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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사당으로 추정되는 목조건축물
빚 담보 됐다 일본에 넘어가 사찰 기도처로
2002년 취임한 주지가 '조건 없는 기증'
5000개 부재로 귀환 보관…복원 절차 난제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 ‘관월당(観月堂)’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약 5000점의 부재(部材, 구조물의 주요 재료)로 나뉘어 국내로 돌아왔다. 맞배 기와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약 54㎡)의 이 단층(높이 5.1m) 목조건물은 일본의 유명 사찰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에서 국보 ‘가마쿠라 대불’(鎌倉大佛) 뒤쪽에 가려져 있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반환 문제를 놓고 굴곡을 겪다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은 올해 결실을 맺었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밝혔다. 사진은 일본에서 해체 되기 전 관월당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24일 서울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공개회를 열고 전날 고토쿠인의 사토 다카오(佐藤孝雄·62) 주지와 약정을 통해 관월당 부재를 정식으로 양도받았다고 밝혔다. 1924년 조선식산은행이 일본의 기업가 스기노 기세이(杉野喜精·1870~1939, 훗날 야마이치 증권 초대 사장)에게 건물을 증여한 지 101년 만이다. 당시 식산은행은 이 건물을 빚 담보물로 갖고 있었다고 한다.

스기노는 이를 도쿄 메구로(目黑) 자택으로 가져갔다가 신병 치료차 방문한 가마쿠라의 고토쿠인에 기증했다(1934~36년 추정). 고토쿠인은 이곳에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기도처로 활용했다. 관월당은 1990년대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현재 직함)에 의해 존재가 알려지면서 반환 논의가 일었고 2010년 반환 직전까지 갔지만 한·일 관계 교착, 코로나19 등으로 미뤄졌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밝혔다. 사진은 일본에서 관월당 해체 작업 중인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해체되기 전 관월당이 일본 가마쿠라의 사찰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 내에 위치했던 곳을 알려주는 고토쿠인 안내도. 일본 국보 ‘가마쿠라 대불’(鎌倉大佛) 뒤쪽에 자리해 있었다. 고토쿠인 홈페이지 캡처
지난해 6월 관련 협약서가 체결되면서 극비리에 해체 작업이 시작됐다. 그해 11월 기와·석재를 시작으로 지난 5월 목재까지 순차적으로 국내에 반입된 부재들은 경기도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석재·철물 401점, 기와 3457점, 목재 1124점 등 총 4982점에 달한다. 해외로 반출된 건축유산이 건물 통째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과정에서 사토 주지는 건물을 해체하고 부재를 옮기는 비용까지 자비 부담하는 등 사실상 ‘조건 없는 기증’을 했다. 이날 언론간담회에 참석한 사토 주지는 “2002년 주지 취임 때부터 한국에서 온 문화유산이니 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을 때도 있어 돌려보내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밝혔다. 사진 속 왼쪽에서 두번째가 관월당의 소장지였던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의 사토 다카오(佐藤孝雄) 주지. 지난해 국가유산청과 고덕원 간의 ‘관월당 보존관리 상호 교류협력을 위한 협약서' 체결 및 해체 착공식 후 기념사진이다. 사진 국가유산청
게이오대 민족학고고학 교수이기도 한 그는 외교관(주유엔 대사 역임)인 삼촌의 영향 등으로 제국주의와 식민지 문화유산 관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10년 반환 보도(사실상 오보)가 났을 때 일본 우익들로부터 협박 전화도 받았다”는 그는 “관월당은 절취된 것이 아니지만 문화유산의 가치는 역사적 맥락을 뗄 수 없고 승려 입장에서도 고인을 기리는 건물이니 가까운(의미에 맞는) 곳으로 되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기증 배경을 말했다.

