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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쏟아지는 폐의류 어디로

겨울 아동복부터 여름 여성 의류, 남성 정장까지 온갖 헌옷으로 가득찬 컨베이어벨트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컨베이어벨트에 올려진 옷 뭉치들이 향하는 곳은 파쇄기였다. 헌옷들은 파쇄기로 들어가기 직전 옷으로서 수명이 끝난 것이 아쉬운 듯 ‘타닥타닥’ 요란한 소리를 냈다. 폐의류 수거 업체 관계자는 “재활용에 방해가 되는 단추나 지퍼 등이 자동으로 떨어져 나가는 소리”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찾은 충북 진천의 한 의류 재활용 공장. 아파트 단지에 있는 의료수거함 등에서 수거된 헌옷들이 건축 자재로 다시 태어나는 현장이다.

지난 20일 충북 진천의 한 의류 재활용 공장에서 파쇄와 압축 공정을 거친 천 조각들이 기계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파쇄기를 나와 잘게 찢긴 천 조각들은 곧바로 원통형 롤러로 짓눌렸다. 파쇄와 압축 공정을 거친 천 조각들은 보슬보슬한 솜이불 모양으로 가공됐다. 여기까지가 1차 공정이다. 이어 프레스기로 옮겨져 고온으로 찍어 눌렀다가 냉각하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자 단단한 널빤지 형태의 건축 패널로 바뀌어 차곡차곡 쌓였다.

이렇게 한 공정을 마치자 공장 관계자가 공장 한켠으로 안내했다. 폐의류 건축 자재로 만든 견본 주택이었다. 공장은 헌옷이 건물의 일부가 되는 ‘폐의류 재활용 사이클’을 상징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버려지는 연간 1억t의 폐의류 재활용률은 1% 수준에 불과하다.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돼 생태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재활용된 것으로 통계에 잡히는 옷 중 일부는 개발도상국으로 수출돼 소각·매립으로 귀결된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대 10%가 의류산업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전국 폐기물 발생량 통계에 따르면 2023년 폐의류 발생량은 11만938t으로 4년 전인 2019년(5만9000t)보다 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내에서 발생한 폐의류 61.7%는 소각, 14.3%는 매립된다(2022년 기준). 재활용률은 22.3%에 불과하다. 이조차도 인도·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파키스탄 등으로 수출되는 중고 의류가 포함된 수치다. 이들 국가에서 중고 의류가 소비된 뒤 대부분 소각 혹은 매립되는 과정을 거치므로 진정한 의미의 재활용이라고 보긴 어렵다.


폐의류는 다양한 재질이 화학적으로 혼합된 탓에 재활용이 어렵다. 의류에 붙은 각종 부자재와 위생 문제, 낮은 원료 회수 가치, 영세한 국내 재활용 인프라 등이 ‘의류 순환체계 구축’을 막고 있다.

경제적 유인도 부족하다. 의류를 재활용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통상 ㎏당 2000~2500원으로, 소각 비용(300원 안팎)보다 현저히 높다. 높은 재활용 비용으로 인해 재활용 제품의 단가가 높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과 공기업 등에서만 재활용품을 찾는 실정이다.

재활용업계 한 관계자는 “민간 건축주들은 헌옷을 재활용해 만든 건축 자재를 왜 새것보다 비싸게 사야 하느냐고 자주 묻는다”고 전했다.

글로벌 의류 업체들은 발빠르게 폐의류 재활용을 마케팅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럽을 중심으로 폐의류 규제가 강화되고, 친환경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매장을 폐의류 재활용 제품으로 꾸미는 것이다. 영국이나 일본의 패션 브랜드들이 특히 발빠르게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한 의류 재활용 업체 대표는 “재활용 제품은 희끗희끗하게 보여 표면에 통상 필름을 붙이는데 글로벌 패션 회사들은 일부러 재활용한 게 티나도록 필름을 붙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곤 한다”고 설명했다.

팔 걷어붙인 유럽

재활용이 워낙 어렵다 보니 의류는 그간 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전자제품, 플라스틱 포장재 등 다른 순환 자원에 적용되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EPR), 폐기물 부담금, 분리배출 표시 기준 등이 의류엔 적용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의류 재활용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유럽연합(EU)은 ‘에코디자인’ 규정, EPR 등 다양한 의류 재활용 관련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현재는 해당 제도들의 구체적인 기준 및 내용을 채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에코디자인 규정은 재활용을 염두에 둔 설계(Design for Recycling) 의무를 의류에도 적용하려는 것으로 효율적인 재활용 체계 구축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EU는 중고 의류 개도국 수출이 재활용으로 간주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프랑스는 패션 브랜드에 폐의류 수거 의무를 부여했고, 독일은 재활용 인증제를 도입했다. 프랑스 명품인 샤넬은 이달 초 폐섬유 전문 기업과 합작해 재생섬유 브랜드 ‘네볼드(Ne bault)’를 출범시켰으며,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폐제품 회수·재가공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다.

한국도 대응을 본격화했다. 정부는 의류 생산부터 유통, 재활용과 폐기 전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최소화하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첫 단계로 환경부가 ‘의류 순환이용 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지난달에는 섬유·의류 업체, 재활용 업체, 전문가 등이 함께하는 ‘의류 환경 협의체’를 발족했다. 특히 의류에 EPR 제도 적용을 저울질하고 있다. 생산자가 재활용과 폐기까지 관여하는 시스템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유럽은 일정 수준의 폐의류 재생 원료 사용을 강제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폐의류 재활용을 외면하면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의류 재활용 규제가 단기적으로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의류산업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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