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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동두천시 걸산동의 걸산마을. 주한미군 '캠프 케이시' 기지에 가로막혀 시내에서 고립된 산골 마을이다. 미군이 발급하는 통행증이 있으면 기지 내 도로를 통해 시내까지 10분이면 갈 수 있지만, 통행증이 없으면 위험한 산길(산불 진화용 임도)을 통해 40분을 돌아가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미군 측이 이 마을에 새로 이사 오는 주민에게는 통행증 발급을 중단했고, 기존 주민에 대한 통행증 갱신도 까다롭게 하기 시작했다. 원주민 중에서도 몇 달씩 통행증 없이 산길로 돌아다녀야 하는 주민들이 생겨났다.

취재 중 만난 주민들은 대부분 매우 화가 나고 억울해했다. 내 고향에서 사는 원주민이 오히려 외국인한테 어떤 처분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억울함을 방송 인터뷰를 통해서 하시라고 요청하면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언론에 얼굴이 나오면 향후 통행증 발급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분명 한국 땅에서 세금 내면서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당연히 누려야 할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주한미군의 눈치를 보고 있는 셈이다.

[연관기사]
[뉴스9][단독] 골프 가능한 통행증 2~300명에게 발급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81077
[뉴스광장] 미군 통행증 중단…“10분 거리, 산길로 30분 돌아가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236314

■ 걸산마을의 눈물....미군에 이동의 자유와 재산권 침해당한 주민들

한국전쟁 중에 동두천에 진지를 구축한 미군. 공산화라는 난국에 구원자로 등장한 미군은 그야말로 귀한 손님이었다. 자유 진영을 대표하는 세계 최강국 미국의 군대가 아닌가. 미군의 주력이 진을 친 곳이 바로 동두천시 걸산동 일대였다. 주한미군 입장에서 이곳은 걸산동이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주 LA가 주소인 땅이다.

걸산마을은 캠프 케이시가 걸산동 대부분을 점유하면서 기지 안쪽에 자투리처럼 남게 된 산골 마을이다.

캠프 케이시 안에는 한국인이 여전히 소유권을 갖고 있는 땅도 있고, 한국인 조상들이 묻힌 무덤도 여러 기가 있다. 동두천시 걸산동은 행정구역상 존재하는 행정동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캠프 케이시'가 점유하고 있다. 이번에 취재를 한 걸산마을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밀려난 주민들이 사는 걸산동의 일부 자투리 지역이다. 결론적으로 미군기지가 들어오면서 멀쩡하던 동네였던 걸산마을이 미군기지 안쪽에 섬처럼 고립된 것이다.
캠프 케이시 측은 미군 주둔으로 걸산마을 주민들에게 손해를 끼친 셈이기 때문에 기지 창설 이후 지금까지 걸산마을 주민들의 자유로운 통행을 보장해 왔다. 동두천시에 따르면 걸산마을 주민에게 미군이 통행증 발급을 시작한 건 1970년 후반부터였다. 이후 걸산마을 주민은 당연히 통행증 발급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난 2022년 6월부터 캠프 케이시 측이 걸산마을의 기존 주민이 아닌 신규 전입 주민에게는 통행증 발급을 중단했고, 이후 독거노인의 간병인이나 성묘객 등에게 주던 통행증도 발급 절차가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통행증 없는 걸산마을 주민이 사용하는 임도 (겨울이나 장마철 이용이 힘들다.)

통행증이 없으면 주민들은 산불 진화용으로 만든 임도를 통해서 시내로 나가야 한다. 길이 험해 겨울철이나 장마철에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오가기 힘든 길이다. 통행증을 받지 못한 신규 전입 주민은 걸산마을에 집을 사고도 겨울철에는 시내 친척 집에서 지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재산권에도 문제가 생겼다. 취재하면서 만난 한 걸산마을 주민은 땅을 팔고 싶은데 매매가 안 된다고 하소연했다. 정상적인 도로를 이용 못 하는 소위 '맹지'처럼 돼버린 땅을 누가 사려고 하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민도 방송 인터뷰는 한사코 사양했다. 방송에 얼굴이 나가면 본인의 통행증 갱신에도 어려움이 생길 것을 두려워했다.

