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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을 자격이 있지만, 절대 주지 않을 걸요.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정상회담 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갈등을 중재한 데 따른 노벨 평화상 수상 여부를 묻는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속내는 다를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집착은 세계 평화 그 이상의 상징”이라며 “약 10년 넘게 이어진 집념”이라고 짚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을 떠나 사우스론에 있는 마린 원을 향해 걸어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AFP=연합뉴스
최근에도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 인도-파키스탄과 이스라엘-이란 간 휴전 중재 등 외교적 행보를 트루스소셜을 통해 실시간으로 홍보하며 ‘세계 평화의 중재자’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 그가 지난 24일 트루스소셜에서 공유했던 B-2 스텔스 폭격기 영상 등이 담긴 뮤직비디오만 해도 2만5300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를 두고 “이란 핵시설 폭격이란 자신의 결단을 통해 휴전을 이끌어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는 해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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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불발, 명예욕 자극
트럼프는 2018년 첫 북·미 정상회담, 2020년 이스라엘-아랍에미리트(UAE) 평화협정, 2024년 중동 평화 기여 등을 근거로 여러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엔 끝내 실패했다. 타임지 등은 “반복된 노벨상 수상 불발이 그의 자존심과 명예욕을 자극했다”고 전했다.
낙찰된 노벨평화상 메달. EPA=연합뉴스
1기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지만, 트럼프와 반목하고 있는 존 볼턴은 미 언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공적 삶의 중심을 ‘영광’에 두고 있다”며 “노벨평화상은 벽에 걸기 멋진 상장”이라고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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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는 되는데, 왜 난 안 돼”
그의 집착 배경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오바마가 2009년 취임 직후 노벨 평화상을 받은 데 대해 트럼프는 “오바마보다 훨씬 많은 일을 했는데 왜 나는 안 주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1기 때 백악관 고위 관리을 지낸 한 인사도 NBC방송에 “트럼프가 오바마는 성공했는데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에 집착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2018년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18명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에 추천했다. 중앙포토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집착이 상징 욕구를 넘어 지지층 결집을 위한 정치 전략이란 해석도 나온다. 버디 카터(조지아주) 하원의원 등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의) 리더십이 전쟁 방지와 평화 추구, 국제적 조화 증진이라는 노벨 평화상의 이상을 구현했다”고 치켜세우며 그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마가(MAGA) 진영 또한 동의하면서 한 목소리를 내는 상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외교는 일관성·지속성이 부족하다”(뉴스위크) 등 회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많다. 노벨위원회의 공식 입장은 “지명만으론 수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이다.
트럼프의 도전이 ‘정치적 쇼맨십’일 수 있다는 풀이도 있다. 그가 바라는 건 ‘수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뉴스와 정치적 에너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한지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