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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체제 때문에 고용희는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지난 20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 고미 요지(五味洋治·67) 전 도쿄신문 논설위원은 북한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의 삶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최근 북한이 고용희와 관련된 기록을 없애는 등 ‘지우기’에 나선 배경엔 백두혈통과는 거리가 있는 이른바 ‘자이니치(在日·재일동포)’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이날은 그가 지난 10여년간 추적해온 고용희의 삶을 다룬『고용희 '김정은의 어머니가 된 재일 코리안』이 출간된 날이었다.
유방암으로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한 고용희가 수행원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문예춘추 제공
김 위원장의 이복형으로 2017년 독살당한 김정남을 가장 많이 만난 언론인으로도 꼽히는 그는 북한의 세습 문제를 집요하게 취재해왔다. ‘김 위원장의 생모는 어떤 사람인가’에서 시작한 질문은 그를 오사카의 쓰루하시(鶴橋)로 이끌었다. 북한 최고 권력자의 모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수소문했고, 이복 오빠를 만나 퍼즐을 맞춰나갔다. 1952년 쓰루하시에서 태어난 고용희는 10살에 부친 고경택과 함께 북송선을 탔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밀무역을 했던 부친이 한국서는 체포된 이력이 있고, 일본에서 강제퇴거 위기에 놓이자 북한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모 고용희(가운데)가 어린 김정철과 김여정과 함께 있다. 사진 문예춘추 제공
고용희가 공훈 배우 칭호를 얻은 것은 20살 때인 1972년. 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이후 만수대예술단 일원으로 일본 공연을 했다. 당시 친척들은 고용희를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왜 무시하느냐. 우리를 잊었냐”는 말에 “사람을 잘못 봤다”며 외면했다는 증언도 실렸다. 북한 ‘최고 존엄’의 총애를 받는 고용희로서는 재일동포라는 뿌리를 인정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지난 20일 도쿄에서 만난 고미 요지 전 도쿄신문 기자. 김현예 특파원
고용희와 김정철 김여정이 함께 해외에서 찍힌 사진은 물론, 일본을 여행한 당시 위조여권에 사용한 사진도 이번에 공개됐다. 그는 “10살까지 일본에서 살았던 고용희가 김정은에게 일본 노래, 일본어를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추적한 고용희의 마지막은 화려하지 못했다. 1997년으로 추정되는 시기 유방암에 걸렸지만 수술이 아닌 약물치료를 선택했다. “당시 후계자 경쟁 때문에 수술 시기를 놓쳤다”는 것이다.

고용희는 병세가 악화하자 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암 치료를 받다 51세 나이로 사망했는데, 이번 서적에선 수행원과 함께 검은 선글라스와 흰 모자를 착용한 채 휠체어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처음 공개됐다. 여동생 고용숙 이야기도 전했다. 고미 씨는 “김정철과 김정은, 김여정을 돌보며 ‘엄마’라고 불렸던 고용숙이 언니 암 치료를 알아보기 위해 언니 이름으로 미국에 비자를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일본에는 50여 명에 달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친척이 존재한다”며 “이번 책 출간으로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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