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용산 이전' 탓 1100억 쓰고 원점
YS 정부 때부터 '청와대 이전' 공약 반복돼
李, '세종 대통령실 시대' 열고 마침표 찍나
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이 이곳을 관람하려는 시민들 및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홍인기 기자
대통령실이 다시 청와대로 돌아간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 직후인 2022년 5월 10일 대통령 집무실을 서울 용산구 옛 국방부 청사로 공식 이전한 지 3년여 만이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해까지 74년간 ‘권력의 핵심 지대’였던 청와대가 다시 한국 정치의 본무대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간 시민들에게 공개돼 왔던 청와대의 관람은 오는 8월 1일 중단된다. 현재 임시로 용산 대통령실을 사용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은 이르면 올해 9월, 늦어도 12월쯤에는 청와대로 복귀할 전망이다.
원점으로 회귀하기까지, 이미 치렀거나 앞으로 치르게 될 대가는 크다. 윤 전 대통령 임기 3년간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에 들어간 혈세는 총 832억 원에 달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청와대 복귀를 위한 예비비로 259억 원을 편성해야 했다.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대통령실 이전'을 강행한 윤 전 대통령 결정이 ‘1,100억 원에 가까운 비용 매몰’이라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당선된다면 일단 청와대로 돌아간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청와대의 유구한 전통과 상징성에 기대어 ‘망가진 국가 시스템을 복원하겠다’는 뜻이었다. 74년 동안 대통령의 공간이었다가 3년간 일반에 개방됐던, 청와대의 ‘77년 변천사’를 짚어봤다.
①조선총독부 건물이 '대통령실'로
청와대 터는 조선 시대부터 풍수지리상 ‘임금의 자리’로 꼽혔다. 북쪽으로 북악산을 바로 등지고, 인왕산과 낙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천연 요새’와도 같은 환경을 갖췄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조선왕조 법궁인 경복궁의 후원으로 쓰였다.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을 때, 먼저 내줄 수밖에 없었던 자리도 이곳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39년 조선총독부는 청와대 터에 있던 경복궁 전각들을 모조리 철거하고 총독 관저를 올렸다. 이 건물은 훗날 1945년 광복 후 미군정 통치를 받던 시기에 존 리드 하지 미군 중장의 관저로도 쓰였다.
1966년 박정희 당시 대통령 임기 중 청와대의 옛 본관 모습. 국가기록원 제공
‘대통령의 자리’가 된 건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때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총독 관저 건물을 그대로 이어받아 1층을 집무실로, 2층을 생활 공간으로 각각 사용했다. 조선 시대 때 이곳에 붙여진 이름인 ‘경무대(景武臺)’로 공식 명명됐다.
‘청와대’ 명칭을 만든 건 윤보선 제4대 대통령이다. 1960년 4·19혁명으로 이 전 대통령이 물러난 뒤 취임한 윤 전 대통령은 이승만 독재를 연상시키는 ‘경무대’라는 이름을 폐기하고, ‘푸른 기와집’이라는 의미의 ‘청와대(靑瓦臺)’라는 이름을 붙였다.
1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본관 내부의 세종실 앞 벽에 걸린 역대 대통령 초상화를 관람객들이 살펴보고 있다. 뉴스1
1930년대에 지어진 청와대 구(舊)본관 건물은 이승만·윤보선 대통령 이후로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거쳐갔다. ‘청와대를 신축해야 한다’는 얘기는 노태우 정부 초기였던 1988년 나왔다. 지구촌 축제인 서울올림픽이 그해 치러지면서 “일제강점기 잔재인 총독 관저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국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랐던 것이다.
그 결과 1991년에 이르러 오늘날 모습을 갖춘 청와대가 들어섰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집무실과 생활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도록 했다. 청와대 본관과 대통령관저가 별도 건물로 지어졌다. 비서와 참모들이 모여 업무를 보는 ‘여민관’, 청와대 출입기자실인 ‘춘추관’도 마련됐다. 정부 수립 후 대통령 6명이 거쳐간 옛 청와대 본관은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 1993년,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완전히 철거됐다. 현재 그 자리에는 잔디가 조성돼 있다.
②“대통령실 옮긴다”… 尹 전에도 단골 소재
‘청와대 이전’ 공약은 김영삼 정부를 탄생시킨 제14대 대선 때부터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청와대라는 폐쇄적 공간이 ‘제왕적 대통령제’의 부정적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비판이 반복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용적 차원도 있었다. 청와대 구조상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과, 참모들이 일하는 여민관이 도보로 10분 이상 걸릴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업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였다. 2016년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국정농단 사태 관련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2014년 세월호 참사 때의 청와대 내 늑장 보고 상황을 증언하며 “평소 박근혜 대통령에게 서면보고를 하기 위해 보고서를 들고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간다”고 언급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1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를 찾은 관람객들이 입장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나 과천정부청사 등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보안과 비용 등 문제로 결국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아예 ‘신(新)행정수도’를 만들어 대통령 집무실뿐 아니라 정부 부처 전체를 세종시로 이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2004년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법을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이 역시 무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광화문 집무실’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현실적 한계를 넘지 못했다. 대신 문 전 대통령은 여민관 3층에 대통령 집무실을 차려 일상적 업무를 처리하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뿐만 아니라 관저에서 여민관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하며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대통령 업무 문화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여 주기도 했다.
