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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 전쟁] <상> 가족의 해체
집값 폭등·1인 가구 증가 등 영향
상속사건 해마다 5만건 이상 접수
부모유산 공평 분배 흐름 일반화
기혼 자녀의 배우자 분쟁 전면개입
생전 증여규모 둘러싼 마찰도 빈번
사진=이미지투데이

[서울경제]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 어머니의 사망 이후 집에 남은 막내아들 이 모 씨는 형과 유산을 두고 법정 다툼에 들어갔다. 집을 팔아 절반씩 나누자는 형과 어머니를 간병하며 함께 살아온 집 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동생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다. “결혼도 안 했고 내 집도 없다. 이 집마저 나눠 가지면 갈 곳이 없다”는 이 씨와 “아이들 학비에 대출금까지 있는데 집을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는 형의 입장이 충돌한 결과다.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재산 분할을 넘어 사실상 생존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배우자 없이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 이른바 ‘캥거루족’에게 부모의 집은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안전망이 됐다. 부동산 가격 폭등, 1인 가구 증가, 팍팍한 경제 현실과 맞물려 상속 분쟁이 부유층뿐 아니라 전 계층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경제신문이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대법원 상속재산 분할 사건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10억 원이 넘는 고액 상속 분쟁은 전체의 1%도 되지 않았다. 반면 1억 원 이하인 사건이 전체의 82.7%를 차지했다. 소송 금액만 놓고 보면 ‘작은 다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남은 가족에게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벌어지는 ‘생존 분쟁’이라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불과 10년 전인 2014년에는 연 771건에 불과했던 상속재산 분할 소송이 지난해 처음으로 3000건(2024년 기준)을 넘어섰다. 2022년 이후부터는 상속 관련 가사비송(소송 절차로 처리하지 아니하는 사건)이 해마다 5만 건 이상 접수되고 있다. 재산 분할뿐 아니라 생전 증여의 공정성 문제, 기여분 다툼, 유류분 반환청구 등 가족 간 갈등이 다양한 법적 쟁점으로 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를 지낸 김태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가사재판의 특성상 실질적 분쟁 없이 협의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식 소송까지 가는 사건이 이처럼 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속이 단순한 유산이 아니라 ‘생애 자산’을 둘러싼 법적 쟁점이 됐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상속이 ‘생존형 유산’이 된 것은 부동산 가격 폭등의 영향이 크다.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5월 서울 주택의 평균 매매가격은 10억 398만 원을 기록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평범한 직장인이 서울에서 정착할 집 한 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 상속의 민감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부모가 생전에 소유한 집 한 채가 자산 생태계의 ‘변곡점’이 되고 자녀들 간의 충돌이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됐다는 것이다.

특히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사는 2030세대에게 부모의 집은 현실적인 생계 기반이 되는 경우가 많다. 캥거루족은 고용 불안과 높은 주거비, 결혼 지연 등이 겹치며 점점 늘고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24년 발표한 ‘청년패널조사로 본 2030 캥거루족의 현황 및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30~34세 캥거루족이 53.1%로 30대 초반의 비율은 2012년(45.9%)부터 꾸준히 증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기혼 자녀 간의 상속 갈등은 더 치열해지고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서 3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온 A 씨는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 장남에게 1층 식당과 2층 거주 공간으로 이뤄진 단독주택을 모두 증여했다. 오랜 기간 인근에 거주하며 부모를 돌보고 식당을 함께 운영해온 장남을 배려한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결혼한 딸은 “아버지의 모든 유산이 오빠에게 넘어간 것은 부당하다”며 상속재산 분할을 요구하고 나섰다. 과거 같았으면 “집 지킨 자식이 가져가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였지만 이제는 아들·딸을 가리지 않고 상속재산을 공평하게 나누려는 흐름이 일반화되고 있다. 가족 내부에서 갈등이 정리되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서라도 유산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특히 기혼 자녀의 배우자가 분쟁의 중심에 선 경우가 적지 않다. 남편 또는 아내의 유산을 지켜 노후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상속 분쟁을 오랫동안 다뤄온 이응교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의외로 미혼 자녀보다 기혼 자녀와 그 배우자 쪽에서 먼저 법률 자문을 구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생전 증여의 불균형, 부모 돌봄 기여도에 대한 갈등도 분쟁의 씨앗이 된다. 부모를 모신 자녀는 “내가 희생한 만큼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분가한 형제는 “그렇다고 다 가져갈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핵가족화가 심화되고 사실혼과 비혼 등 다양한 가족 형태가 확산되면서 유산에 대한 인식과 이해관계도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 변호사는 “2000만 원도 없어서 싸우는 게 아니라 그마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상속은 죽은 뒤 남는 재산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꼭 쥐고 있어야 하는 마지막 자원이 됐다”며 “1인 가구 증가, 자산 불균형, 가족 해체가 맞물리며 상속 갈등은 점점 첨예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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