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급증]
근기법 조항 미적용 많은 5인 미만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확산 현상
해고·근무시간·수당 등 무법지대
노동자 착취 만능열쇠 '5인 미만'
적용 예외 두지 말고 편입시켜야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인 대전의 24시간 운영 P카페 체인점에서 일했던 김소영(왼쪽), 김소희씨가 서울 중구 한국일보에서 인터뷰에 앞서 소망을 적은 문구를 들고 있다. 해당 카페에는 사회 경험이 많지 않은 20대 초중반 직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은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각종 수당을 제대로 받고, 사람대우를 받으며 일하고 싶다고 했다. 강예진 기자
하루 8시간 근무가 표준인 시대에, 누군가는 24시간을 일한다.
서울 종로구 한 숙박업소에서 일했던 현재영(가명)씨는 오전 11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11시에 퇴근하는 '24시간 근무' 생활을 지난해 초까지 2년 넘게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하루 쉰 다음, 또 출근하는 진 빠지는 쳇바퀴 생활이었다.
2024년 최저임금은 '9,860원'.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장·휴일·야간 가산수당(1.5배, 휴일·연장·야간이 겹치면 최대 2.5배)을 제대로 받으면 임금은 월 595만 원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받은 돈은 300만 원 남짓이었다. 여러 차례 사장에게 항의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불만을 말할 때마다 성실한 재영씨에게 사장은 "열심히 일하면 새 업장 차릴 때 통으로 네게 관리를 맡기겠다"며 희망고문했다.
재영씨는 "계약서에는 오후 2~8시(6시간)가 휴게시간이라고 돼 있지만 현실은 30분마다 퇴실하는 손님이 있어서 방 점검에, 새벽에는 선잠 자며 손님 응대를 했다"고 했다. 그의 주 평균 근무 시간은 82시간이었다고 한다.
수도권 지역의 한 숙박업소 입구. 사진과 기사는 직접적 관련은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가짜 5인 미만①: 미등록 외국인으로 직원 줄이기
사장이 재영씨의 각종 수당을 떼먹은 구실은 '5인 미만'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주 52시간 규제, 연차휴가·가산수당 지급 의무, 직장 내 괴롭힘·부당해고 금지 등 근기법 내 여러 조항이 면제
된다. 본래 취지는 소규모 사업체의 사정을 고려한 것이지만, 갈수록 돈을 줄 여력이 충분한데도
'가짜 5인 미만'으로 위장해 직원을 '노동법 차별지대'로 몰아넣는 수법이 다양
해지고 있다.
그래픽= 신동준 기자
재영씨가 일한 호텔도 실제 직원은 △24시간 격일 근무자 2명 △낮 근무자 1명 △청소를 담당한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 3, 4명까지 '5인 이상'이었다. 하지만 미등록 외국인은 당국에 포착되지 않는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5인 미만'으로 신고한 것이다.
재영씨는 노무사와 고용노동청 진정을 통해 호텔이 '5인 이상 사업체'임을 인정받았다. 2년 넘게 일하면서
못 받은 연장·야간·휴일수당, 퇴직금, 미사용 연차수당을 합쳐 약 1억2,000만 원 체불사실도 인정
받았다. 그러나 사업주가 무작정 버티면서 민형사 재판까지 벌이는 상황이다. 재영씨 외에 다른 전직 직원들도 서울고용노동청에 1,400만 원, 1,200만 원 임금체불 신고를 했다. 그는 "체불액이 1억 원을 넘어도 (형사 재판에서) 벌금형이 대부분이라고 한다"면서 "임금체불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니 사업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분노했다.
가짜 5인 미만②: 같은 사업장인데 여러 개로 쪼개기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인 대전의 24시간 운영 P카페 체인점에서 일했던 김소희씨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소망을 적은 문구를 들어 보이고 있다. 강예진 기자
실제로는 직원이 5명 이상인 사업체를 가족 명의를 총동원해, 서류상으로만 여러 업체로 나누는 '사업장 쪼개기'도 흔한 수법이다.
지난해 대학을 갓 졸업한 후 '연봉 3,600만 원' 공고를 보고 대전의 24시간 운영 P카페 체인점에 지원한 김소희(24)씨도 이런 수법에 당했다. "
일은 '사장'처럼 하라며 직원에게 '○○○ 대표'라는 명함도 파주면서, 정작 월급은 최저임금도 안 준 거였더라고요.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위장해서요. 주 5일, 하루 12시간씩 일하니 삶이 피폐해지고 감정도 사라지는 것 같았어요."
