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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 긴장 이상증을 극복하고 건강 되찾은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 지난 10일 서울 청계천에서 달리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어, 저기 이봉주 아니야?”, “죽었다고 하던데….”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55)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청계천 가로 내려갈 때 지나던 시민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다. “이봉주가 심하게 아팠다”는 것만 알고, 최근에 회복됐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이들의 반응이다. “이제 완전히 좋아지셨네” 하며, 사인을 받아가는 이도 있었다.

‘봉달이(선수 시절 정봉수 감독이 지어준 애칭)’ 이봉주가 건강한 몸으로 돌아왔다. 4년 전 근육 긴장 이상증을 앓기 시작해 2년 전 심했을 때는 거북 목처럼 굽었던 그가 꾸준한 재활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이제 곧은 자세로 걷고 달리는 데 문제없다고 했다. “체중이 불어나 풀코스는 어렵지만, 5㎞나 10㎞는 탈 없이 달릴 수 있습니다.”

근육 긴장 이상증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이 굳는 병이다. 증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이봉주는 배 근육이 땅겨지는 것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자세가 구부정해질 수밖에 없었고, 목이 점점 구부러져 땅바닥을 향할 정도였다. 어깨 등 척추까지 이상이 생겨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지 못했다. 당시 이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회복이 힘들겠다’고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봉주의 경우 ‘마라톤 후유증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지만, 원인은 확실치 않다고 한다.
2년 전 근육 긴장 이상증이 가장 심했을 때 이봉주의 모습. 사진은 당시 수원 자택에서 아내가 촬영했다. 사진 이봉주
“배가 너무 당겨지니까 처음엔 배에 보톡스를 넣어보기도 하고, 신경차단 시술을 해보기도 했는데 효과가 없었어요. 2년 전에는 한 대학병원에서 척수 지주막낭종을 제거하면 등이 펴질 수 있다고 해서 등을 엄청 째서 수술했는데, 그러고 나서 목이 더 심하게 굽는 거예요. 아내는 말렸는데, 제 고집으로 수술한 거라 (아내한테) 많이 혼났죠.”

이후 경기도 수원 자택에서 재활에 매진했다. 다행히 통증은 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내의 손 마사지와 함께 지압 침대, 재활클리닉에서 운동을 병행했다. 매일 손으로 주무르고 자동으로 지압이 되는 침대에 누워 등과 어깨 근육을 풀어줬다. 재활클리닉에선 짐볼이나 기구를 이용해 등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운동을 꾸준히 했다.

가장 효과를 본 건 집 근처 매미산(158m) 걷기라고 말했다.
“아프다고 누워있지 않고 계속 움직였어요. 처음엔 지팡이를 짚고, 나중엔 스틱을 짚고 걸었어요.”
그의 스틱은 골프 드라이버의 헤드를 제거해 만든 것이다. 등산스틱보다 더 가벼워 좋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매일 오전 5시(겨울엔 6시) 매미산 걷기에 나선다. 용인시 서천동 농서근린공원에서 시작해 매미산(158m)과 아람산(143m)을 거쳐 경희대 국제캠퍼스로 내려오는 8㎞ 코스다. 트레일(trail, 비포장 길)이 95% 이상 흙길로 특히 맨발로 걷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이 길을 공복 상태로 2시간 빠르게 걷고, 집에 와서 아내가 해준 상추 무침, 겉절이 등 채소 위주로 식사한다.
비가 제법 내린 지난 21일 이봉주가 경기도 수원시 집 근처 매미산 산책로를 걷고 있다. 각각 색깔이 다른 스틱은 골프 드라이버의 헤드를 제거해 그가 만든 것이다. 김영주 기자
매미산은 이봉주가 삼성전자 육상팀 소속이던 25년 전부터 그의 보금자리였다. 서울에서 매미산으로 이사 온 것도 매미산 아래 합숙훈련장이 있어서다. 매미산 크로스컨트리로 몸을 다진 그는 2000년 도쿄국제마톤에서 한국신기록(2시간7분20초)을 수립했고, 이듬해 보스톤마라톤(2시간9분43초)에서 한국인으로 세번째(1947년 서윤복, 1950년 함기용) 우승을 거머쥐었다. 25년 전 도쿄에서 세운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건강을 되찾은 이봉주는 “남은 인생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뛰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몸이 아프기 전에도 척수 환자를 위한 자선 마라톤에 참여했고, 마라톤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등 재능 기부에 나섰다. “죽다 살아난” 이후엔 달리기 전도사가 되겠다고 했다.

마침 한국은 러닝 열풍이다. 마라톤 하프·풀 코스를 뛰는 대회는 물론이고, 5·10㎞ 건강달리기 대회에도 남녀노소 참가자가 넘친다. 로드뿐만 아니라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만 해도 수십 군데가 생겼다.
이봉주는 재활 후 첫 마라톤으로 오는 11월 베트남 하롱베이국제마라톤에 나간다. 롯데관광은 '이봉주와 함께 하는 하롱베이 마라톤'을 통해 일반인 참가자를 모집한다. 장진영 기자
이봉주의 재활 후 첫 번째 달리기는 오는 11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하롱베이국제마라톤 마즈터스 출전이다. 5㎞ 또는 10㎞를 뛸 계획이다. 롯데관광에서 ‘이봉주와 함께 하는 하롱베이 마라톤’ 3박 5일 여행을 내놓았다. 마라톤(풀·하프·10㎞·5㎞) 참여 후 이봉주의 ‘인생 달리기’ 강연이 이어진다. 롯데관광 관계자는 “한국에서 1000여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kim.youngju1@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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