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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고발 반려제 폐지 1년 6개월 부작용 여전
민사 사건 협박차 고소 뒤 출석 요구엔 '무응답'
"경찰 업무 확대 기조 속… 제도 개선 논의해야"
게티이미지뱅크


고소·고발권을 보장한다는 취지로 고소·고발 반려제가 폐지된 지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일선 경찰들 사이에서 부작용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수사·기소 분리 기조 속 경찰 권한 구조에 큰 변화가 예고되는 상황에서 고소·고발 반려제 폐지에 따른 대안도 논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경찰청에 따르면 일선 경찰서 접수 사건(고소·고발·진정 등)은 △2021년 223만8,160건 △2022년 230만7,000건 △2023년 250만8,140건 △2024년 288만4,300건으로 증가 추세다. 특히 2024년은 전년 대비 15%가량 늘어 더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2023년 11월 법무부 수사준칙 개정에 따라 고소·고발 반려제가 폐지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전과 달리 경찰은 고소·고발·진정 사건을 반려할 수 없고, 일단 모두 접수해야 한다.

연도별 경찰서 사건 접수 현황. 그래픽=김대훈 기자


더 큰 문제는 반려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다. 민사 소송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형사 고소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일선서 수사관 A씨는 "사건을 접수하면 무조건 접수증을 끊어주니 상대를 압박하기 위해 고소·고발을 하는 것"이라며 "사건을 접수한 당사자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 걸 알고 있어 정작 출석 요구엔 응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온라인 파일공유 프로그램을 활용해 '합의금 장사'로 돈벌이를 하는 행태도 생겨났다. 다운로드를 위해 링크를 누르면 업로드도 동시에 이뤄지는데, 업로드는 저작권법 위반이라는 걸 일부 소규모 영화 제작사 등 저작권자가 악용하는 것이다. 다른 일선서 수사관 B씨는 "온라인 파일공유 링크에 자주 접속하는 사람들을 고소해 취하를 대가로 합의금 150만 원가량을 받아내는 고소인이 있다"며 "제작비가 5,000만 원 미만인 영화에서 이런 수법이 횡행하는데, 40명에게 합의금을 받아도 본전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 소속 경찰서 수사과에 접수된 사건 중 3분의 1 이상은 특정 인물이 합의금을 목적으로 고소한 건인데 그 수가 2,000건에 달한다고 한다.

황당 사건이 들어오기도 한다. A씨는 "가수 제니가 본인을 사칭한다는 진정이 최근 접수돼 피해자를 만나 진술조서 작성까지 마쳤다"고 한숨을 쉬었다. B씨도 "전파를 이용한 살인무기의 존재를 주장하던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반박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있었다"며 "고소인을 불러 '살인무기의 작동 원리는 뭔가요' 등을 물었던 적이 있다"고 허탈해했다. 수사 인력은 한정된 만큼 이런 질 낮은 사건 비중이 높아지면 정작 수사력을 집중해야 할 사건은 등한시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게 된다.

일선 경찰관들도 고통을 토로한다. 지난해 7월 서울 관악경찰서 통합수사팀에 근무하던 한 경위가 숨진 채 발견됐는데 고인은 사망 전 동료에게 '(맡은) 사건이 50개, 보완까지 53개. 죽을 것 같다'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하루에 (사건을) 1.5개는 종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모든 사건을 모자람 없이 수사할 수 있겠냐' '수사관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만들어줘야 하는데, 쥐어짜고만 있다'고 한탄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온다. A씨는 "과거엔 수사부서 인사 폭이 크지 않았는데, 반려제 폐지 이후 30%가량이 기동대, 지구대 등으로 이동한다"며 "3년 이상은 같은 부서에 근무해야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데 인원이 계속 바뀌니 업무 능력은 더 저하된다"고 전했다.

지난해 7월 서울 관악경찰서 앞에 사망한 동료 경찰관을 추모하는 근조 화환이 놓여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제공


전문가들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한민경 경찰대 범죄학과 교수는 "합의금 장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반복적인 사건 접수에 비용을 부담시키거나, 개인이 한 번에 접수할 수 있는 사건 수를 제한하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습적 고소·고발의 경우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사건을 병합하는 등 간소화 절차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짚었다. 이어 "수사권 조정 후 경찰 업무 확대는 불가피한 만큼, 근본적으로 모든 갈등을 형사 사법 절차로 해결하려는 '일상의 사법화'도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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