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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없는 게 아니에요. 전기 남아돌아요. 못 써서 버리는 게 얼만데…."

전기 문제로 기획 취재를 시작하면서 전문가들에게 전화를 돌렸을 때 많이 들은 말입니다.

분명 전기는 부족합니다. 수도권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는 '피카츄'라도 불러와야 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사실 이는 수도권에 한정된 이야깁니다. 시야를 넓혀보면, 전기가 부족한 곳도 있고, 전기가 남는 곳도 있었습니다.

'수도권은 전기가 부족하고, 지역은 전기가 남아돌고, 그런데 이를 옮겨줄 송전망은 늘리기 어렵다.'

우리나라 전기 문제를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이제부터 정리해 보겠습니다.

■번호표 뽑아가며 써야 하는 AI GPU…원인은 전기 부족

서울시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곳은 서울대입니다. 10년 넘게 에너지 다소비 건물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서울대에서도 전기를 두고 다툼이 치열합니다.

AI 연구 핵심인 GPU가 돌아가는 서버실, 이곳 냉각기를 돌릴 전기도 부족해 GPU의 열을 제대로 식히지 못할 지경입니다.

AI 연구에 쓰이는 GPU 서버는 일반 가정용 PC의 150배가량 전기를 씁니다. 그만큼 열도 많이 나고, 이를 식혀주기 위해 냉각기도 강하게 돌려야 합니다.

결국 전기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가는 건데, 문제는 전기요금을 내겠다고 해도 전기를 원하는 만큼 받을 수 없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GPU 사용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GPU를 돌아가며 사용하기 위해 대기 순번을 관리하는 프로그램까지 쓰고 있습니다.

AI 강국의 첨병이 돼야 할 대학 연구실, 전기가 부족해 마음껏 연구해야 할 학생들이 그나마 있는 GPU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구로구 야산에 붙은 400억 프리미엄. 원인은 전력난

서울 구로구의 한 아파트단지 옆 공사 현장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것도 없는 이 야산이 2년 전 1천억 원에 거래됐습니다.

최근엔 400억 원의 웃돈을 붙여 한 자산운용사가 사들였습니다.

3.3제곱미터(평)당 4천500만 원. 주변 시세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높습니다.

바로 옆 신축 아파트의 2배나 되는 가격에 인근 부동산에서도 혀를 내둘렀습니다.

이 같은 땅값이 만들어진 비결은 전기였습니다.

한전이 이곳에 80㎿, 최소 5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전기 공급을 허용하면서 데이터센터를 지을 수 있게 된 덕분입니다.

데이터센터로 인한 전기 수요가 수도권에 몰리면서 정부가 대용량의 전기 사용 허가를 사실상 제한했고, 이 때문에 먼저 신청해 허가를 받은 이들에게 프리미엄이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이미 데이터센터 부지로 허가를 받은 땅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건데, 고양시 등 수도권에서도 이처럼 데이터센터가 될 수 있는 땅엔 '웃돈'이 붙었습니다.

수도권 전력난이 빚은 웃지 못할 촌극입니다.

■동해안 화력발전단지, 멈춰 선 발전기…"가동률 10~20% 수준"

올해 1월1일 상업 운전을 개시한 민자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상업운전개시 첫날인 1월 1일부터 2월10일까지 40일 넘게 발전소에 있는 발전기 2기가 모두 멈췄습니다.

전기를 생산할 준비를 모두 마쳤지만, 전력거래소를 통해 전기를 팔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자 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이후 발전기를 돌리고 있지만, 올해 5월까지 누적 가동률은 10%에 불과합니다.

발전소 건설 당시 계획했던 가동률 85%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죠.

전기 팔아 돈 버는 발전소에서 전기 만들 발전기가 놀고 있으니 수익성 악화는 당연한 수순입니다.

당장 올해 하반기부터 발전소 지을 때 빌린 돈을 갚아야 하는 삼척블루파워 입장에선 눈앞이 캄캄합니다.

강릉에코파워, GS동해전력 등 동해안 발전단지에 위치한 다른 민자 발전사 역시 어려운 사정은 마찬가지, 이들의 가동률도 올해 5월까지 20% 수준입니다.

원인은 '송전 제약'입니다.

경북 울진 원자력발전소와 강원도 삼척블루파워 등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는 동해안 발전단지에서 만들 수 있는 전기는 시간당 17.9GW(기가와트).

하지만 우리 송전망 사정상 수도권으로 보낼 수 있는 전기는 10.9GW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은 만들어도 보내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전기라는 거죠.

이 같은 송전 제약 상황에서 전력거래소가 단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원자력발전소 전기를 우선 구매해주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린 화력발전소의 발전기 가동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동해안 발전단지에서 송전 제약으로 억지로 발전기를 멈춰가며 못 만드는 전기만 7GW에 달합니다.

당진, 태안 등 서해안 발전단지 역시 비슷한 사정으로 3.2GW를 못 만들고 있습니다.

두 곳 합쳐 발생한 송전 제약만 10.2GW.

일반적으로 원전 1기가 만드는 전기를 1GW라고 하는 걸 감안하면, 원전 10기가 만들 수 있는 전기를 '길'이 없어 만들지 못하는 겁니다.

■수도권은 없어서 '허덕' 지역은 남아돌아 '고통'…문제는 '전기 송전망'

인구 절반이 몰린 수도권. 당연히 전기도 많이 필요한데,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바닷가에 주로 몰려 있습니다.

