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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6시 12분쯤 전북 남원시 도통동 한 교차로 인근 횡단보도 앞 인도에서 가로 2m·세로 2.5~3m·깊이 1.5~2m 땅 꺼짐(싱크홀) 사고가 발생해 이 길을 지나던 박모(46)씨가 추락해 다쳤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사진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


보도블록 와르르…키 185㎝ 40대 추락
전북 전주에 사는 직장인 박모(46)씨는 지난 21일 아내(40대)와 초등학교 4학년 아들(10)과 함께 80대 노부모가 사는 남원을 찾았다가 날벼락 같은 일을 당했다. 이날 오후 6시 12분쯤 아버지 89세 생일을 맞아 도통동 갈빗집에서 온 가족이 저녁을 먹고 나오던 중 가게 앞 횡단보도와 이어진 인도에서 가로 2m·세로 2.5~3m·깊이 1.5~2m 규모의 땅 꺼짐(싱크홀) 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사람이 붐비는 도심 한복판 교차로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면서 키 185㎝, 몸무게 80㎏ 안팎인 박씨는 순식간에 땅 밑으로 추락했다. 사고 지점에서 2~3m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아내와 아들 눈앞에서 가장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보도블록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 데다 사고 현장 주변까지 인도가 기울어진 탓에 박씨 아내는 아들을 부둥켜안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고 한다.

지난 21일 남원에서 발생한 땅 꺼짐(싱크홀) 사고로 다친 박모(46)씨. 인도가 2m 아래로 무너지면서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다리 피부가 벗겨지고 파여 피가 나고 있다. 사진 박씨
지난 21일 남원에서 발생한 땅 꺼짐(싱크홀) 사고로 다친 박모(46)씨. 인도가 2m 아래로 무너지면서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다리 피부가 벗겨지고 파여 피가 나고 있다. 사진 박씨


박씨 “89세 아버지 생신…저녁식사 후 날벼락”
박씨는 23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비가 와서 우산을 받친 채 부모님을 먼저 식당 인근 골목에 주차한 승용차에 태워드린 뒤 다시 아들과 아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다 땅이 갑자기 꺼지면서 밑으로 ‘붕’ 떨어졌다”며 “인도가 내려앉기 전 그 위치에 있던 아내와 아들이 다칠 뻔한 상황이었다. 몇 분 차이로 사고를 피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 당일 남원엔 호우특보가 내려졌다. 전주기상지청에 따르면 20~21일 남원 누적 강수량은 176.3㎜를 기록했다. 21일 하루에만 174.9㎜의 비가 쏟아졌다.

박씨는 “바닥에 떨어졌을 때 계곡에서 불어난 물이 세차게 흘러내리는 것처럼 흙탕물이 토사와 함께 마구 쏟아졌다”며 “사고 당시 아내 것까지 휴대전화 2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손에 들고 있던 아내 전화기는 날아가고 바지 뒷주머니에 있던 내 휴대전화와 지갑도 없어졌다. 시계도 풀렸다. ‘휴대전화부터 찾자’는 마음에 3~4분간 손으로 바닥에 쌓인 흙을 헤집어 휴대전화는 겨우 찾았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오후 6시 12분쯤 전북 남원시 도통동 한 교차로 인근 횡단보도 앞 인도에서 발생한 '땅 꺼짐(싱크홀)' 사고로 생긴 구멍. 사고 직후 시민 도움으로 싱크홀에서 빠져 나온 박모(46)씨가 직접 찍었다. 사진 박씨


“50대 시민이 손 내밀어줘…벽 타고 올라와”
박씨를 구해준 건 일면식도 없던 한 시민이었다. 그는 “(싱크홀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서서 손을 뻗어야 (인도) 위가 간신히 닿을 깊이였다”며 “50대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도로변 횡단보도 쪽에서 손을 내밀어 줘 그 손을 잡고 지반이 단단해 보이는 벽을 타고 다리를 인도에 걸쳐 (지상으로) 올라왔다. 그분께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이 사고로 박씨는 팔과 다리 등을 다쳤다. 왼쪽 다리 일부가 파이고 찢어져 봉합 수술을 받았다. 왼쪽 팔꿈치 살갗이 벗겨지고 허리 통증도 있지만, 다행히 뼈가 부러지진 않았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소방본부에 따르면 박씨는 사고 직후 현장에 도착한 119구급차를 타고 남원의료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퇴원한 상태다.

박씨는 “병원 측에서 ‘(환자가) 키가 크고 피지컬(체격)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키가 작거나 (바닥이) 0.5~1m만 더 깊고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큰 부상을 당하거나 숨질 수도 있었다’고 한다”며 “말 그대로 운이 좋아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린 아들이 엄청 놀라 병원에 입원해서도 일부러 괜찮은 척했지만, (관리 주체인) 공무원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본다”며 “가장으로서 몸이 소중한 사람인데 밥줄이 끊길 뻔했다”고 했다.

지난 22일 남원시가 전날 싱크홀 사고가 발생한 도통동 한 식당 앞에서 굴착기와 인력 등을 동원해 응급 복구 작업 중이다. 사진 박씨


남원시 “통신 시설물에 노후 배수관 손상된 듯”
남원시는 사고 직후 하수시설 담당 부서 직원 등 인력 8명과 굴착기 2대, 덤프트럭 1대, 준설차 1대를 현장에 투입해 응급 복구에 나섰다. 사고 현장 지하에 고인 물을 모두 흡입, 노후한 관로를 교체하고 토사를 메운 뒤 그 위에 철판을 덮는 작업이다. 주변에 지장물이 있는 데다 추가 침하 우려도 있어서 인도·도로 포장을 포함한 완전한 원상 복구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남원시는 전했다.

남원시는 이번 사고가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반에 설치된 통신 관련 시설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원시 상하수도사업소 관계자는 “굴이 생긴 교차로 지하에 통신·상하수도·가스 관련 시설물이 많다”며 “이 중 통신 시설물 때문에 과거에 설치해 놓은 우수(빗물)나 오수(구정물) 관로가 손상을 입어 그쪽을 통해 토사가 유출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고 현장을 파보니 언제 싱크홀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노후된 부분이 확인됐다”며 “매년 정기적으로 지하 시설물과 지반 탐사 등을 하지만, 제한된 예산과 내구연한 등을 고려해 상습적으로 문제가 확인된 구간 위주로 관리하다 보니 육안으로 드러나기 전엔 (싱크홀 사고를) 예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시설물이 지하에 거미줄처럼 퍼져 있어 시내를 모두 뒤엎고 전수 조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남원경찰서 관계자는 “일단 사고 경위를 파악한 다음 남원시의 업무상 과실 여부나 시공사·하청업체 등에 대한 관리·감독 부실이 있었는지는 나중에 판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편 국토부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전국에서 지반 침하 사고는 867건 발생했다. 지반 침하는 면적 1㎡ 또는 깊이 1m로 땅이 내려앉는 사고를 말한다. 일반 지반 침하 사고의 57%가 상·하수관 손상 등 땅속 매설물 손상 때문에 벌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21일 '남원 싱크홀 사고'로 팔다리 등을 다친 박모(46)씨가 사고 당일 남원의료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은 모습. 사진 박씨
응급 치료를 받은 '남원 싱크홀 사고' 피해자 박모(46)씨. 사진 박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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