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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 상태 혼란에 식품기업 줄줄이 가격 인상
가공식품 73개 품목 가운데 상승 품목 52개 달해
8일 서울 시내 마트에서 소비자들이 고추장을 고르고 있다./사진=한국경제신문


작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이어진 식품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6개월간 이어진 사실상 무정부 상태를 틈타 가격을 인상했다는 지적이다. 기업들과 농림축산식품부는 다양한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비판여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은 정치적 혼란 해소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은밀하게 치솟은 살인적 먹거리 물가를 마주하고 있다. 라면, 인스턴트 커피 같은 가공식품부터 식탁의 기본인 계란까지 대부분의 품목 가격이 뛰었다.

가공식품 가격은 대통령이 주목할 정도로 눈에 띄게 올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5월 가공식품 73개 품목 가운데 계엄사태 직전인 지난해 11월 대비 물가지수가 상승한 품목은 52개였다. 10개 중 7개꼴이다. 6개월 동안 가격이 5% 이상 오른 품목은 19개나 된다.

통계청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가공식품 물가의 작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4.1%로 계엄 사태 이전인 지난해 11월 1.3%의 세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다섯 달 만에 1%대(1.9%)로 내려온 전체 소비자물가와도 비교된다.

하락세를 보이는 국제유가와 안정적 환율 흐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치솟았다. 대외변수 반영에는 시차가 있다지만 정작 외부 요인이 안정된 이후 소비자 가격을 인하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의 눈치를 보며 가격 인상을 자제해온 기업들이 권력 공백기에 집중적으로 가격을 인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가공식품 가격 인상 릴레이오뚜기는 올 상반기 3개월 사이 네 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 2월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컵밥 덮밥 7종 가격을 600원씩 올리고 3월에는 대형마트 후추와 식초 가격을 인상했다. 지난 4월 대표 제품 진라면을 10% 올리는 등 16개 라면 제품을 인상했으며 편의점 판매 3분 카레와 짜장 제품을 14% 올렸다.

농심은 지난 3월 신라면과 새우깡 등 17종을 7.2% 올린데 이어 6월 들어 스프 가격도 인상했다. 특히 보노스프 4종의 10% 인상은 조용히 진행했다. 라면과 스낵의 경우 2023년 7월 인하했던 가격을 이전 수준으로 되돌렸다는 분석이다.

동서식품은 최근 맥심 모카골드, 카누 아메리카노 등 인스턴트 원두커피 가격을 평균 9% 올렸다. 지난해 11월 8.9% 인상에 이어 6개월 만에 또 가격을 올린 것이다.

롯데웰푸드도 과자와 아이스크림 수십 개를 8개월 새 두 차례 가격을 인상했다. 일부 초콜릿 제품은 42%나 올렸다. 빼빼로 가격은 2000원이 됐다.

남양유업 역시 세 차례 인상했다. 2월에는 프렌치카페 믹스 가격을 14.9%, 4월에는 초코에몽 가격을 14.3%, 5월에는 혼합차 브랜드 17차를 10% 올렸다.

빙그레는 지난 5월 요플레·닥터캡슐 등 주요 발효유 제품의 출고가를 인상했다. 요플레 오리지널 멀티(4개입)가 5.3%, 닥터캡슐이 4.0% 올랐다. 지난 3월 더위사냥과 붕어싸만코 등 아이스크림과 커피, 과채음료 제품 가격을 먼저 인상했다가 2개월 만에 다른 제품 가격 인상에 나선 것이다.

팔도는 지난 4월 팔도비빔면(4.5%), 왕뚜껑(7.1%), 남자라면(6.4%)의 가격을 올렸다. 음료 부문에서는 비락식혜 캔(238mL)이 1200원에서 1300원(8.3%), 1.5L 제품이 4500원에서 4700원(4.4%)으로 인상됐다.

대상은 올해 1월 드레싱류 가격을 23.4% 올리고 후추는 19% 인상했다.

오비맥주도 4월 카스와 한맥 등 주요 맥주 제품의 공장 출고가격을 평균 2.9% 인상한 바 있다. 하이트진로는 테라와 켈리 등 맥주 출고가를 평균 2.7% 인상했다.

이외에도 지난 1월부터 6월 사이 동아오츠카가 주요 제품을 일제히 올렸다. 인상률은 6.3%였다. 매일유업도 51개 제품 평균 8.9%, LG생활건강은 5.5% 올렸다.


원재료 가격, 명분 되나식품업계에서는 가격 인상의 주된 명분으로 오른 원재료 가격을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원재료 가격 흐름을 살펴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라면, 과자 등 각종 가공식품 원재료 물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식량가격지수는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이 지수는 2014~2016년 평균을 100으로 잡아 비교하는 수치다.

세계 곡물가격지수는 지난해 11월 111.4에서 올해 5월 109.0으로 6개월간 2.2% 하락했다. 유지류 가격 역시 164.1에서 152.2로 7.3% 내려갔다.

설탕 가격도 126.4에서 109.4로 13.4% 급락했다. 설탕의 가격지수는 2월이 118.5로 가장 높았는데 이마저도 2024년 10월 129.6보다 낮은 수치다.

유제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년 10월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낮은 가격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가공식품의 가격은 치솟았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에 따르면 2023년 라면의 주요 원재료인 원맥 가격은 전년 대비 13.1% 하락했고 2024년 역시 11.6% 떨어졌다. 올해 1~4월 원맥 평균 가격은 작년 동기보다 0.7% 올랐다. 이 기간 원맥 가격은 2022년과 비교해 22.6% 하락했지만 신라면·삼양라면·진라면 한 봉 평균 가격은 오히려 7.4% 비싸졌다. 올해 1~4월 대두 평균 가격도 작년 동기보다 12.5% 올랐지만 2022년과 비교하면 41.3% 하락한 수치다.

협의회는 “라면의 주 원재료인 소맥분 가격은 하락했으나 2022년 5월 대비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 5월 14.2% 상승했고 같은 기간 빵 물가지수도 19.4% 올랐다”며 “가공 식품사들이 원재료 가격 하락에도 가격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커피와 초콜릿은 원두와 코코아 가격이 상승하면서 업계 전체에 가격 압박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상의 근거가 분명한 셈이다. 그러나 일부 기업의 인상 시기와 폭을 두고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상반기 롯데웰푸드는 코코아 가격 폭등에 따른 제과, 초콜릿 등 인상을 단행하려다 정부의 요청에 계획을 연기한 바 있다. 코코아 가격은 꾸준히 올랐는데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을 떠넘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무정부 시기에 택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커피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원두 가격 급등이다. 원두 주요 생산국인 브라질이 최근 이상고온 현상으로 재배 면적이 줄고 베트남은 폭우로 작황이 나빠졌다.

동서식품은 인스턴트 커피 가격을 대선 나흘 전에 평균 9% 올렸다. 6개월간 두 차례의 가격 인상으로 맥심 커피믹스 가격은 거의 20% 뛰었다.



이 같은 물가상승과 관련, 정부가 식품, 외식 가격의 원가를 공개해 물가 잡기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6월 13일 열린 ‘밥상 물가 안정 경청 간담회’에서 “식품, 외식 가격 정보를 소비자가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보 공개 범위를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유통 과정이 불분명하거나 불투명한 품목들에 대해서는 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경비즈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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