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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통화 녹음 파일이 유출됐다. 통화는 15일에 이뤄진 것으로, 국경 분쟁 상황에 대한 대화였지만 패통탄 총리의 일부 발언이 파문을 낳았다.(사진은 KBS의 관련 기사 내 통화 내용 배경 그래픽 이미지)

■ "삼촌"이라 부르며 자국군 지휘관 비판한 태국 총리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와 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의 통화는 지난 15일에 이뤄졌습니다. 패통탄 총리가 최근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두 나라 간 국경 분쟁 상황을 해결해 보기 위해 훈 센 전 총리에게 전화를 먼저 전화를 건 겁니다.

이 통화는 "Can you hear me, uncle? (삼촌 들리나요?)"로 시작됩니다. (나머지 대화는 통역을 두고 태국어와 캄보디아어로 진행됩니다.) 패통탄 총리의 아버지 탁신 전 총리와 훈 센 전 총리는 30년 넘게 막역하게 지내온 사이입니다. 그래서 '삼촌'이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듯 통화 내내 수차례에 걸쳐 등장합니다.

그리고 대화 초반, 태국 정가를 발칵 뒤집은 문제의 발언이 나옵니다.

"'삼촌'이 2군 사령관처럼 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멋지게 보이고 싶어 해요"
"그가 하는 말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여기서 '2군 사령관'은 캄보디아와 접한 국경 지역을 지키고 있는 분씬 팟깡 태국군 제2사령관으로, 지난달 말 두 나라 부대가 소규모 총격전을 벌인 직후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며 강경 대응을 촉구한 인물입니다. 태국 현직 총리가 국경 분쟁 상대국 실권자에게 자국군 지휘관을 '반대편'이라며 비판한 겁니다.

지난 19일 태국 방콕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대가 패통탄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집회를 요구하고 있다.(사진 출처 : 방콕포스트)

■ 태국 정가 '발칵'…쿠데타 가능성까지 거론

이 통화 녹음이 공개되자, 태국 정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태국 정부는 패통탄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 프아타이당과 함께 10여 개 정당이 연립 정부를 이루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제2당인 품짜이타이당이 연정 탈퇴를 선언한 겁니다.

그나마 민주당과 차트타이파타나당 등 다른 여권 정당들이 연정을 유지하겠다고 밝혀 하원 의회 과반은 유지하고 있지만 추가로 탈퇴 정당이 나온다면 연립정부가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제1야당인 국민당은 '의회 해산'을 요구하며 패통탄 총리의 책임 있는 대응을 촉구했고, 급기야는 상원의장이 헌법재판소에 패통탄 총리의 탄핵을 요청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패통탄 총리, 결국 대국민 기자회견을 열어 "캄보디아 지도자와의 대화 녹음이 유출되어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녹음 파일이 유출된 캄보디아 측에 강한 유감을 표하고, 앞으로 개인적인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태국 외교부도 주태국 캄보디아 대사를 초치해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지난 19일, 패통탄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통화 녹음 유출 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사진 출처 : 방콕 포스트)

문제는 쿠데타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 전환 이후 지금까지 모두 19차례나 쿠데타가 발생해 12차례 쿠데타 세력이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쿠데타는 2014년이었습니다. 그래서 정치권은 군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왔는데, 자국군 사령관을 비판하는 태국 총리의 발언이 나온 겁니다.

여기에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 간 국경 분쟁 대응 방식을 두고, 정부보다 군을 신뢰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온 상황입니다. 일단 태국 육군 총사령관은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밝혔지만, 아직 불씨는 남아 있습니다.

패통탄 총리는 사과 기자회견 직후 국경 지대로 날아가 분씻 팟깡 제2사령관을 만나는 등 군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패통탄 총리가 지난 20일, 국경 지대를 방문해 분씻 팟깡 제2사령관을 만났다. 가운데 흰색 점포 차림이 패통탄 총리, 바로 뒤 오른쪽에서 따르는 이가 분씻 사령관.(사진 출처:방콕포스트)

■ 누가 유출했나…훈 센 "80여 명과 공유"

통화 녹음이 캄보디아 쪽에서 유출된 건 명확해 보입니다. 온라인에 공개돼 파문이 일어난 직후, 훈 센 전 총리는 SNS를 통해 패통탄 총리와의 통화를 녹음했고, 이를 약 80명의 캄보디아 인사들과 공유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관례에 따라 오해를 피하기 위해 녹음을 해야 했고, 당 상임위원회 위원, 국회팀, 외교팀, 국경 문제 관계자, 군 관계자 등 약 80명과 공유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총 17분 6초 동안 대화를 했는데 공개된 건 9분 정도, 필요하다면 모두 공개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하루 뒤 전체 녹음 파일을 SNS에 올렸습니다.

훈 센 전 총리가 페이스북을 통해 패통탄 총리와의 통화 녹음 파일을 80여 명과 공유했다면서 누가 유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사진 출처 : 훈 센 전 총리 페이스북 계정)

훈 센 전 총리가 녹음 파일을 공유한 관계자 가운데 누군가가 실제로 온라인상에 '유출'한 것이 유력해 보입니다. 하지만 첫 '유출' 당사자는 훈 센 전 총리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입니다.

훈 센 전 총리는 38년 동안 캄보디아를 철권 통치한 독재자로, 2023년에 아들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넘겨준 뒤 자신은 상원의장으로 앉아 '상왕' 역할을 하는 노회한 정치인입니다. 국경 분쟁 상대국의 총리와의 통화 녹음을 '공유'한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진 않았을 겁니다.

태국과 캄보디아를 오가는 국경 검문소에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두 나라는 번갈아 가며 국경 검문소를 폐쇄하고 있다.(사진 출처 : 캄보디아 크메르타임스)

■ 번갈아 가며 '검문소 폐쇄'…긴장 감도는 국경 지역

두 나라 간 국경 분쟁은 지난달 28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새벽 5시 30분 쯤, 캄보디아와 접한 태국 북동부 우본라차타니주 남위안 지역 국경 지대에서 양국 군부대 사이에 총격전이 발생했습니다. 약 10분간 이어진 교전으로 캄보디아군 1명이 숨졌습니다. 일촉즉발 상황이었지만 두 나라 군 당국이 직접 만나 '평화적 해결'을 약속하고 역시 두 나라 총리도 '신속한 해결'을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 국경 부대가 각각 병력을 늘리고, 무기도 재배치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졌습니다. 또 태국은 캄보디아로 공급하던 전기와 인터넷을 일부 끊고 국경 검문소도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그러자 캄보디아에선 태국산 영화와 드라마 시청을 금지하고 과일과 채소류 반입을 통제했습니다.

이처럼 '신경전'만 지속되던 두 나라 갈등, 이번 통화 녹음 유출 사태로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캄보디아 총리는 22일 SNS를 통해 '자정(23일 0시)을 기해 태국으로부터의 모든 연료와 가스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두 나라 간 국경 검문소 폐쇄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경제적 제재' 수준에서 갈등이 지속되고 있지만 언제든 '물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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