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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이란의 핵 시설 세 곳을 폭격하면서 순식간에 협상에서 전쟁으로 급선회도 할 수 있는 그의 불가측성은 곧 전쟁이라는 현실이 됐다. 최근 트럼프의 대화 제안을 거절하며 ‘몸값 올리기’에 나섰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이를 지켜보며 향후 행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현지 시간) 미국이 이란 핵시설 3곳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을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상황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사진. 백악관


'블러핑은 없다' 행동으로 보인 트럼프
취임 이후 관세 협상에서 늘 결국 꽁무니를 내뺀다는 의미의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란 조롱을 받아온 트럼프였지만, 이번에는 특유의 협상용 ‘블러핑’(bluffing·허풍)이 아니었다. “(이란의)모든 핵시설을 폭파하겠다”(17일), “최후의 최후통첩이다”(18일), “이란이 정신 차릴 시간을 주고 있다”(20일)며 수위를 끌어올리더니 이날 실제 공습을 감행했다.

이는 트럼프가 2017년 취임 초기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를 경고하며 최대 압박을 가했던 때의 데자뷰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실제 공격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트럼프가 대북 선제타격을 구체적인 시나리오로 준비했다는 사실은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복수의 참모진 회고록 등을 통해 확인됐다.

북한이 뉴욕 채널을 통한 트럼프의 친서 전달을 수차례 거부했다는 보도가 최근 나온 가운데 미국의 대화 제안을 무시해온 북한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협상 시작점은 최소 '핵시설 자수'?
입장을 바꿔 북한이 대화에 나설 경우 미국이 내세우는 시작점의 기준은 더 높아질 수 있다. 핵시설 자진신고를 최소한의 조건으로 내세울 가능성이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북한의 은닉 핵시설 문제로 결렬됐던 만큼 핵 시설 전면 신고는 원래부터 협상의 핵심 쟁점이었다. 이번에 미국이 이란 핵 시설의 위치와 지형 정보를 토대로 한 정밀 타격 능력을 과시하면서 북한도 이를 압박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

2019년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이란을 보며 오히려 미국과의 접촉을 더 꺼릴 정반대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밖으로는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면서 안으로는 핵무력 증강에 골몰할 수 있다는 뜻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접촉을 회피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은 이란의 무력한 대응을 타산지석 삼아 핵무기 고도화, 재래식 전력 현대화, 전술핵 실전 배치 강화에 더욱 매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트럼프의 일관성 없는 스타일을 본 뒤 북한이 협상에 기대를 걸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봤다.

평소처럼 고강도 도발 등 특유의 벼랑끝 전술로 협상력을 높이는 수법을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트럼프가 이런 '치킨 게임'을 벌일 때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라는 점이 이번에 입증된 만큼 전술적으로는 적대적 태도를 유보할 수도 있다.


'핵 능력' 완성 북한엔 다른 선택지?
이란에는 공격을 감행했지만, 트럼프가 이미 정상회담을 한 김정은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화적 태도를 보일 가능성도 상존한다. 여기엔 북한이 이란보다 훨씬 고도화한 핵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거쳐 2017년 스스로 ‘핵보유국’이라고 선언했고,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현재 약 50기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유사시 한국은 물론 일본, 괌 등의 주한미군 기지를 보복 타격할 수 있고, 미 본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도 보유하고 있다. 대북 군사 옵션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동의할 가능성도 극히 작다.

북한이 지난해 6월 러시아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하며 밀착한 점도 변수다. 해당 조약은 군사 동맹에 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한반도 유사시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개입할 근거가 될 수 있다.

중국 역시 한반도에서의 무력 충돌에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으로선 트럼프의 강경 노선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뒷배'를 갖췄다고 판단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반대로 트럼프에게는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선택지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는 변수가 된다.

2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습 직후 백악관에서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 등과 함께 대국민 연설을 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 가능할까
다만 어떤 경우에도 북한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국제사회에서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 획득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지난 1월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으로 지칭하자 김정은은 추후 러시아를 등에 업고 미국과 대등한 협상을 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트럼프조차 예견하지 못했던 중동 전쟁 참전으로 이런 시나리오는 사실상 멀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가 이번 공격의 목표를 이란 핵능력 제거로 천명한 가운데 김정은 입장에선 한때 협상 카드가 될 줄 알았던 '핵보유국' 언급이 이제는 미국의 공격 명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를 할 수 있다.

미국이 이란의 지하 핵시설 세 곳을 정밀타격한 건 북한으로서도 영변, 강선 등 핵시설이 트럼프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낄만한 대목이란 지적이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이란이 핵시설을 숨긴 채 외교적 협상을 이어가다 결국 벙커버스터로 타격 당하는 모습을 본 북한은 자신들이 추구해온 핵을 통한 ‘전략적 균형’이 미국의 결심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을 절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이스라엘이 우리 모두를 위해 더러운 일(dirty work)을 해줬다”고 언급한 것처럼 이란의 핵 능력의 싹을 자른다는 공습 명분에 대해선 서방 주요국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안에서 미국과 협상까지 시도했던 이란조차 가혹한 군사 대응에 마주한 상황에서 NPT를 탈퇴한 채 불법 핵 개발을 지속해온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더 떨어지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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