자료 : 한국전력 신송전개발처

이 때문에 수도권은 전기가 부족하고, 해안가 발전단지가 있는 지역은 전기가 남아돕니다.

지역 간 전기 수급 불균형', 잘 구축된 송전망이 있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합니다.

10여 년 전 발생한 밀양 송전탑 사태 이후, 송전탑 고압 전류로 발생하는 전자파에 대한 건강 우려 등이 커지면서 송전망 구축이 아주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전기 수요는 급증하고 있지만, 송전망 구축, 확대는 계속 지연되면서 송전망 부족 사태가 심화하고 있다는 게 한전 설명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전기요금에도 악영향을 끼칩니다.

송전 제약으로 부족한 전기를 상대적으로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전기로 공급하게 되면서 전체 전기 생산 원가가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한전은 이 같은 송전 제약으로 값싼 석탄화력발전 대신 비싼 LNG 발전을 하게 돼 보는 손해가 1년에 3천억 원 수준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게 '초고압 직류 송전망'…"좋은데 비싸"

송배전망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전력이 이 같은 송전망 문제 해결을 위해 추진하는 게 '초고압 직류(HVDC) 송전망'입니다. 전기 고속도로라고도 불리는데요.

통상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는 '교류 전기' 형태로 송전망, 변전소 등을 거쳐 각 가정과 기업에 공급됩니다.

하지만 이를 고압 직류로 바꿔 '직류 전기' 송전망을 만들면, 전자파 발생도 줄어들고, 송전 과정에서 전기 손실도 줄어듭니다. 또 송전탑 크기를 줄일 수 있고 지중화도 가능하다는 게 한전 설명입니다.

다만, 직류 송전을 위해 교류 전기를 직류 전기로 바꿨다가 이를 다시 교류 전기로 바꿔줄 '변환소'를 직류 송전망 양쪽 끝에 설치해야 하는데, 이 돈이 많이 듭니다.

간단히 말하면, 직류 송전의 장점이 여러 가지 있지만, 교류보다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는 겁니다.

이런 비용 문제에도, 한전은 동해안 발전단지 등의 송전 제약 문제 해결을 위해 초고압 직류 송전망을 만들고 있는데요.

원전이 있는 울진부터 수도권까지 280km에 달하는 송전망 건설은 진행 중인데, 경기 하남 동서울 변전소 증설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280km를 달려온 직류 전기를 교류 전기로 바꿔 각 가정과 기업에 보낼 수 있는 '전기 변환소'를 현재 운영 중인 '동서울 변전소'에 설치하려 했는데, 관할 지자체인 하남시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힌 겁니다.

'전기 고속도로'를 만들어도 '요금소' 역할을 할 변환소가 없다면, 고속도로를 타고 온 전기도 쓸 수 없게 됩니다.

■7천억 원 들인 옥내화와 증설…"그래도 전자파는 안 돼"


한전은 울진에서 이어진 초고압 직류 송전망의 직류 전기를 교류 전기로 바꿔줄 '변환소'를 현 동서울변전소 부지에 새로 만들 계획입니다.

주민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7천억 원을 들여 이 동서울 변전소의 설비도 모두 옥내화 할 방침입니다. 직류 송전망은 지중화해 지하로 들어오기 때문에 철탑도 줄어들고, 설비가 건물 안에 들어가기 때문에 전자파도 덜 나올 겁니다.

하지만, 역시 전자파 우려에 반대 목소리가 나옵니다.

하남시는 '주민 반대' 때문에 못 해준다는 입장, 변전소 주변 아파트 주민들은 전자파 우려에 증설은 안 된다는 입장이라는 게 한전 설명입니다.

하지만 동서울 변전소 자체는 1979년부터 문을 열고, 계속 존재해 왔습니다.

이 같은 문제 극복을 위해 한전은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변전소 인근 사거리에 전자파 측정장치도 달았지만, 아직 인허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자파 직접 측정해 보니 "전기밥솥 10분의 1 이하"

한국전력의 전자파 측정 장비로 전자파를 직접 측정해 봤습니다.


변전소 앞에서 측정한 전자파는 0.04마이크로테슬라.


전기밥솥에서 나온 전자파 0.5마이크로테슬라의 1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입니다.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1.5마이크로테슬라에 육박했습니다. 변전소 앞 전자파의 30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송상철 한전 HVDC건설본부 부장은 "주민들이 직접 선정한 51개 지점에서 전자파를 측정한 결과 0.01~0.81마이크로테슬라 수준의 전자파가 측정됐다"면서 "이는 국내 기준인 83.3 마이크로테슬라의 1% 수준"이라고 밝혔습니다.

변전소 앞이나 전기밥솥,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파 모두 우리나라 안전 기준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는 게 한전 측 주장입니다.

■"AI 3대 강국"…'전기 수급불균형, 수도권 전력난' 해결부터


이재명 대통령은 오늘(20일) 울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을 찾는 등 대선 기간 1호 공약으로 내세웠던 'AI 3대 강국'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AI 개발과 연구, 데이터센터 증설까지 모두 기본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입니다.

연구를 위한 전기도 부족하고, 데이터센터 부지엔 웃돈이 붙고, 송전망이 없어 발전기가 멈춰 선 현실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AI 3대 강국도 요원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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