2017년 5월 15일 문재인(가운데) 당시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를 나와 주영훈(왼쪽) 당시 경호실장, 송인배 당시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비서관과 여민관 집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③尹, 대통령실 이전… 말 많고 탈 많은 ‘용산 시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 바깥으로 처음 이전한 건 2022년 윤석열 정부에 이르러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된 지 열흘 만인 2022년 3월 20일 급작스럽게 대통령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권위의 상징인 청와대를 벗어나 국민과 더 소통하겠다’는 대의를 내세웠으나, 비공식적으로는 평소 신봉하던 역술인 ‘천공’의 풍수지리적 조언에 따른 게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해 8월 29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 국정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청와대를 사전 준비 작업도 없이 급하게 개방한 건 이런 의심을 더 증폭시켰다. 운영 매뉴얼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저 문만 열어 두는’ 수준이었다. 이곳을 주도적으로 관리할 주체도 한동안 정해지지 않았다. ‘관리 공백’ 상태가 이어졌다. 이듬해인 2023년 3월에야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 책임 부처로 지정됐다. 그렇다고 역사적 공간이 된 것도 아니었다. 윤 전 대통령이 용산으로 나간 지 반년도 안 돼 공식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다시 청와대 영빈관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청와대는 완전히 열린 것도, 닫힌 것도 아닌 반쪽짜리 개방 상태에 놓였다.
윤 전 대통령의 거주 공간은 한남동 외교부 장관 공관으로 낙점됐다. 하지만 재건축에 가까웠다는 리모델링이 지연되는 바람에 대통령 취임 5개월이 지나서야 완성됐다. 관저 준비 전까지 윤 전 대통령은 6개월간 자택인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해야 했다. 그가 이동할 때마다 주변 통행이 마비돼 시민들은 극심한 교통대란을 겪었다.
4월 10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관저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엿새 전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을 받았던 윤석열 전 대통령의 퇴거를 앞두고 있을 때의 모습이다. 정다빈 기자
이후 대통령관저 리모델링 과정에서 윤 전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와 가까운 업체가 공사를 맡았다는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대부분의 하도급 업체가 무자격 회사였다는 사실도 속속 드러났다. 아울러 관저 내에 스크린골프장, 사우나 등 호화 시설을 설치했을 뿐 아니라 수백만 원대 캣타워를 세금으로 구입했다는 의혹도 줄줄이 터졌다. 윤 전 대통령이 관저 리모델링에 쓴 돈은 46억 원, 가구와 집기를 사들이는 데 쓴 비용은 20억9,000만 원에 각각 달했다.
④李, 청와대 복귀 언제쯤… 세종 이전은?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대선 후보 시절부터 예고해 온 ‘청와대 집무실 복귀’를 발표했다. 지난 9일에는 청와대로의 대통령실 재이전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꾸려졌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작업을 가능한 한 신속히 마무리 짓겠다는 의미다. 현재 이 대통령은 임시로 한남동 대통령관저에 머물면서 용산 대통령실로 출퇴근하고 있다.
5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경내 탐방로 출입구에 '운영 중단' 안내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이재명 대통령 집무실의 청와대 이전 방침에 따라 보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인데, 공사 구간은 칠궁 뒷길에서 시작해 춘추관 옆길로 이어지는 1.31㎞ 구간이다. 청와대 본관 및 영빈관 등 시설은 기존대로 관람이 가능하다. 뉴스1
3년 넘게 시민들에게 완전히 개방됐던 청와대를 어떻게 손보고, ‘대통령의 공간’으로 다시 운영하게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청와대 내 사무 공간인 ‘여민관’은 그동안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집무를 볼 수 있는 환경을 갖추기까지 석 달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리는 ‘지하 벙커’의 경우, 윤석열 정부가 청와대에서 통째로 뜯어 용산으로 이전한 탓에 정상적으로 재구축하려면 오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세종 대통령실 시대’가 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임기 안에 국회 세종의사당과 대통령 세종 집무실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했다. 다만 대통령실을 완전히 세종시로 이전하는 건 ‘수도 이전’에 준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헌법 개정 등 절차적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개헌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동안, 세종시에 제2의 대통령실을 설치하는 단기적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한국일보
박지윤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