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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에서 지난 16일 만난 선재부 소속 이재석 과장(55)이 지난해 11월 가동을 멈춘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8년부터 이곳에서 36년간 근무했다. 포스코 제공


“오랜 벗을 잃은 기분이죠. 외환위기도 함께 넘긴 동반자였는데….”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에서 지난 16일 만난 선재부 소속 이재석 과장(55)이 쇳소리가 멎은 압연설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1978년부터 45년간 뜨거운 열기를 쉼 없이 뿜어내며 2800만t의 선재 제품을 생산해 낸 이곳은 지난해 11월 가동을 멈췄다. 글로벌 철강 공급 과잉과 중국의 저가 철강재 공세 등으로 수익성이 날로 악화하면서다. 1968년 포스코 창립 이래 경영난으로 공장이 폐쇄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평생을 함께한, 산업의 쌀이라 불렸던 제철소가 식어가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다”며 “건너 있는 현대제철의 무기한 휴업이 남의 얘기가 아닌 것 같아 걱정이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철의 도시’ 포항이 불황의 터널에 갇혀 전례 없는 위기를 맞고있다.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중국의 저가 공세,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얻어맞으며 빈사 상태에 놓였다.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에서 지난 16일 만난 선재부 소속 이재석 과장(55)이 지난해 11월 가동을 멈춘 공장을 바라보고 있다. 이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988년부터 이곳에서 36년간 근무했다. 포스코 제공


‘경기침체·중국 저가 공세·관세폭탄’에 휴·폐업 내몰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23일부터 외국산 철강을 사용한 냉장고·세탁기·건조기 등 가전제품 7종에 50% 고율 관세를 적용을 예고했다. 외국산 철강 관세를 25%에서 50%로 인상한 지 19일 만이다. 미국 가전 시장 1, 2위인 LG전자와 삼성전자에 ‘미국산 철강’을 쓰도록 압박한 것이다.

국내 철강업체는 지난해까지 이어진 고금리와 경기 침체, 중국발 저가 공세 등으로 역대급 불황을 겪었다. 올들어 미국발 관세 폭탄까지 이어지자 국내 굴지의 기업도 ‘휴·폐업’에 내몰리고 있다.

현대제철 포항2공장은 지난 7일부터 ‘무기한 휴업’에 돌입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축소 운영을 해온 지 7개월 만이다. 중장비용 무한궤도를 생산하는 ‘중기사업부’도 내년을 목표로 매각 절차에 돌입했다. 이 사업부는 지난해 판매량이 2021년 대비 65% 이상 급감했다.

국내 1위 철강기업 포스코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포스코는 이미 지난해 1제강공장과 1선재공장을 잇따라 폐쇄했다. 포항제철소의 지난 4월 조강(쇳물) 생산량은 88만8000t으로, 고로가 정상 가동됐던 2023년 동기(125만7000t) 대비 30% 감소했다. 업계 3위인 동국제강도 창사 이래 처음으로 인천 철근 공장 가동 중단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해 포스코홀딩스의 철강 부문 영업이익은 1조6370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감소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은 각각 80%, 47% 감소했다. 미국은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국으로,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철강 수출의 13%가 미국으로 향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50% 관세로 인해)한국산 중저가 제품이 미국산 고급 제품보다도 비싸지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가격경쟁력 상실로 인해 사실상 미국 수출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포항의 명동이라 불리는 포항시 북구 대흥동 중앙상가에 지난 17일 임대 안내문이 붙어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중앙상가의 집합상가 공실률은 최대 40%로 전국평균(10.3%)을 크게 웃돈다. 김현수 기자


“미국 러스트벨트처럼 몰락할수도”

포항산업단지 인근의 중소 철강업체들도 고사 위기에 놓였다. 대기업들의 생산량 축소와 설비 투자 중단이 이어지며 일감이 줄어 경영난에 빠졌다.

경북도는 지난 17일 포항국가산단 공장가동률이 76%로 떨어졌다며 ‘비상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포항국가산단의 지난해 2분기 가동률은 93.1%이다. 불과 3분기 만에 가동률이 17%포인트 급감한 것이다.

포항상공회의소가 지난 2월 지역 86곳의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채용실태조사에서도 절반 이상인 53.5%가 올해 채용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지역 1차 철강 제조업의 고용보험 피보험자 수도 지난 4월 2만7795명으로 23년 12월보다 3.6% 줄었다. 철강산업 위기로 지역경제 전반에 고용 위축 현상마저 발생했다.

포항의 명동이라 불리는 중앙상가 공실률은 최대 40%에 육박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포항지역 소규모상가, 중대형상가, 집합상가 공실률은 각각 16%, 34.9%, 39%다. 이는 전국 평균(7.25%·13.2%·10.3%)을 크게 웃돈다.

포항시 관계자는 “포항은 철강산업 의존도가 80%에 달하는 지역”이라며 “미국의 러스트벨트처럼 도시가 몰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모든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 관세 부과를 시작한 가운데 지난 3월 12일 경기 평택시 평택항에 철강 제품이 쌓여 있다. 권도현 기자


철강업계 “국가 차원 대책 마련 시급”

철강산업은 국내 제조업 생산의 6.7%, 수출의 5.6%를 차지하는 국가기간산업이다. 이에 철강산업 위기를 단기적인 침체로 볼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산업 위기로 인식하고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US스틸 인수’를 반대해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설득해 마침내 지난 13일 동의 행정명령 서명을 끌어냈다. 철강을 단순한 민간 경쟁의 영역이 아닌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공동으로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총 8조5000억원을 투자해 제철소를 건설할 계획이지만, 상업 생산 목표는 2029년이다. 일본이 US스틸 인수로 인해 즉각 미국 현지 생산이 가능한 것과 비교하면 경쟁에 뒤쳐질 우려가 있다.

영국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철강 관세를 기존 50%에서 25%로 낮추기로 한반면 한국은 관세 협상에서도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정부와 국회에 ‘철강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을 비롯해 ‘전기료 인하’ ‘국산 철강 사용 확대 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특별별 등을 통해 철강업도 AI·반도체처럼 보호·육성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며 “한국이 아무 대응 없이 버틴다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소외되고 산업 기반을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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