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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6일, 서울 강남역 근처 한 건물 옥상에서 20대 여성이 잔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범인은 다름 아닌 남자친구, 20대 최모 씨였습니다.

미리 구입한 흉기를 휘둘러 피해자를 살해한 최 씨는 수사기관에서 결별 문제로 다투다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최 씨는 살인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1심에서 징역 26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검찰과 최 씨 모두 항소했고, 지난 13일 2심 재판부는 징역 30년을 선고했습니다.

4년이 늘어난 판결을 받아 든 유족들은 다시 경찰서로 향했습니다.

1심과 2심의 형량을 가른 요인은 무엇인지, 그럼에도 유족들이 경찰서를 찾은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1심 재판부 "고의 뚜렷·범행 잔혹"…'자살 시도'는 참작?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우인성)는 최 씨가 뚜렷한 고의를 갖고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최 씨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흉기를 2점 준비하고 피해자의 입을 막기 위해 청테이프까지 구입한 점, 확실한 범행을 위해 흉기를 수 차례 휘둘렀단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고의는 뚜렷하고 확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범행 방법이 잔혹하고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모두 최 씨에게 불리한 정상입니다.

그런데 재판부가 최 씨에게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한 내용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최 씨의 반복된 '자살 시도'입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정신병리학적 특성으로 인해 극도의 불안감과 궁지에 몰렸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범행 당일 오전 휴대전화로 '지면으로 투신자살', '자살 수단별 성공률의 정확한 계산' 등을 검색해 보고, 범행 이후에도 옥상 난간에서 서성이며 투신하려고 했는데 구조대원이 제지하자 극렬하게 저항했다"고 판시했습니다.


최 씨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점은 그의 '재범 가능성'을 따져볼 때도 참작됐습니다.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 최 씨의 재범 위험은 '중간 위험군'에 해당하며, 재범 위험성 평가에서도 '높음'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검찰의 보호관찰과 전자장치 부착 청구는 모두 기각됐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성격적 특성이 반드시 '타인을 살해'한다는 극단적인 형태의 폭력 성향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최 씨가 범행 전후로 한 자살 시도가 형량을 낮추고 보호관찰 등을 받지 않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된 셈입니다.

■2심 재판부 "자살 시도 핑계로 책임 회피"…형량 4년 늘어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최 씨의 자살 시도를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 씨가) 정신심리학적 특색이나 자살 시도를 핑계로 책임을 감경·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고법 형사합의7부(이재권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최 씨는) 범행 장소에서 자살을 시도하던 중 경찰관들과 소방관들에 의해 구조됐는데, 그 과정에서 손쉽게 불과 5미터 인근에 있던 피해자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에 관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질타했습니다.

최 씨가 "오히려 구조 후 도착한 경찰서에서 자신이 약을 복용해야 함을 이유로 약이 든 가방을 찾아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구호조치를 취하거나 참회하는 등 인간으로서 마땅히 하여야 할 도리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도 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1심과는 달리 최 씨에게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5년간의 보호관찰 명령을 내렸습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장래에 다시 살인 범죄를 범하여 법적 평온을 깨뜨릴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며 "상당 기간의 실형을 선고하는 것만으로는 피고인의 성행을 교정하고 재범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범행 당시 자살 충동을 겪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 있었다는 최 씨의 주장도 반박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최 씨가 의학적 지식을 갖춘 의대생임을 강조하며, 지식을 바탕으로 치료를 하기보다 오히려 약물을 과다 복용한 상태로 범행했음을 지적했습니다.

■유족 측 "판단 바뀌어도 형량 비슷…사체 손괴 혐의 적용해야"

4년이 늘었지만, 피해자 유족은 여전히 터무니없는 형량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족 측 변호인은 "(2심 재판부가) 피고인의 변명을 단호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자살 시도도 참작하지 않았단 점에서 1심과 비교했을 때 충분히 큰 변화가 있었다"며 "큰 변화에 비해 양형은 4년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피해자 아버지는 어제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유정과 정유정, '일본도 살인범' 등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해 온 법원이 최 씨에게만 무기징역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유족 측은 먼저 1심과 2심 재판부가 모두 최 씨의 범행을 살인범죄 양형기준 가운데 '보통 동기 살인'으로 본 점을 지적했습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범행 동기와 죄질 등에 따라 살인 범죄를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5유형에 가까워질수록 형을 무겁게 선고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법원이 적용한 보통 동기 살인은 이 가운데 2유형으로, 원한 관계나 가정불화, 채권·채무관계에서 비롯된 살인이 포함됩니다.

유족 측은 "최 씨는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피해자를 제거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며 3유형인 '비난 동기 살인'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비난 동기 살인은 '특히 비난할 사유가 있는 살인 범행'으로, 범행의 발각이나 피해자의 신고를 우려한 살인, 고소·고발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한 살인이나 재산·보험금을 노린 살인을 포함합니다.

최 씨 측은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에서 범행했다며, 재판 과정에서 1유형인 '참작 동기 살인'을 적용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습니다.

어제(20일) 서울 서초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피해자 아버지

유족 측은 기소 단계에서 '사체 손괴 혐의'가 빠진 점도 지적했습니다.

최 씨는 범행 뒤 옷을 갈아입고는 다시 피해자의 눈과 이마 등에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조사 됐습니다.

유족 측은 "많은 법의학자와 부검 전문의들이 사체 훼손을 지적했지만, 검찰은 이런 의견을 무시한 채 공소장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검찰, '사체 훼손' 기소 안 해 …유족, 경찰서에 고소장 제출

유족 측 변호인도 "숨진 사람에게 분풀이하듯 흉기를 휘둘렀지만, 국가기관이 그런 행위를 전혀 판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진행된 1심 결심공판에서 "(최 씨가) 이미 흉기를 휘둘러 쓰러진 피해자에게 재차 흉기를 휘둘러 사체 손괴까지 했다"고 말했지만, 정작 해당 혐의로는 최 씨를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유족 측은 "최 씨가 합당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수사기관과 재판부가 다시 한번 이 사건을 살펴봐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드린다"며 서초경찰서에 사체 손괴 혐의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습니다.

최 씨와 검찰이 모두 판결에 불복해 상고함에 따라, 사건은 대법원 판단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픽 박지빈 조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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