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활용범위’ 법규정 모호
인스타 등에 올린 정보 수집·판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 A씨(32)는 인스타그램에 옷과 신발 사진을 올리는 게 취미다. 그런데 최근 쇼핑몰 개업을 준비 중인 친구로부터 유료로 판매되는 인플루언서 리스트에 본인의 개인정보가 포함됐다는 얘기를 들었다. A씨는 개인정보가 자신도 모르게 온라인상에서 거래되고 있다는 사실에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공개된 개인정보를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지를 두고 공방이 뜨겁다.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개인정보는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견해와 공개된 정보라도 타인이 이를 수집 및 활용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부딪힌다. 빅데이터 사회가 도래하면서 개인정보를 활용하려는 수요가 증가했지만, 현행법은 공개된 개인정보의 활용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아 모호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22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를 크롤링(Crawling) 기술로 모아 이를 영리 목적으로 판매하는 거래가 늘고 있다. 국내 유명 재능 거래 플랫폼의 경우 최대 수만명까지 취합된 인플루언서와 분야별 전문가 명단이 파일 형태로 판매되는 중이다. 해당 파일에는 이들의 SNS 종류별 아이디, 전화번호, 이메일 등이 담겨 있다.
현행법상 이 같은 사례들은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공개된 개인정보의 취급에 대해 별도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개인정보를 수집·활용하고 제3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정보 주체가 이미 개인정보를 공개한 경우에는 이를 묵시적 동의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인 김진욱 변호사는 “본인이 공개한 내용이면 해당 정보의 활용 방식에 대해서도 동의를 했다는 전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 관련 지침인 ‘표준개인정보보호지침’에는 공개된 정보처리와 관련한 내용이 들어 있다. 개인정보처리자는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 인터넷에 표시된 내용에 비춰 사회통념상 동의 의사가 있었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지침도 공개된 개인정보의 영리적 활용 여부와 사회통념상 동의의 범위가 명확하게 언급돼 있지 않다.
유사한 사례로 2016년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로앤비 사건’이 있다. 종합법률서비스 업체 로앤비는 대학교 홈페이지에 공개된 법대 교수들의 사진, 성명, 출생연도, 학력, 경력 등을 수집했다. 이 정보를 자사 사이트의 법조인 항목에 게시하고, 제3자에게 유료로 제공했다.
로앤비의 정보 제공 및 판매 행위가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는지가 사건의 쟁점이 됐는데, 대법원은 로앤비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정보 주체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 이미 공개한 개인정보는 정보의 수집과 처리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 로앤비가 개인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수집했더라도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 사회 전체의 경제적 효율성 등에 따른 법적 이익이 정보처리를 제한함으로써 얻는 이익보다 크다고 봤다.
법조계에서는 기술적 진보에 따라 개인정보에 대한 법적 접근 방식도 유연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한 헌법학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데이터 활용이 핵심인 만큼 산업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고려해 개인정보의 보호뿐 아니라 활용에 관한 내용도 법안에 함께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나경연 기자([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