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검, 사건 당시 영상 공개
페트병에 든 휘발유 뿌린 뒤 불 당겨
지난달 31일 오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달리던 지하철 5호선 열차 4번째 칸에서 원모(67)씨가 붙인 불로 화재가 발생한 모습. 서울남부지검 제공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 불을 지른 혐의로 붙잡힌 60대 남성 원모(67)씨가 25일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가운데 화재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원모(67)씨가 지난달 31일 오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달리던 지하철 5호선 열차 4번째 칸에서 페트병에 든 휘발유를 뿌리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제공
영상을 보면 흰색 모자를 눌러쓴 원씨는 지난달 31일 오전 8시42분쯤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달리던 열차 4번째 칸에서 노란빛을 도는 액체가 담긴 페트병을 꺼냈다. 원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차례에 걸쳐
바닥에 휘발유를 뿌렸고, 옆 칸으로 대피하던 승객 2명은 휘발유에 미끄러졌다. 다행히 이들은 원씨가 불을 붙이기 직전 일어나 가까스로 화를 피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열차에 불을 지른 혐의로 구속 기소된 원모(67)씨가 지난달 31일 오전 여의나루역에서 마포역 방향으로 달리던 지하철 5호선 열차 4번째 칸에서 페트병에 든 휘발유를 뿌린 뒤 불을 붙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제공
놀란 승객 중 일부는 옆 칸으로 뛰어갔지만, 몇몇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원씨를 바라보기도 했다. 한 여성은 벗겨진 신발 한 짝을 챙길 새도 없이 맨발로 대피해야 했다.
불은 순식간에 번졌다. 영상에 따르면
같은 시간 화재가 발생한 옆 칸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불이 났다는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옆 칸에서 우르르 몰려드는 인파를 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이들 역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원씨가 불을 지른 지 1분이 안 돼 열차 내부는 매캐한 검은 연기로 가득 찼다. 승객들은 해당 열차 끝 칸으로 몰려 가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는데, 연기 때문에 숨 쉬는 게 답답해 손 등을 이용해 입과 코를 가려야 했다.
이날 승객 약 400명은 직접 열차 출입문을 열고 선로를 따라 긴급 대피했다. 알려졌다시피 28년차 베테랑 기관사의 신속한 대응 덕에 22년 전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인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서울남부지검 ‘지하철 5호선 방화 사건’ 전담수사팀은 이날 살인미수와 현존전차방화치상, 철도안전법 위반 혐의로 원씨를 구속 기소했다.
살인미수 혐의는 승객 160명에 대해 적용됐다. 검찰은 원씨가 전 재산을 처분하는 등 신변 정리를 마친 점, 범행 전에도 휘발유를 소지한 상태로 1·2·4호선을 타고 서울 주요 역을 배회한 점 등을 고려해 살인미수 혐의를 추가했다.
원씨는 이혼소송 결과에 불만이 있어 불을 질렀다고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 그는 범행에 사용할 휘발유를 2주 전 주유소에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일보
손재호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