시급은 최저시급보다 40원 많은 1만 원. 하루 12시간 연속 근무(낮 조 오전 8시~오후 8시, 밤 조 오후 8시~오전 8시)는 꽤나 고됐지만 일당이 12만 원이니 '악으로 깡으로 버티자'고 생각했단다. 정식 근무 전
사흘간 매일 5시간씩 '교육' 명목으로 무급노동
을 시킬 때도 조금 의아했지만 "수습 기간 끝나면 잘 챙겨주겠다"는 대표 말을 믿었다. 그도 그럴 게 카페의 실질적 대표(명의는 딸)는 지역에서 사업체 여러 개를 운영하며 '회장님'으로 불리는 지역 유지였다.
하지만 추석 연휴였던 지난해 9월 14일, 12시간 장시간 노동 후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던 소희씨에게, 대표가 오후 10시쯤 '창문 청소를 제대로 안 했다'는 등 이유로
"○신 같은 새끼"라고 전화로 욕설을 쏟아붓는 사건이 발생
했다. 눈물을 흘리던 소희씨와 그 상황을 함께 지켜본 동료 김소영(25)씨는 며칠 뒤 곧바로 퇴사했다. 당초 '회장님'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려던 소희씨는, 노무사 상담을 하면서 본인이 임금체불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P카페 역시 '5인 미만'이라는 거짓 명분으로, 직원들에게 장시간·야근·주말 노동을 시키면서 돈은 '시급 1만 원'만 줬다. 하지만 실상 P카페 3개 지점에서 10여 명의 직원은 점포를 옮겨가며 구분 없이 일했고, 이들에 대한 임금 지급과 인력 관리도 모두 한 곳에서 처리했다. 대전고용노동청도 P카페가 '5인 이상' 사업체인 점을 인정하고, 소희씨와 소영씨 등 전직 직원 6명의 체불임금을 총 5,400여만 원으로 추산한 상황이다.
이들의 사건을 대리하는 하은성 노무사는 "고용청에서 '5인 이상'과 체불이 인정됐지만 사업주가 '아프다', '변호사 선임하겠다'며 조사를 미뤄 사건 진행이 늦어지고 있다"고 했다.
가짜 5인 미만③: 직원 일부 프리랜서 계약하기
이처럼 총체적인 '노동법 사각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2023년 322만 명(전체 16.8%·사업체 노동실태현황)에 달한다. 사업체 수로는 같은 해 전국 212만여 개 사업체 중 5인 미만은 131만여 곳(전체 61.8%)에 이르렀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도 '5인 미만 사업장' 관련한 상담·제보가 쏟아진다. "5인 미만 업체인데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로 실직을 했습니다. 근로계약서도 바로 작성하지 않고 근무하다 작성했고, 저한테 주지도 않아서 사진만 간신히 찍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 직원은 5명인데 대표가 4대 보험은 2명만 들어주고, 나머지는 3.3 계약(프리랜서 사업소득자)을 했어요. 그래서인지 쉬는 시간도 없고, 주말에도 무턱대고 일하러 나오라면서 거부하면 화를 냅니다."
위
사례처럼 직원 중 일부만 근로계약서를 쓰고, 다른 인력은 프리랜서로 고용해 5인 미만을 위장하는 경우도 있다.
하 노무사가 국세청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직원 중 4명 이하는 고용보험에 가입(근로자)된 반면, 프리랜서인 나머지 직원까지 합치면 5인을 넘기는 사업체가 지난해
14만4,561곳
에 달했다. 물론 이들 전부가 '5인 미만 위장'은 아니겠지만, 상당수가 제도 허점을 악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업체가
2015년에는 3만7,994곳이었는데 10년 사이 4배가량 급증
했다. 또 '명의상 쪼개기'를 통한 5인 미만 사업체 수는 추정도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픽= 신동준 기자
성희롱 피해자 해고도 '합법'···심각한 무법지대
노동법 보호망 밖으로 내쫓긴 '일하는 사람'은 날로 늘고 있지만, 법·제도의 변화는 느리기만 했다. 지난 정부 당시 고용노동부도 '2023 주요 업무 계획' 안에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 점진 확대를 포함시켰지만, 본격적인 추진은 이뤄지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상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기법 단계적 확대 적용"을 약속
하고, 또 별도로 '일터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 제정을 밝힌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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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인 미만 사업장도 근로기준법 단계적 적용...노동계 "구체적 방향부터 내놓아야"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10914230005510)
직장갑질119의 '5인 미만 특별위원회' 신하나 변호사는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다 보니
직장 내 괴롭힘, 성희롱 피해자를 도리어 해고
하는 일도 벌어진다"며 "직장 내 괴롭힘과 부당해고 금지 조항은 당장 재원이 필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바로 적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유급연차, 추가근로수당 등 문제는 국가가 일부 재정 지원을 해서라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일보
최나실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