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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철 사회부국장
2년 전쯤, 서울중앙지검의 일부 특수부 검사들이 종일 신문만 읽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당시 취재기자들 얘기로는 검사들이 한가해서가 아니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뭉갰다는 소문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어 보이는 기사를 추리는 중이었다. 이후 검찰은 관련 기자와 정치인들의 통신 정보를 들여다봤다. 무려 3000명이 넘는다.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에 검찰은 자신의 명예를 걸었지만, 결론은 모두 무혐의였다.

거센 개혁 압력 속 무기력한 검찰
‘특검이 노아의 방주’라는 자조도
지금이 제대로 된 개혁안 짤 적기

지난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 중인 서울고검이 김건희 여사의 육성 녹음을 대거 확보한 사실이 알려졌다. 김 여사가 주가조작을 알았다는 정황 증거가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증권사 직원과 고객 간 전화는 대부분 녹음된다. 주가조작 사건에서 이를 확보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중앙지검 수사팀은 외면했다. 그러다 지난해 김 여사가 주가조작 정황을 알았다는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처리했다. 대통령 명예 수호를 위해 들인 정성의 1%만 투입했어도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동안 검찰은 무리한 하명수사, 정권 관련 인사 보호,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거듭했다. 그럴 때마다 검찰 개혁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어떻게든 피해 갔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갖고 있는 수사 첩보를 토대로 ‘거악’을 잡아내는 성과를 낸다. ‘역시 검찰’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조직을 보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정치자금 수사가 대표적이다. 때론 살을 일부 베어내는 아픔을 감수하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 중수부 폐지, 문재인 정부 때 검수완박 등이 그랬다.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도려낸 자리엔 새 살이 돋는다. 중수부 문을 닫고 수사권을 일부 빼앗겼지만, 이후 검찰 특수수사 총량은 오히려 더 커졌다.

그런데 이번엔 양상이 좀 다른 것 같다. 지난 20일 검찰의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는 검찰이 처한 현실을 새삼 느끼게 해줬다. 대통령의 공약은 검찰을 폐지하는 수준으로 수술하는 것인데, 그 계획을 어찌 검찰 스스로 짤 수 있을까. 알맹이가 없다며 퇴짜를 맞는 것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3개의 특검이 출범했다. 특검법에 따르면 최대 120명의 검사가 파견될 수 있다. 특검이 성과를 낼수록 검찰은 만신창이가 될 가능성이 큰 구조다. 출항하는 ‘특검호’에 승선하려는 검사들의 눈치싸움도 펼쳐졌다고 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개혁의 압박 속에 내몰린 검사들에게 특검은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검찰 개혁의 원칙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범죄자들 잡는 수사를 잘하게 하는 것. 다른 하나는 검찰 스스로 몹쓸 짓을 못 하도록 봉쇄하는 것이다. 후자에만 집착하면 보복일 뿐 개혁이라고 볼 수 없다. 시민들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범죄 걱정 없이 맘 편히 사는 세상일 것이다.

현재 민주당이 제출한 검찰 개혁 법안은 검찰청을 폐지한 후 공소청으로 바꾸고, 행안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을 만들어 주요 수사를 맡기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도 행안부 휘하인 경찰의 국가수사본부와 대통령 영향권에 들어 있는 공수처는 더 강화한다. 여러 기관이 한 사건에 뛰어들면 국가수사위원회가 가르마를 탄다. 조직만 잔뜩 만들겠다는데, 그 조직이 다시 권력기관이 되는 것을 어찌 방지할지 대책이 없다. 무엇보다 범죄 피해자인 시민을 보호할 근본적인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4년 동안 기관 간 책임 미루기로 수사가 하염없이 지체되고, 정작 계엄 관련 수사에서는 법적 권한의 혼선으로 파행을 겪고도 배운 게 별반 없는 듯하다.

홍수에 떠올랐던 노아의 방주는 비 그치고 물이 빠진 뒤 비슷한 위치에 내려앉았을 것이다. 검찰 개혁이 그렇게 끝나는 것은 뭔가 허전하다. 이젠 더 고쳐 쓸 수 없는 지구의 대안을 찾아 떠나는 수많은 영화의 우주선처럼, 좀 더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기대한다. 검찰의 반발이라는 중력이 최소한으로 줄어든 지금이 적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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