나아가 한일 간 문화유산 연구와 학생 교류를 위한 별도 기금을 1억엔(약 10억원)가량 마련해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에 기부하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말 (한국의)계엄 사태 후 불안함이 있었지만 ‘일본은 전략적 파트너’라고 한 (이재명)대통령의 말도 있어 한일 관계가 급속히 경색될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하면서다. 관월당 기증 결심 후 일본 외무성과 일본국 문화청(한국의 국가유산청 역할)과 긴밀하게 소통·협의했고 민간 차원의 기증이라 가마쿠라 대불이 위치한 사적(史蹟) 현상 변경을 문제 삼지 않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어렵사리 돌아오긴 했지만 ‘관월당 미스터리’는 계속된다. 일단 일본에서 불려온 이름인 관월당이 애초 명칭이 아니고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다. 지난해 건물 해체 때 상량문(上樑文·목조 건물의 증개축 기록물)이 나오질 않아 애초에 누굴 위한 사당으로 쓰인 건지도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밝혔다. 사진은 국내 반입된 관월당 부재가 파주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에 보관 중인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밝혔다. 사진은 일본에서 관월당 해체 전 3D 스캔 자료. 사진 국가유산청
한동안 학계에선 경복궁 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날 간담회에서 이경아 서울대 부교수(건축학)는 “당시 지도자료와 북궐도형, 동궐도 등 여러 문헌을 볼 때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궁궐 및 궁가의 17~20세기 건축물과 비교할 때 칠궁(현재 청와대 내 위치한 조선왕실 사당)의 부재 및 의장 격식이 흡사하되 칠궁의 70% 규모라는 점 등에서 대군(大君)급 왕실 사당으로 추정했다.

화려한 단청도 주목할 요소다. 손현숙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전문위원은 “1834년 중건된 창덕궁 통명전과 유사하면서도 19세기 후반 왕실 단청의 특징까지 포함하는 등 여러 시기에 걸쳐 있다”면서 “궁궐 건물이 아니지만 왕실 측이 관리한 사례로 보인다. 단청 양식 연구를 위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봤다.

때문에 부재 상태의 관월당을 언제 어디에 복원할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이경아 교수가 유력하게 지목한 원 소재지 후보는 3곳이다. 현재 열린송현 광장으로 쓰이는 송현동 부지(서울 종로구)와 통의동 일대의 창의궁 터(동양척식은행 사택 터), 과거 월궁이라 불렸던 월성위궁 터다. 이 가운데 송현동 부지는 애초에 순종의 비인 순정효황후 본가 터로 훗날 조선식산은행 사택 터로 쓰였다. 순종의 장인 윤택영은 딸을 태자비로 책봉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빚을 져 ‘채무왕’이란 별명까지 얻었는데 이 과정에서 관월당 건물이 담보로 잡혔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일본으로 반출된 지 약 100년 만에 국내로 돌아왔다고 24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이 밝혔다. 사진은 6월23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관월당’ 부재를 한국으로 정식 양도하는 기증약정서에 서명후 기념촬영하는 관계자들 모습. 사진 국가유산청

24일 관월당의 국내 귀환과 관련한 언론공개회 후 별도 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사토 다카오(佐藤孝雄·62) 고토쿠인(高德院·고덕원) 주지. 사진 국가유산청
문제는 송현동 부지엔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는 ‘이건희 기증관’(가칭)이 예정돼 있고, 다른 후보지 역시 이미 건물이 들어섰거나 소유주가 있어 원형 복원이 쉽지 않단 점이다.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머문 운현궁의 사랑채로 알려진 아재당(我在堂)이 해체 20년 만에 파주에 다시 세워진 것과 유사하게 진행될 수 있다.

국가유산청 유산정책국의 박형빈 국외유산협력과장은 “부재 상태에서 단청이나 내부 구조 등 연구를 계속할 것이고 원 소재지가 명확히 확인되면 좋겠지만 안 될 경우 귀환 유산으로서 임시로 이건(건축물을 옮김)하는 것도 고려한다”고 밝혔다. 사토 주지는 “이건이 성공하면 한일 관계 복원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관월당이 있던 자리엔 관음상을 모실 새로운 시설을 지으면서 자료관을 포함시켜 관월당의 역사도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관월당의 귀환은 문화유산을 매개로 하는 국가 간의 신뢰와 공감이 이루어낸 상징적 사례”라면서 “역사적 가치를 공유할 활용과 복원 방법 등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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