 낳고 싶어 하는 아이는 2명이 넘는 2.3명입니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합계출산율은 1.44명입니다. 우리나라보다는 높지만,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 10%에 속합니다.

영국보다 합계출산율이 높은 EU 국가는 영국에 비해 긴 육아휴직 기간을 보장하고, 정부 보조금도 많이 줍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는(합계출산율 1.84명) 소득대체율 100%의 16주 출산휴가를 주고, 이후 부부 각자가 최대 8개월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8개월간 소득대체율은 80%에 달합니다. 독일은(합계출산율 1.58명) 부부가 최대 14개월의 공유 육아휴직을 소득대체율 80%로 사용할 수 있는데, 만약 정부 지원금을 절반만 수령할 시 두 배인 최대 28개월을 보장합니다.

육아휴직 제도와 돌봄을 전공한 캐서린 트왐리 런던대학교(UCL) 사회학 교수는 " 영국인들이 아기를 낳지 않거나 적게 낳는 원인은 양육비 부담이 크고, 일과 양육의 병행이 힘들다는 것"이라고 자신의 연구를 설명했습니다.

■ 영국 정부 "육아휴직 자격 완화·휴직 보조금 현실화"

'아빠들의 파업' 이후, 영국 정부도 변화를 시사했습니다. 20년 전, 당시 남성에게 처음으로 2주 간의 육아휴직을 도입한 건 혁신적인 제도였지만 사회의 변화를 쫓아가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겁니다.

먼저, 올해부터 육아휴직 신청 자격을 대폭 완화하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영국 남자'가 직장에서 26주 이상 연속 근속을 해야만 공유 육아휴직 신청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입사 첫날부터도 사용할 수 있게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물가를 반영해 휴직 보조금을 현실화하겠다는 방안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부부와 아이가 소중한 첫 순간을 나눌 수 있도록 돕는 건, 느리지만 분명히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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