■ 동두천 범시민 대책위원회,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빼내나"

91명이 사는 걸산마을에 살면서 통행증이 없는 주민은 4명이다. 적다면 적을 수도 있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이, 미군의 협조가 없으면 시내로 나가는 정상적인 도로가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겨울이나 장마철에는 집을 두고도 시내 친척 집에서 지낸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다. KBS가 관련 보도를 처음 한 것은 지난 4월이었다. 동두천에서 두 자식을 키워 출가시킨 김 모 씨는 걸산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부부가 조용히 살고 싶었다고 했다. 동두천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이 부부는 집에서 기른 무공해 농산물을 가게 음식에 쓸 계획도 나름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들 부부는 날씨만 안 좋으면 오히려 아들 집에 신세를 져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통행증이 나오길 기다리며 취재에 응하지 않던 김 씨는 KBS가 '미반환 미군기지' 문제에 대해 연속해 보도하자 마음을 바꿔 인터뷰에 응했다. 물론 음성과 얼굴은 가려달라고 부탁했다.

무농약 채소 농사를 짓기 위해 걸산마을로 이주했지만, 통행증을 받지 못한 주민 /KBS 뉴스9 발췌

동두천 시민들로 구성된 범시민 대책위원회도 4월 21일 걸산동 주민들의 통행증 발급을 촉구하면서 삭발식을 열었고, 이후 매일 같이 캠프 케이시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한국 전쟁 이후 70년 동안 미군기지가 동두천에 존재했고, 지역사회에 많은 도움을 준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행태는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과 똑같다며 분개하고 있다.

특히 미군 측이 미군에 우호적인 친선 단체 회원들에게는 통행증을 내주고, 정작 생존권을 위해 부대를 통과해야 하는 걸산마을 주민들을 차별한 사실이 KBS 취재로 드러났다. 통행증을 받은 단체는 주한미군들에게 현지 적응을 도와주고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친선 단체 회원들이다. 통행증을 발급받은 사람은 캠프 케이시 내 식당과 골프장을 이용할 수 있다. 이렇게 발급된 통행증 숫자가 약 200~300장이고 이들 중에 일부는 미군 골프장 측에 수백만 원의 추가 비용을 내고 무제한 골프 이용 자격까지 취득해 기지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걸산마을에 통행증을 제한하는 조치가 부당하다고 보는 한 가지 단면이다.

주한미군 친선 단체 회원들이 기지 통행증을 가지고 캠프 케이시 안에서 골프를 치고 있다. / 친선 단체 회원 제공 사진

■ 국방부, 통행증 문제는 주한미군사령부에 문의하라?

걸산마을의 신규 전입 주민들은 주한미군 측에 공식적으로 의견을 제출할 통로가 없다. 따라서 과거에도 통행증 문제는 대부분 동두천시를 통해 미군 측과 협의해 왔다. 그동안 동두천시는 통행증 미발급 문제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지만, 주한미군 측은 자신들의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게 확인됐다. 결국 동두천 시민과 걸산마을 주민이 기댈 최후 보루는 대한민국 정부밖에 없다.

그러나 KBS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지난 4월 하순 동두천시가 걸산마을 통행증 관련 문제를 보도자료로 배포하고, 범시민대책위 시민들이 캠프 케이시 앞에서 삭발식을 하고, 이후 매일 같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을 때까지, 국방부는 공식적으로 동두천시나 시민대책위에 사태 파악을 위해 연락을 해온 바가 없다고 한다. KBS가 '통행증 차별 지급' 문제를 취재한 뒤 국방부 입장을 듣기 위해 질의서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주한미군사령부 공보실 쪽으로 문의하라는 것이었다.

걸산마을 통행증 제한 사유와 대책을 묻는 KBS 질의에 대한 국방부 답변 내용

통행증 발급을 중단한 이유야 주한미군 측에 물어볼 수도 있겠지만, 걸산마을 주민들에 대한 대책까지 주한미군에게 물어보라는 식이었다. 그래서 주한미군사령부에도 질의를 해봤다. 그랬더니 ' 기지출입증 발급 정책은 보안, 병력 보호, 작전 수행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수립되고 있다."는 들으나 마나 한 답변이 돌아왔다.

군 내부에서 결정한 사안이니 통행증 발급을 중단한 이유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안 할 경우 뭐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이 내 나라 땅에서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침해받고, 재산권 행사에도 일부 지장을 받는 상황에 대해, 아무리 전시 작전권이 없는 나라이지만, 국방부가 이를 주한미군에게 물어보라는 건 국민을 위하는 태도로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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